눈부신 동티베트… 설산 아래 나부끼는 타르초 바람

[여행]by 한국일보

동티베트 중로장채ㆍ갑거장채ㆍ야라설산

한국일보

동티베트의 야라설산. 눈 덮인 봉우리와 녹음의 조화에 눈이 시리다.

지리적 경계와 문화적 차이를 기준으로 티베트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웨이짱(卫藏ㆍü-Tsang)은 지금의 시짱(西藏)을 포괄한다. 일반적으로 라싸를 중심으로 한 티베트(Tibet) 지역을 일컫는데 서티베트라고도 한다. 안둬(安多ㆍAmdo)는 칭하이와 간쑤 남부를 포함해 쓰촨 서북부까지 아우르는 동티베트를 일컫는다. 캉바(康巴ㆍ Kham)는 시짱 동부 일부, 쓰촨 서부와 윈난 북부까지 포함하는 지역이다. 캉바의 동쪽에 위치한 ‘단바’는 문화적으로 티베트다. 1939년부터 1955년까지 단바는 별도의 독립 성인 시캉(西康)이었다.

한국일보

문화와 지에 따라 티베트는 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한국일보

샤오진 식당에서 본 설산.

한국일보

쓰촨성 단바로 들어가는 길.

쓰구냥산과 가까운 샤오진에서 점심을 먹는데 멀리 설산이 보인다. 시야에 나타난 하얀 눈이 보드라운 솜털처럼 느껴진다. 이런 풍광을 보려고 동티베트에 오는가 보다. 다시 단바를 향해 열심히 달린다. 1시간30분 거리다. 30km 남은 곳부터 표지판이 환영 인사를 한다. 단바의 티베트 마을에는 티베트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건축 양식이 있다. 왼쪽으로 끊임없이 따르는 하천, 303번 성도(省道)를 따라가면 단바의 티베트 마을, 중로장채(中路藏寨)로 가는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 꼬불꼬불한 산길을 5km 정도 오른다.

한국일보

중로장채로 가는 산길.

한국일보

중로장채 도로에서 돼지를 만났다.

중로장채는 해발 2,100m에 위치해 큰길에서 보면 그저 산만 보인다. 인기척이라곤 없어 보이는 마을이다. 거대한 절벽처럼 보이는 산 너머에 3,600여명이 거주한다. 그야말로 산채(山寨)다. 이곳 주민들은 약 2,000여년 전 안전한 공동체를 위해 이주했다. 산길 포장 상태는 비교적 좋다. 가끔 길을 막는 돼지가 사람 사는 동네라고 말해준다. 한가한 오후라 인적이 드물다. 울긋불긋한 원색으로 대문과 창문을 꾸미지만 바탕은 순백의 느낌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티베트식 전통 가옥이다.

한국일보

중로장채의 조루.

한국일보

관망대에서 본 중로장채와 조루.

소와 눈이 마주치고 집을 돌아서니 농사짓는 아낙네가 보인다. 낯선 조형물도 등장한다. 보통 가옥보다 두세 배는 더 높은 건물, 바로 조루(碉楼)다. 중로장채에 모두 21개의 조루가 있다. 크기와 높이가 좀 다르지만 30m에 이르기도 한다. 벽돌과 진흙으로 쌓았는데 곡식을 저장하는 공간이자 외적에 대비한 망루다.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 시야를 넓히니 조루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중로는 티베트 말로 ‘신을 동경하는 사람이 사는 지방’이라는 뜻이다. 티베트 신산 중 하나인 모얼둬산(墨尔多山)이 보이는 명당이다. 해발 5,000m가량인 주봉에서 해가 떠오르고 구름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살아온 마을이다. 하천이 흐르고 협곡과 신성한 산, 아무나 볼 수 없는 절경 속에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다. 단바 지역에서 일조 시간이 가장 길다. 그만큼 높은 지대에 마을이 형성돼 있어서다.

한국일보

중로장채에서 본 모얼둬산.

단바 사람을 자룽족(嘉绒族)이라 부른다. 1950년대 소수 민족을 분류할 때 티베트 민족인 짱족에 포함됐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언어와 풍습이 다른 민족이다. 자룽 티베트라는 말이 여전하고 자룽인이라고 부른다. 조루 역시 자룽만의 역사를 담은 개성 강한 건축물이다. 단바에는 자룽인이 살아가는 마을이 많다. 그중 가장 유명한 마을이 갑거장채(甲居藏寨)다. 중로장채에서 불과 30분 거리다.


1950년에 창간한 잡지 ‘중국국가지리’가 2005년도에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6대 향촌고진’에 갑거장채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6개 마을을 두고 투표를 한다. 이곳 갑거장채를 비롯해 윈난의 다랑논 마을인 하니촌락, 신장위구르자치구 카나스 호수의 투와촌, 구이저우 리핑의 조흥동채, 윈난의 리장고성, 장시 우위엔 일대의 휘주촌락이 6대 고진이다. 이름만으로 설레고 실제 가 봐도 명불허전이다.

한국일보

갑거장채 마을 입구.

한국일보

갑거장채(왼쪽) 아래 대도하와 앞산.

한국일보

갑거장채의 조루와 가옥.

남쪽으로 내려와 단바현을 지나 우회전 후 자룽대교를 지난다. 단바의 젖줄인 대도하(大渡河)가 흐른다. 조금만 올라가면 갑거장채 입구다. ‘가장 아름다운 마을’ 표지 앞에서 매표 후 들어간다. 먼저 1호 관망대에 멈춘다. 유유히 흐르는 대도하 오른쪽 산은 웅장한 절벽이다. 왼쪽 얕은 능선의 짙푸른 숲 사이로 티베트 가옥이 옹기종기 숨었다. 갑거는 ‘100호에 달하는 많은 집’이란 뜻이다. 갑거장채가 아름다운 이유는 집이 많아서라기보다 초록의 숲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티베트 전통 색감도 한몫한다. 지붕에는 파랑ㆍ노랑ㆍ빨강ㆍ하양ㆍ초록의 오색 깃발이 나부낀다. 친근한 전통 문양이 골고루 묻어 있다. 흰색과 황토색, 진홍색 물감으로 담장과 지붕을 운치있게 수놓는다.

한국일보

갑거장채의 자룽족 아가씨.

한국일보

3호 관망대에서 본 갑거장채 앞산.

좌회전해 오르면 2호 관망대, 다시 우회전해 더 올라가면 3호 관망대다. 가장 높은 3호 관망대에서 보면 집 사이의 조루가 더 잘 보인다. 하천도 더 멀어 정지한 듯 보이고 앞산은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관망대가 넓어 관광버스 주차가 가능하니 사람도 많은 편이다. 체리와 호두, 버섯 등을 파는 자룽 아가씨 둘이 보인다. 비록 상하의까지 전통복장을 입진 않았지만, 모자를 보면 다른 티베트 여성과 비교해 아주 다르다. 자룽인은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축제 때 가면 더 잘 알 수 있다. 10월에 개최하는 펑징제(风情节)는 미인을 선발하는 전통 축제다.


관망대 끝에 서면 낭떠러지라 조루도 시선 아래에 보이고 절벽 산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햇볕이 사그라지며 황토와 나무도 약간씩 옷을 바꿔 입는다. 멍하게 앉아 한동안 바라보노라니 어느새 다른 산이 된다. 가옥도 울그락불그락, 나무와 풀도 점점 짙어간다. 좀 멀지만 모얼둬산 윤곽도 보인다. 해가 다 넘기 전에 숙소를 잡는다. 갑거장채엔 유명세만큼 객잔도 많다.

한국일보

갑거장채의 쌍주캉 객잔 입구.

한국일보

갑거장채 쌍주캉 객잔 내부.

쌍주캉(桑珠康) 객잔을 두말없이 하루 묵을 숙소로 정했다. 간판에 쓴 자룽은 물론이고 쌍주의 뜻이 마음에 들어서다. 2007년에 찾아간 티베트 최초의 궁전인 융브라캉(雍布拉康)이 생각났다. 캉은 신전이란 뜻이다. 쌍주는 행운이라고 한다. 주인은 활불이 지어준 이름으로 만다라(曼陀罗)를 뜻한다고 자랑한다. 티베트 가옥이지만 여행객을 위해 현대식으로 침실을 개조해 아주 깨끗하다. 아침식사를 포함해 하룻밤 약 5만원 정도다. 가성비도 좋지만 무엇보다 다른 객잔에 비해 주차장이 넓다.


옥상은 사방이 환히 보이는 관망대다. 눕는 의자가 있어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까지 마음껏 여유도 부린다. 나무와 조루, 앞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살짝 졸아도 좋다. 깃발 네 개가 가느다란 타르초를 연결하고 있다. 하늘과 닮은 색, 구름을 배경으로 한 소담스러운 느낌이라 한참을 바라봤다. 산속 깊은 곳인지라 어둠은 쏜살처럼 온다.

한국일보

갑거장채 객잔 지붕.

한국일보

갑거장채의 아침 운무.

한국일보

갑거장채의 조루.

한국일보

갑거장채의 아침 풍경.

한국일보

아침에 갑거장채에서 본 모얼둬산.

아침이 밝자 바로 지붕으로 나갔다. 운무가 온통 산을 휘감고 있다. 해가 서서히 제자리를 잡으니 오후보다 조금 강렬한 풍광이다. 아침을 먹고 객잔을 나와 다시 1호 관망대에 멈춘다. 어제 중로장채에서 본 모얼둬산은 진하고 긴 구름에 가렸다. 오후보다 더 맑아 보이는 마을이다. 굴뚝에 피어나는 아침 연기 때문일까, 운무와의 조화인지도 모른다.


갑거장채를 떠나 서쪽으로 이동한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듯, 구름을 비집고 느닷없이 설산이 등장한다. 구불구불한 모퉁이를 하나 돌 때마다 방향과 각도로 인해 약간 차이가 나는 모양새다. 은근히 재미가 쏠쏠하다. 하늘은 점점 쾌청해지고 나무는 상큼한 빛깔을 드러낸다. 동티베트의 자랑인 맑은 공기도 여행 상품이다. 아무데나 차를 세우면 휴게소다. 하천 옆에 공터만 있으면 차를 세우고 쉬어가도 좋다.

한국일보

타이잔거우 자연보호구 입구.

쉬엄쉬엄 움직이며 느릿느릿 드라이브를 즐긴다. 갑자기 정면에 나타난 유난히 새하얀 설산! 차를 세우고 한동안 눈이 시리도록 응시했다. 동쪽으로 단바, 남쪽으로 캉딩, 북쪽으로 다오푸와 이어진 야라설산(亚拉雪山)이다. 세 지역 모두 설산을 관람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경 몇 십km 어디서나 볼 수 있다. 70km 떨어진 모얼둬산과 형상은 엇비슷하지만, 해발은 더 높은 5,820m(혹은 5,884m)다. 만년설을 보듬고 있다. 설산의 이름은 샤쉐야라가보(夏学雅拉嘎波), ‘동방의 하얀 야크 산’이란 뜻이다. 티베트 중심인 라싸를 기준으로 동방이며 그냥 간단하게 ‘야라’라고 부른다. 정말 멋진 이름이고 환상적인 미모다.


숲 너머 브이(V)자 안에 딱 맞게 자태를 뽐낸다. 좀 더 가까이 보고 싶다. 손을 내밀면 잡힐 듯해도 분명 꽤 먼 거리다. 최대한 가깝게 가서 ‘하얀 야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픈 승부욕이 마구 솟아오른다. 입구는 다오푸에 속한 타이잔거우(台站沟) 자연보호구다. 입장료를 받지 않아 무사통과다. 그러나 길은 비포장이다.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온몸은 덜컹거린다. 30분을 가도 설산은 제자리다. 차라리 등산이 낫지 위아래 반복운동은 힘들다. 마주 오는 차량에 물으니 1시간 이상 들어가면 호수가 있고 숙소도 있다고 한다. ‘1시간’이란 말에 주눅이 들었지만 돌아가자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일보

야라설산과 타르초.

한국일보

야라설산 아래 차가운 도랑과 타르초.

10분을 더 들어가자 도랑이 흐르는 다리가 나온다. 차에서 내리니 ‘바로 여기’라는 강렬한 느낌이 생겼다. 설산은 조금 더 새하얀 빛이다. 도랑은 투명하고 다리보다 길게 타르초가 걸렸으니 누가 봐도 티베트와 자연의 조화가 아닌가? 도랑 물을 만지니 엄청나게 차다. 설산이 녹아내리는 힘과 냉기가 전해진다. 물소리에 맞춰 타르초도 소리를 낸다.


타르초는 티베트가 불교를 받아들이기 전부터 자연숭배의 관념으로 전해 내려온 풍습이다. 불교가 국교가 된 후에는 오색의 사각 천에 불경을 새겼다. 부처의 가르침, 경전의 지혜가 바람과 함께 온 세상에 널리 퍼지라는 염원이다. 설산과 고원이 창조한 자연으로 말미암아 우울증이 없는 티베트가 아닌가. 오색 깃발에 불경을 새기고 깃대에 메단 룽다도 비슷한 바람이다. 룽다가 솟대라면 타르초는 금줄과 비슷하다. 타르초는 언덕이나 길목, 마을 입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도랑을 잇는 타르초가 심하게 흔들린다. 바람이 불경을 읽고 고원을 지나 멀리 퍼져간다. 설산의 기운을 받은 차디찬 물기가 흐르는 도랑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티베트의 신성한 동물 야크, 그것도 하얀 야크 아래 있으니 물소리보다 빠르게 타르초를 읽고 가는 바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2019.06.03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