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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44사이즈 여성만 옷 사나요? 77ㆍ88 모델도 있어야죠”

by한국일보

패션브랜드 에잇세컨즈 일반인 모델로 선발된 전가영씨

한국일보

전가영씨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다이어트를 했다”고 말했다. 에잇세컨즈에서 출시한 상품 중 최대 사이즈가 M(66, 허리 28인치)인 옷이 많아서 예쁘게 소화하고 싶었단다. 전씨가 입고 있는 원피스도 M사이즈다. 배우한 기자

사람 좋게 웃던 얼굴이 카메라 앞에서 갑자기 새침해진다. ‘알아서 포즈를 취해달라’는 주문에 곧바로 십수가지 표정과 포즈를 펼친다. 허리 80cm, 77사이즈 이상 옷을 입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 전가영(27)씨다. 사진기자의 ‘좋아요’ 칭찬에 전씨가 말했다. “사이즈 빼곤 ‘일반 모델’하고 똑같아요.” 전씨는 최근 패션브랜드 ‘에잇세컨즈’가 개최한 일반인 모델 콘테스트 ‘에잇 바이 미’에 6위로 당선, 앞으로 3개월간 브랜드 모델로 나선다. 3일 서울 신사동 에잇세컨즈 매장에서 만난 전씨는 “제 화보를 보고 누군가가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을 때 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대중에게 ‘일반인 모델’로 소개되지만 전씨는 플러스 모델 업계에서는 데뷔 4년차 베테랑으로 통한다. 전씨는 “제 키가 173㎝인데, 국내 플러스 모델 중에 가장 큰 편”이라면서 “쇼핑몰 보다는 패션쇼 등에서 수요가 더 많다”고 말했다. 다리가 길고 키가 큰 ‘외국인에 빠지지 않는 체형’ 덕분에 해외에서도 종종 러브콜을 받는다. 최근에는 프로 모델들의 ‘꿈의 무대’로 불리는 뉴욕 패션위크, 런던 패션위크 무대에도 섰다. 국내에서도 플러스 모델 수요가 부쩍 늘면서 찾는 곳도 늘었다. 올 1월에는 플러스 모델 최초로 연예기획사와 계약을 맺었고, 4월에는 한 패션잡지 화보도 찍었다.


전씨가 플러스 모델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건 두 차례 ‘실패’를 경험하면서다. 그는 “중고등학생 때 태권도를 전공했지만 부상으로 꿈을 접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때는 저도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았어요. ‘평생에 한번은 날씬해 보자’ 싶어 독하게 맘먹고 20kg을 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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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브랜드 에잇세컨즈에서 일반인 모델로 선발된 전가영씨. 배우한 기자

“남다른 근육량”으로 스포츠모델 선발대회에 도전했다. 1년여 간 활동하며 자신감이 한껏 올라가던 차, 다시 무릎 부상으로 그 일마저 그만두게 됐다. “모델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만 두려니까 너무 아쉽더라고요. 모델 관련 정보를 찾다가 애슐리 그레이엄을 알게 됐죠.”


키 177㎝, 42-30-46(107-76-117)을 자랑하는 애슐리 그레이엄은 극강의 콜라병 몸매로 패션계 가치관을 바꾼, 빅사이즈계의 슈퍼모델로 알려졌다. 전씨는 2년간 플러스 모델을 준비했고, 2016년 한 쇼핑몰 모델로 데뷔했다. 전씨는 “해외 플러스 모델은 시장이 커서 이미지도 정형화돼있다. 통통하지만 큰 키, 긴 다리, 작은 얼굴 등 신체비율이 정형화돼있다는 점에서 일반 모델 못지않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이런 사이즈가 정형화돼있지 않고, 업체마다 원하는 이미지도 다르다. ‘있는 그대로 몸을 사랑하자’는 취지에 비춰보면 한국이 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희의 역할은 키 크고 마른 모델과 다르지 않다. 디자이너의 옷이 가장 아름답고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보에 응원 댓글도 많지만, 비난 댓글도 가끔 달려요. 속옷 화보는 특히 더 하죠.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꿔주고 싶어요.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모델도 여러 모습이 있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을 통한 투표로만 치른 이 콘테스트에 총 4,000여명이 지원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내 몸을 긍정하자’는 취지로 연 대회”라면서 “전가영씨를 비롯해 키 크고 마른 ‘전형적인 프로 모델상’에서 벗어난 도전자들이 많이 수상권에 들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씨를 포함해 선발된 8명은 3개월간 브랜드 모델로 나선다. 전씨는 “경쟁률 500대 1이 넘는 콘테스트에서 제가 당선될 줄 저도 몰랐다. 기회가 올 때 꼭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고 ‘설마’하는 그 기회가 당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