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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35도에 히잡을…여자로서 이란을 여행한다는 것

by한국일보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08)] 젊은 세대는 ‘불필요한 혁명의 부산물’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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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모스크에선 차도르 혹은 아바야 착용이 입장권이다. 카샨(Kashan)의 아가보저그 모스크(Agah Bozorg Mosque)에서 단체 관광객이 우왕좌왕하는 중이다.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은 이미 이란이다. 미처 히잡을 준비하지 못한 ‘여자’ 여행자는 후드나 점퍼의 옷깃을 뒤집어썼다. 언뜻 보기엔 예의 없고 금지된 차림이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스카프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큰 배낭에 들어 있었다. 코트를 머리 꼭대기까지 올려 쓰고 양소매를 턱에 묶었다. 무사히 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마슈하드로 가기 위해 메흐라바드 공항으로 이동했다. 너그럽게 말하면 성냥팔이 소녀, 요상한 차림 그대로다. 자정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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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공항이었다면 눈총 받을 법한 ‘여자’들의 복장. 이란에선 뭐가 됐든 안 쓰는 것보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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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의 여성 검색대. 커튼 뒤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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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어(파시)를 전혀 몰라도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커튼이 있는 곳, 그곳이 여자 화장실이다.

첫 행선지로 정한 마슈하드행 비행기는 오전 5시. 공항에서 노숙할 작정이었다. 공항 출입문부터 여자와 남자가 구분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자의 출입문이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게 옳다. 배낭을 검색 컨베이어벨트에 보내고 성역 같은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니 수다를 나누던 두 여인이 귀찮은 듯 쳐다본다.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순순히 갔다. 어라, 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가슴은 가장 오래 그리고 강도 높게 만졌다. 의아할 새도 없이 수색이 끝났다. ‘당했다’는 생각에 뒤늦게 감정이 흔들린다. 가장 정확하고 빠르나 기분은 좋을 리 없는 통과의례였다.


눈을 붙이기 전 스카프부터 찾아야 했다. 18kg에 달하는 큰 배낭의 가장 하단에 위치한 건 알았으나 꺼내는데 셀프 난투극을 벌였다. 땀이 한 바가지 쏟아질 즈음 시야에 무언가 포착됐다. 스카프다. 한 여인이 나의 갸륵한 히잡 스타일에 아량을 베푼 것이다. 정중히 사양하고 스카프를 꺼내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다. 또 한 번 커튼을 젖힌다. 아니 이곳은? 일종의 ‘해방구’가 아닌가! 이란 여인들은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히잡부터 벗었다. 아무리 후진 화장실이라도 세면대 맞은편에 옷걸이가 즐비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한국을 떠난 지 24시간, 이때만 해도 떡 진 머리를 감출 수 있어서 히잡은 고마운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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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차도르로 온몸을 가리고 거리를 걷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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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차도르를 두르면 무조건 무슬림일까? No! 이란에서 히잡 착용으로 무슬림과 비무슬림을 구분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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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장을 가든 화려한 색상의 히잡이 진열돼 있다. 유혹을 경계하는 코란에는 결격일 듯한데….

“이란 여자들은 두 가지 삶이 있어. 집 안의 삶과 집 밖의 삶이지.” 모나는 심장 수술 전문 간호사이자 비무슬림이다. 그녀는 틈만 나면 바람 때문에 혹은 움직이다 자연스럽게 머플러가 벗겨질 기회를 노리는 자칭 평화주의자다. 이미 목과 팔에 땀띠와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나는 ‘쫄아서’ 감히 시도하지 못했다. 그렇게 용감하던 모나도 자유 지대일 것 같은 그녀의 차 안에서 벗겨진 히잡을 빠르게 고쳐 썼다. 내게도 히잡을 똑똑히 착용하라고 명령(!)했다. 테헤란 외곽으로 빠지는 고속도로 시작 지점이다. 감시의 눈인 카메라가 거기 있었다. 히잡을 쓰지 않은 ‘여자’ 운전자든 ‘여자’ 동승자든 발각될 경우 운전자는 벌칙을 받는다. 40여일간 운전 금지, 그리고 벌금이 부과된다. 모나는 집을 삶의 해방구로 여겼다. 이란에서 비무슬림 여자에게 집으로 들어서는 문이란, 속박된 언어와 행동에서 풀려나는 분단선이었다. 무슬림이 아니더라도 문 밖 ‘여자’의 삶은 제한되고 조심스러우며 때론 혹독해 보였다.


히잡의 유래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코란의 해석으로 빚어진 분란이다. ‘가슴을 가리는 머릿수건을 쓰라’는 코란의 율법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정숙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란에서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여성의 히잡 착용이 법으로 강제됐다. 공식적으로 이란 국민의 99% 이상이 무슬림이다. 그러나 현지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속사정은 퍽 다르다. 단지 무슬림 국가에 태어났을 뿐이라는 증언이 속속 이어진다. 젊은 세대(그중에서도 특히 여자)에게 히잡이란 인권 탄압의 시초가 된 혁명의 불필요한 부산물로 여겨진다. 이란에서 여성은 거리 버스킹은 고사하고 콘서트와 파티도 자유롭게 열지 못한다. 종교가 없는 나나 다른 종교를 가진 여행자나 여성이라면 필수적으로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 결국, 종교를 내세워 합법적으로 인권을 탄압한다는 생각에 자꾸만 반항심이 몽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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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현지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는 미국에서 건너온 아이폰. 에어컨 바람이 필요했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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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쓰더라도 스카프는 꼭 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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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에 머리를 감싸는 히잡 착용은 비무슬림인 ‘여자’ 여행자에겐 인내의 시험대다.

6월 현재 이란 날씨는 잔인할 정도로 뜨겁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임에도 기온이 35도를 넘는다. 남부에 가까워질수록 40도 이하면 기뻐해야 했다. 반바지를 못 입는 탕탕도 불쌍했지만, 반팔 셔츠를 입을 수 있는 그는 ‘남자’다. 반바지와 반팔은 고사하고 머리와 목까지 둘둘 감아야 하는 나는 ‘여자’다. 죽을 맛이었다. 눈꺼풀에 땀에 촉촉해졌다. 처음엔 양말과 샌들을 매치하는 하이패션을 구사했으나 이란과 한국의 예의(혹은 법) 기준은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참 달랐다. 맨발로 모스크를 걷는 것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위를 식히는 방법으로 발 노출은 머리와 목 노출에 비해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쨍쨍한 햇살의 은혜를 입는 날이면 늘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히잡을 벗어버리고 싶다, 반팔과 반바지를 격렬히 원한다! 히잡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여자 여행자에게 이른 귀가를 권장한다는 점에선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