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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자전거, 인간에게 평등의 가치를 가르쳐 주다

by한국일보

한국일보

1851년 등장했다가 우스운 모양 때문에 종적을 감췄던 여성 의복 ‘블루머’(왼쪽)의 가치가 자전거로 인해 재발견됐다. 자전거가 여성 의복에 혁명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글담출판사 제공

발목 부근을 꽉 조여 입는 바지 ‘블루머’는 1850년쯤 미국 뉴욕에서 탄생했다. 당시 이 바지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헐렁하고 불룩한 모양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힐 뻔 했던 이 옷은 1870년대가 되자 인기가 급상승했다.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서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드레스 대신 여성들은 블루머를 입고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는 의복만 변화시킨 게 아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하며 해방감도 선사했다. 1894년 미국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자전거는 여성과 여성의 능력을 바라보는 시각을 급격히 바꿔놓았다. 자전거 타는 여성은 독립된 존재이며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다. 자전거가 등장하기 전에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두 발을 땅에 딛지 않고도 이동할 수 있는 수단, 그 자체로 자전거는 혁신이었다.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한스-에르하르트 레싱은 자전거가 가진 가치가 자동차나 기차, 비행기 등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주목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구조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데다 언제나 이용할 수 있다는 친밀감 때문에 자전거의 혁신성이 조명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레싱이 2017년 자전거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펴낸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가 국내에서 출간됐다.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와 손이 합작해 낸 발명품이 진화해 온 여정을 짚는다.


자전거의 원조는 ‘달리는 기계’라는 의미의 ‘드라이지네’다. 독일인 카를 폰 드라이스가 1817년 고안해냈다.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드라이지네에는 페달이 없었다. 대신 운전자가 발로 땅을 굴러 움직였다. 유럽에 기근이 들며 말 사육이 어려워지자 드라이지네는 대안 수단으로 인간의 삶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두 발을 구르며 이동하던 기계는 이후 페달을 갖게 됐다. 바퀴의 숫자와 크기가 달라졌고, 재질도 나무와 철제에서 고무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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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하퍼스 위클리'에 실린 뉴욕의 자전거 교습소 풍경. 1800년대 후반 자전거의 인기가 높아지자 극장과 양장점은 손님을 잃었고, 자전거 교습소와 수리전문점은 성업을 이뤘다. 글담출판사 제공

19세기 말 자전거의 인기는 유럽과 미국에서 정점에 달했다. “책을 들고 가는 사람 92명, 테니스 라켓을 들고 가는 사람 2,417명,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5만명.” ‘베를리나 슈타트차이퉁’의 한 칼럼니스트가 1899년 8주 동안 거리를 지켜본 결과다. 자전거를 타려면 양손을 핸들을 잡는 데 사용해야 했으므로 담배의 소비량이 현저히 줄었다. 날이 좋으면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러 나가 이 시기 시카고의 극장들은 여름 공연을 전면 중단했다. 자전거를 타기에 편안한 복장을 선호하게 되면서 미국에서는 25%의 양복점이 사라졌다.


저자는 자전거가 자유와 평등의 상징이었다고 말한다. 부자든 빈자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자전거를 움직이려면 온전히 자신의 힘을 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자전거 하나로 변화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 광고 전단지, 삽화 등 풍부한 자료 덕분에 보는 맛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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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

 

한스-에르하르트 레싱 지음ㆍ장혜경 옮김

글담출판사 발행ㆍ232쪽ㆍ1만4,000원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