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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대한조현병학회ㆍ한국일보 공동 기획

“조현병은 유전 질환” 오해… 부모에게 잘못된 죄책감 안겨

by한국일보

‘조현병 바로 알기’

⑧이헌정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일보

조현병은 가족력 없이도 발병할 수 있고, 비록 가족력이 있더라도 생기지 않는 때가 훨씬 많다. 게티이미지뱅크

“조현병이 왜 생기는 건가요?” “혹시 유전되지 않나요?” 조현병 환자나 가족이 진료실에서 흔히 하는 질문이다. 환자나 가족 입장에서는 속 시원한 답을 원하는 궁금증이지만, 의사로서 답변하기에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문제다.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려다가 자칫 이해를 잘못해 편견만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현병의 원인과 유전 여부는 아직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래서 단순 명료하게 설명하기에는 충분한 지식적 근거가 쌓이지 않은 상태다. 부족한 지식으로 내린 단순한 결론은 사실과 오해가 혼합된 편견만 강화하기 쉽다.


과학적인 연구가 없었던 이전에는 조현병을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해석해 부모의 양육 잘못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조현병을 유발하는 엄마(schizophrenogenic mother)’라는 성차별적 책임 전가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부모의 이중적 메시지 전달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조장되는 양육 환경이 조현병의 원인이라는 ‘이중 구속(double bind)’ 이론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론은 과학적 검증도 없었고, 부모 잘못으로 조현병이 생길 수 있다는 편견만 조장했다.


이런 편견 때문에 부모가 자녀의 조현병 발병 자체를 부정하거나 감추고 치료를 회피하게 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런 편견이 여전해 일부 보호자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저희가 잘못한 게 많아 이렇게 된 것은 아닌가요?” 편견 때문에 환자의 부모가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편견에는 유전 여부에 대한 잘못된 지식도 있다. 인터넷 발달로 요즘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정보의 하나가 ‘조현병은 유전된다’는 것이다. 이를 자칫 오해하면 환자 부모로 하여금 질병 유전자를 물려줬다는 잘못된 죄책감을 갖게 할 수 있다.


과학적 증거에 입각한 정확한 사실은 ‘유전성이 일부 있지만, 유전병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조현병은 가족력 없이도 발병하고, 가족력이 있더라도 생기지 않는 때가 훨씬 많다. 실제로 부모 중 한 명이 조현병일 때, 자녀의 조현병 발병 확률은 12% 정도다. 이는 정상 부모의 자녀에서 조현병의 발병 확률 1%에 비해 상당히 높다. 그러나 이 부부가 10명의 자녀를 낳는다고 가정하면 단지 1명 정도만 발병할 뿐이다. 유전자가 완전히 일치하는 일란성 쌍둥이조차 한 명이 조현병일 때 다른 한 명에서 조현병이 생길 확률이 47%이다. 이는 조현병 발병이 유전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면 조현병을 유전병으로 왜 연관을 지을까. 일부 유전학자들은 조현병 발병 원인을 특정 유전자 이상으로 가정해 가족력이 있는 환자와 가족을 모아 원인 유전자를 찾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서 최근 유전학자 사이에서 ‘흔한 질환/흔한 변이(common disease/common variant)’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조현병은 유병률 1%로 흔한 병인데 아주 드문 특정 유전자 변이에 따른 결과 때문 일리 없으며, 일반인에게도 흔한 유전자 변이가 다수 모여 조현병에 취약하도록 만든다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조현병을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 유전자 변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과학기술 발달로 3만명 이상의 조현병 환자의 시료에 대해 100만개 이상의 유전자 변이를 한꺼번에 검사·분석하는 기술을 적용한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 연구의 일환으로 2014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는 108개, 2018년에 발표된 후속 논문에서는 145개의 유전자 영역들이 조현병 발병에 관여한다고 보고됐다.


이 유전자 영역들은 면역 기능 조절과 연관성이 높아 면역 기능의 이상과 조현병 발병이 관련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뇌에 존재하는 수많은 세포가 서로 맞닿는 곳을 시냅스라 한다. 시냅스의 수는 출생 전부터 아동기까지 가파르게 증가하다가 청소년기가 되면 가지치기가 일어나 점점 줄어 적정한 양으로 유지된다.


그런데 면역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청소년기에 가지치기가 과다해져 시냅스가 지나치게 줄어 조현병이 생길 수 있다. 이 가설이 옳다면 청소년기에 과도한 뇌세포 시냅스 가지치기를 막아주는 면역치료를 시행함으로써 조현병을 예방하는 기술이 개발될 가능성도 기대해볼 만하다.


조현병은 생물학적 취약성과 환경적 스트레스가 결부돼 발병하는 뇌질환이다. 생물학적 취약성에는 앞에 설명한 유전성도 작용하지만 출산 전 물리적 충격, 바이러스, 면역결핍, 영양결핍, 신경독소 등의 다른 요인이 관여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환경적 스트레스도 어느 특정 사건이라기보다 성장기에 경험한 수많은 힘든 사건의 합이다. 이렇게 많은 위험 요인이 작용할 수 있기에 “하필 왜 내가 조현병에 걸린 겁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현재로서 그 이유는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특정한 그 누구의 탓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 때문에 발병했다’는 죄책감도, ‘당신 때문에 발병했다’는 원망도 옳지 않다. 불행이지만 발병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치료에 매진해야 한다. 불분명한 원인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은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일보

이헌정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