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하면 환급’ ‘섹시한 몸매’ 이주여성 성상품화 광고 버젓이

[이슈]by 한국일보

“신랑, 부모보다 어리면 돼요” 온라인에 인권침해 광고 넘쳐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ㆍ차별 낳아… 정부는 업체 점검 연 2회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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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제결혼업체는 ‘베트남 신부가 입국 후 가출하면 중개수수료를 환급한다’고 광고하고 있다. 홈페이지 캡쳐

# ‘신부 입국 후 1달 내 가출하면 중개수수료 일부를 환급합니다.’ 한 포털사이트에 ‘국제결혼’을 검색해 접속한 국제결혼중개업체 홈페이지의 광고다. 사이트에는 업체 회원인 외국여성의 나이는 물론 키와 몸무게가 적혀있다. 10일 해당업체 담당자에 광고의 취지를 묻자 “(신부가 도망쳐) 피해를 입을까 봐 국제결혼을 망설이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소개를 받으라는 취지의 광고”라고 답했다. 여성회원의 신체조건을 기재한 것에 대해서는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며 “우리는 정기점검을 받는 정식 업체”라고 주장했다.


# ‘섹시한 몸매의 소녀’ ‘귀여운 베트남 아가씨’ 유튜브에 국제결혼을 검색하자 등장하는 동영상의 제목이다. 국제결혼업체가 운영하는 광고영상에는 외국 여성의 나이와 외모를 강조하는 제목과 내용투성이다. 일부 동영상은 ‘신랑 나이는 50살까지’ ‘부모님보다 어리면 괜찮아요’라는 식으로 나이 차이를 강조하기도 한다. 댓글창엔 “이쁘면 베트남 꽃뱀” “동남아는 구라(거짓말)를 잘 쳐요”와 같은 혐오발언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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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게시된 국제결혼업체의 광고들. 유튜브 캡쳐

과거 현수막이나 전단지를 통해 흔히 보았던 국제결혼업체의 노골적 광고가 온라인으로 자리를옮겼다. 업체 홈페이지는 물론 블로그,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이주여성을 상품화하는 광고가 불특정다수에게 노출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일시 점검 수준에만 머무르고 있어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결혼중개업법은 결혼중개업자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거나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사용한 광고를 게시할 경우 행정처분은 물론 3년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멋쟁이 ○○국 신세대’와 같이 특정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거나 △나이ㆍ학력ㆍ몸무게ㆍ키 등 인적사항을 게재하고 △’○살 아름다운 소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광고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런 광고는 이주여성을 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대상화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낳게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7월 9일부터 10일간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온라인상의 결혼중개업체광고물 1만5,393건을 특별 점검해 615건을 삭제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렸다. 여가부 관계자는 “결혼중개업법에 따라 1년에 두 차례 광고를 포함한 국제결혼중개업체 운영 전반을 점검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지자체가 최소 연 1회의 점검만 하면 되는데다, 점검기간이 아닐 때를 틈타 인권 침해성 광고를 다시 게시하는 경우도 있어 빈틈이 많다고 현장 활동가들은 말한다.


광고 제작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중개업체들이 영상을 제작하면서 출연한 여성에게 ‘맞선상대에게만 보여주겠다’고 거짓말을 하는 등 취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가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자신의 모습이 상품화되어 노출될 것을 알고 영상에 응한 경우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해외 현지 홈페이지와 한국 홈페이지의 광고나 설명이 다른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의 접근방식이 사후 단속이 아닌 사전 예방책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혼중개업 법ㆍ제도에 대한 사회통합적 개선방안 연구’를 수행한 정현미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장은 “국제결혼중개업은 물건이 아닌 사람을 소개하는 곳인데 자격증 제도도 도입돼 있지 않다”며 “업무윤리 등 보수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2019.07.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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