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중앙탑 붉은 노을 너머 우륵의 가야금 소리 들리는 듯

[여행]by 한국일보

충주 탄금대와 중앙탑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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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남한강변 중앙탑 뒤로 붉은 노을이 저녁 하늘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 ‘탑평리 칠층석탑’이 정식 명칭이지만 충주시는 ‘중앙탑’으로 부른다. 충주=최흥수 기자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탄금대 산책로 한쪽 모퉁이에 ‘감자꽃’ 노래비가 놓여 있다. 감자만큼 특색이 없으면서도 유용한 작물이 또 있을까. 울퉁불퉁함과 투박함 때문에 곧잘 못생김과 연결하지만, 반찬뿐만 아니라 간식과 주식으로 없어선 안될 작물이 감자다. ‘감자꽃’은 충주가 고향인 권태응(1918~1951) 시인의 작품이다. 감자 얘기를 꺼낸 건 왠지 충주가 감자와 닮았다는 느낌 때문이다. 깜짝 놀랄 반전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 편안한 휴식이 되는 곳, 충주는 그런 곳이다.

음악과 전쟁…부조화의 조화, 탄금대

탄금대는 충주 시내 서북쪽 달천과 합류하는 남한강 언덕에 위치한 공원이다. 탄금대라는 명칭은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우륵은 가야국 성열현에서 살았다고 한다. 대가야의 중심이었던 경북 고령으로 추정된다. 악보는 전해지지 않지만 그가 지은 12곡 중 ‘하가라도’ ‘상가라도’ ‘달기’ ‘물혜’ ‘거열’ 등 9곡이 당시 대가야의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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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는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라 알려져 있다. 산책로 주변에 솔숲이 우거져 있다.

그러나 우륵은 551년 가야의 운세가 기울자 제자 이문과 함께 신라 진흥왕에게 투항했다. 진흥왕은 그를 국원(國原)에 거주하게 하고 계고ㆍ만덕ㆍ법지 등을 보내 그로부터 가얏고와 노래, 춤을 전수하게 했다. 국원이 바로 지금의 충주 땅이다. 잔잔한 강물에 은은하게 번지는 가야금 울림을 상상하면 멋스러운 풍류와 나라 잃은 망명객의 설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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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로 세워진 탄금대의 충혼탑.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글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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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의 ‘팔천고혼 위령탑’. 임진왜란 때 순국한 8,000 병사들의 넋을 기리는 시설이다.

탄금대에는 우륵의 전설만 있는 게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 신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적군에 맞서 싸우다 최후를 맞이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공원 북측 산책로에는 충혼탑과 ‘팔천고혼 위령탑’이 나란히 하늘로 솟아 있다. 이곳 충혼탑은 광복 이후부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희생된 충주의 1,900여 군경과 노무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전국의 수많은 충혼탑 중 가장 먼저 건립한 것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필체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팔천고혼 위령탑은 1592년 4월 신립 장군과 함께 이곳에서 전사한 8,000여 병사의 넋을 기리고 있다. 8,000은 신립이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한양에서 충주로 이동하며 차출한 병사의 숫자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목숨으로 지킨 이들은 결국 평범한 시민들이었다는 사실에 절로 숙연해진다.


‘탄금정’ 정자각 아래 바위는 ‘열두대’라 불린다. 신립 장군이 전투를 독려하기 위해, 혹은 달아오른 활 시위를 강물에 식히기 위해 암벽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어떻게 해석하든 다급한 전투 상황이 연상되는데, 지금 열두대에서 보는 풍경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유속이 느려 생긴 강 중간의 용섬에 푸르름이 짙고 이따금씩 수상스키가 정적을 깨뜨리며 수면을 가른다. 열두대로 내려가는 계단 우측에는 신립 장군이 순절한 곳임을 알리는 비석이 감춰진 듯 세워져 있다.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을 텐데, 패장을 기억하는 방식은 이렇듯 야박할 수밖에 없어 쓸쓸함이 더하다. 산책로는 탄금대 공원을 한 바퀴 돌게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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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열두대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 풍경이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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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대 내려가는 계단의 신립 장군 순국지 표지석.

탄금대 상류는 ‘충주세계무술공원’과 ‘능암 습지생태공원’으로 이어진다. 무술공원에는 탄금대만큼 넓은 부지에 세계무술박물관, 야외공연장, 돌미로정원 등이 조성돼 있다. 그러나 박물관과 공연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유료 테마파크가 차지하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대신 습지생태공원으로 나가면 측백나무 미로와 연꽃 연못이 산책로로 연결돼 있고, 탄금대까지 이어지는 제방을 걸으며 남한강의 또 다른 풍광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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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와 이어진 능암습지생태공원.

중원, 중앙탑, 중앙탑공원

탄금대에서 남한강 하류로 약 6km 떨어진 중앙탑공원은 충주의 또 다른 상징이다. 강변공원 둔덕 위에 탑 하나가 우뚝 서 있다.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이 정식 명칭이지만 충주시는 국토의 중앙이라는 의미를 강조해 ‘중앙탑’으로 부른다. 탑이 있는 가금면의 명칭도 2014년 중앙탑면으로 고쳤다.


그러나 이곳은 남북한을 합한 국토의 중앙과는 거리가 멀고, 남한의 중앙도 아니다. 현재의 충주시는 1995년 중원군과 합친 도농복합도시다. 삼국시대에는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영토 전쟁이 벌어졌다. 처음엔 백제가 400여년간 장악했고, 고구려가 150여년간 지배하다 이후 통일신라에 복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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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노을과 날씬한 탑신이 조화로운 충주 남한강변의 중앙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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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중앙탑은 산중이 아니라 탁 트인 강변에 있어 이색적이고도 편안해 보인다.

중앙탑은 신라 원성왕 12년(797) 국토의 중앙을 표시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중앙탑의 ‘중앙’은 통일신라 영토의 가운데인 셈이다. 중앙탑은 현존하는 신라 석탑 중 가장 큰 규모인데, 충주 지방에 새로운 왕이 출현할 기운이 왕성해 이를 제압하기 위해 사찰을 건립하고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주변에 기와 조각이 산재하고 연화 문양의 석등 받침돌이 남아 있다. 1917년 전면 해체 복원할 때 발견된 청동거울 2점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이때 한 차례 해체해 사리 장치를 봉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석탑은 2층 기단 위에 7층 탑신과 탑머리를 얹은 형식이다. 높이(14.5m)에 비해 폭이 넓지 않아 날렵한 모양새다. 깊은 산중 고찰에 있을 법한 탑이 사방이 트인 강변에 선 모습이 이색적이면서도 편안하다. 하얀 뭉게구름과 빛깔 고운 노을은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게 해 주는 여름 하늘의 선물이다. 요즘 같은 때엔 해질 무렵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날씬한 탑신이 특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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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탑공원의 수상 산책로. 조정경기장 중계를 위해 만든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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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탑공원 곳곳에 26점의 조각 작품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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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탑공원의 한옥 카페. 약국과 함께 운영하는 특이한 구조다.

중앙탑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을 거닐어도 여름날 저녁의 무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다. 공원 앞 남한강은 국제조정경기장이다. 중계를 위해 가설한 수상 교량이 야간 조명으로 불을 밝혀 운치를 더하고, 공원 곳곳에 자리한 조각품은 사진 찍기 소품으로 손색이 없다. 체험관광센터에서 마음에 드는 의상으로 차려 입고, 한옥 카페(약국 간판을 달고 있다)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겨도 좋겠다.

충주 여행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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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시장 순대만두 골목의 김치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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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교 아래 남한강 수상 레저, 디스코팡팡.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1. 충주의 옛 도심 관아공원 부근에 30~40년간 장사를 해 온 오래된 식당이 많다. 중국집 아서원, 올갱이와 선지해장국을 주 메뉴로 하는 복서울해장국, 평양식 냉면을 내는 삼정면옥, 뚝배기 닭볶음탕으로 유명한 중앙로회관 등은 충주 사람들이 대를 이어 찾는 식당이다. 무학시장의 순대만두골목도 충주의 먹거리 명소다. 충주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순댓국과 만두를 파는 전문점이 빼곡하게 밀집해 있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김치만두 10개에 2,000원 수준이니 가격도 저렴하다.
  2. 충주는 물의 도시다. 충주호반에 6~7개의 수상레저 업체가 있고 시내와 가까운 탄금대교 아래에만 3개 업체가 영업 중이다. 바나나보트ㆍ땅콩보트ㆍ디스코팡팡 등의 물놀이 기구를 갖췄다.

충주=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2019.08.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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