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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인스타 팔로어 38만 노부부 “이제 유튜브도 배워야죠”

by한국일보

이찬재·안경자 부부

한국일보

안경자(오른쪽), 이찬재 부부가 인스타그램에 연재한 그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부부는 “해외 배송으로 책 받아보셨다는 분도 있더라. 연예인들이 ‘팬들 덕분이다’하는 말을 우리고 실감한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새로움에 편승한다는 게 참 재밌고 좋았는데 이이는 처음에 싫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사는 얘기를) 왜 남한테 보여줘야 하냐고.”(안경자)


“댓글에 ‘할아버지 다음 연재 기대돼요’하면,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잖아요.”(이찬재)


인터뷰 내내 아웅다웅하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 인스타그램(@drawing_for_my_grandchildren)에서 손주들을 위한 글과 그림을 연재하는 동갑내기 부부 이찬재, 안경자(77)씨 얘기다. 남편 이씨가 그림을 그리고, 부인 안씨가 글을 쓰면 아들 지별씨가 영어로, 딸 미루씨가 포르투갈어로 번역한다.


‘너희가 커서 때때로 할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때 난 이 세상에 없겠지만 너희를 위해 이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지구 반대편 손주를 그리워한 이 한마디가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부부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구독자가 38만명에 이른다. 최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부부는 “구독자 중 젊은 층이 많아 연재 전에 아이템을 아들, 딸과 상의한다. 가족 간 대화가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1942년생 동갑내기 부부는 같은 대학 동기로 만났다. 1967년 결혼해 1남 1녀를 낳아 키우다 1981년 이민을 떠나 2017년 10월까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살았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건 2015년 4월. 그해 1월 딸 가족이 한국으로 가게 되면서 5년간 등하교 시킨 외손자와 헤어지게 된 부부는 손주가 그리워 그 마음을 글과 그림에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림에 남긴 사인 ‘For AAA’는 3명의 손주 알뚤(Arthur), 알란(Allan), 아스트로(Astro)의 첫 글자를 딴 말이다. 연재 후 NBC, BBC, 가디언 등에 부부의 사연이 소개되며 유명세를 탔다. 지난해 세계한인의 날(10월 5일)에 한국 정부로부터 대통령을 표창을, 올 5월 ‘인터넷의 오스카 상’이라고 불리는 웨비 어워드에서 피플스 보이스상까지 받았다. 올봄 연재물 일부를 엮은 책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를 냈다.


“글쎄 새로운 얘기가 있을까”하던 부부가 아들 얘기를 꺼냈다. 두 사람이 브라질에서 했던 일은 여성 옷가게. 최근 브라질 인플레이션이 심해졌지만, 이민 초기에는 “교사 한 달 월급보다 하루 벌이가 더 많았다”(이찬재)고 할 정도로 수입이 좋았다.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아들을 별 고민 없이 학비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 파슨스스쿨로 유학 보낼 수 있었던 이유다. 순수미술작가가 되겠다던 아들은 “공원 가면 기막히게 잘 그리는 화가가 널려있던”(안경자) 상황을 보고 반년 만에 그래픽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꿨다. 세계 최고 광고회사 사치앤사치, 구글을 거쳐 페이스북에 입사했다. 안씨는 “페이스북에 근무하면서 인스타그램을 인수하는 걸 지켜봤고, 관심을 갖고 아빠한테 그림을 그려 올려보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아들은 대학 간 이후로 쭉 미국에 살았지만, 딸네 집이 우리집이랑 가까웠어요. 손주들 학교가 집이랑 멀어요. 아이들 학교 데려다 주고, 오는 걸 5년 했죠. 별안간 애들이 한국으로 떠나니까 내가 할 일이 없어 무료해진 거예요. 아들이 그러지 말고 그림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리세요, 라고 숙제를 준 거죠.”(이찬재)


“평소 그림을 그린 건 아니고, (이민 전 교사생활 할 때) 학교 수련회에 간 제자를 엽서에 그려서 집에 보낸 적이 있는데 아들이 그걸 기억했나 봐요. 소재가 없으면 쓰레기통을 그려도 되니 계속 그리래요. 남편이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 한 거죠.”(안경자)


처음에는 남편 이씨가 그림을 그리면 국제학교 교사로 활동했던 부인 안씨가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렸다. 부부가 갓 태어난 손주를 보러 미국을 방문했을 때, 아들은 ‘이제 어머니 말고 아버지가 올려보시라’며 아버지 이씨에게 인스타그램 사용법을 가르쳤다. “엄마는 저리 가래요. 아버지는 안 배우려고 하고 아들은 가르치려고 하고. 노인을 가르치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걔가 꾹꾹 화를 참고 아빠를 열심히 가르치니까 아빠도 감복이 돼서 배운 거예요. 우리 인스타그램 보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게 왜 진즉 가르쳐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을까’라는 회한의 글이 많이 올라와요.”(안경자)


두 부부의 영구 귀국을 이끈 외손주들은 이제 훌쩍 자라 중고등학생이 됐다. 여전히 할아버지 할머니와 친구처럼 지내지만, 정성들여 그린 그림을 매일 구경하진 않는다고. “걔들은 인스타 세대가 아니라 유튜브 세대”라는 딸 미루씨의 말에 이찬재씨가 말했다. “그래서 손주들한테 배우죠. 유튜브 하는 법. 방송 찍고 올리는 게 아니라, BTS 춤 유튜브 보고 따라하기. 하하.”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