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는 식품 속 과학 ‘그린 바이오’

[테크]by 한국일보

돼지·닭 ‘더 빨리, 더 크게’ 키우려면?

그린 바이오 기술이 만든 필수아미노산, 배합사료에 첨가


당신은 혹시 어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식 메뉴인 삼겹살을 맛나게 먹지 않았는가. 아니면 폭염이 내리쬐던 여름을 무사히 넘기고 몸보신을 위해 삼계탕을 끓이진 않았나.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지만 삼겹살 한 조각, 닭다리 하나에 놀랄 만한 과학이 숨어 있다.


삼겹살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려보자. 보통 농가에서 사육된 돼지나 닭을 일반 소비자들이 섭취하는 모습이 그려졌다면 좀더 전 단계로 가보자. 돼지나 닭이 먹는 사료가 어떻게 자라고 만들어지는가에 먼저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과학의 한 분야인 ‘그린 바이오(Green Biotech)’의 비밀을 이야기할 수 있다.


먼저 ‘바이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생명체나 건강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제약업체의 회사명에 바이오가 들어간다. 바이오 산업은 크게 ‘레드 바이오(Red Biotech)’와 ‘화이트 바이오(White Biotech)’ 그리고 그린 바이오 세 범주로 구분된다. 레드 바이오는 혈액의 색이 연상되는 것처럼 바이오 제약사업(헬스케어)을 의미한다. 질병의 진단ㆍ치료, 호르몬 치료, 바이오 신약개발, 줄기세포 이용 치료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화이트 바이오는 바이오 에너지와 바이오 공정, 환경친화적인 소재를 말한다. 특히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화이트 바이오 산업은 화석연료 수입 감소와 같은 경제효과를 유발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린 바이오는 제약과는 조금 다르다. 생물체의 기능과 정보를 활용해 각종 유용한 물질을 산업적으로 생산하는 분야다. 바이오 식품이나 생물농업 등 미생물과 식물을 기반으로 새로운 소재나 종자 등을 만들어낸다. 사료용 아미노산이나 식품첨가소재 등이 그린 바이오를 통해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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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바이오 사이클. 그래픽=송정근 기자

돼지는 뭘 먹어도 잘 자란다?

삼겹살을 즐기는 당신이라면 돼지고기의 생산 과정을 알아야 한다. 좋은 품종의 건강한 부모 돼지는 역시 건강하고 우수한 새끼 돼지를 낳는다. 그런데 새끼 돼지가 아무 것이나 먹어도 튼튼하게 성장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본적으로 생육에 필요한 영양소가 고루 들어있는 ‘배합사료’를 먹는다. 새끼 돼지는 배합사료를 먹으면서 육가공 상품화가 가능한 돼지, 즉 성체(成體)로 자란다.


사람이 먹는 밥에 해당하는 배합사료는 사료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기업들이 동물의 성장과 특성에 따라 최적의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상품화한 사료다. 동물이 곡물이나 잔반, 목초 등을 주로 섭취하던 전근대적 축산업과는 달라진 것이다. 갈수록 선진화, 고도화 되며 ‘우수한 동물을 빨리, 크게 키우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는 현대 축산업에서는 동물에게 배합사료를 먹이는 게 일반적이 됐다.


그렇다면 ‘라이신’이나 ‘메치오닌’처럼 돼지가 건강하게 잘 자라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필수아미노산은 어떻게 섭취하는 것일까. 규모가 약 10조원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글로벌 아미노산 시장의 ‘큰 손’은 초대형 사료 기업들이다. 정밀하게 설계된 사료라고 해도 사료의 주요 원재료인 곡물만으로는 동물 체내에서 생성되지 않는 부족한 영양소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음식으로 100% 섭취할 수 없는 비타민이나 단백질 등을 약품으로 보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료 기업들은 배합사료에 사료용 아미노산을 첨가해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고 완성형 배합사료를 만들어낸다. 사료가 밥이라면 아미노산은 근육을 키울 때 먹는 보충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즉 국민 외식메뉴인 삼겹살이나 치킨을 먹는 것은, 그린 바이오의 핵심 품목인 아미노산을 먹고 자란 돼지와 닭으로부터 나온 육류를 섭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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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제일제당 바이오연구소 연구원들이 우수한 균주 선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CJ제일제당 제공

필수아미노산이 뭐길래

모든 동물, 특히 가축은 자라는 데 적당한 영양소를 필요로 한다. 그 중에서도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는 20종의 아미노산은 동물의 생육을 증진하거나 면역 강화, 피로 회복 등의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성분이다. 그런데 20종의 아미노산 중 12종은 동물이 섭취하는 사료를 기반으로 체내에서 합성이 되지만, 8종은 그렇지 않아 반드시 별도로 섭취해야 한다 ‘라이신(lysine)’, ‘트립토판(tryptophan)’, ‘메치오닌(methionine)’, ‘쓰레오닌(threonine)’, ‘발린(valine)’, ‘류신(leucine)’, ‘이소류신(isoleucine)’, ‘페닐알라닌(phenylalanine)’ 등 8종은 그래서 필수아미노산이라고 부른다.


이들 필수아미노산이 부족하면 돼지나 닭 등의 동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동물도 필수아미노산을 사료첨가제의 형태로 보충 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 필수아미노산 제품을 생산하는 데는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에는 환경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아미노산이 대세가 되고 있다.


필수아미노산 중 라이신과 트립토판, 발린 등 3개 품목을 생산하는 CJ제일제당은 “친환경 발효공법을 고집한다”며 “곡물 원재료를 활용, 미생물 발효공법으로 아미노산을 생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정 미생물이 당을 먹고 아미노산을 만들어내는 성질을 활용한 것이다. 즉 미생물의 먹이로 당 성분이 풍부한 옥수수 등의 곡물을 제공해 아미노산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발효공법은 아미노산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나 폐가스를 크게 줄일 수 있고,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원재료인 곡물을 재생산하는데 비료로 활용할 수 있다.


발효가 핵심 기술이다 보니 좋은 품질의 아미노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수한 ‘균주(菌株)’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생물 중에 필수아미노산 생산에 필요한 균주를 찾아내기 위한 연구개발(R&D) 경쟁력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한 환경 오염 물질인 질소의 배출 문제는 오랜 골칫덩이였는데, 이를 유발하는 사료 속 단백질 함량을 줄이고 대신 사료첨가제를 통해 아미노산을 보충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배합사료를 만들 때 단백질 원료 대신 사료용 아미노산을 활용하면 질소배설물이 10% 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영 CJ제일제당 바이오기술 연구소장은 “앞으로 식물 영양, 질병 대응, 친환경 신소재 등의 혁신적 신규 품목까지 확장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지속할 계획”이라며 “올해만 바이오 연구개발 분야에 약 800억원을 투자하고 이를 통해 확보된 기술 경쟁력으로 다시 고부가가치 사업을 성장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2019.09.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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