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서울에서 살아 걸어 나왔고, 다시 그리로 돌아갈 거예요”

[컬처]by 한국일보

한국전쟁 참상 전한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 전기

한국일보

미국 뉴욕헤럴드트리뷴 소속 기자였던 마거릿 히긴스가 한국전쟁을 취재하고 쓴 ‘자유를 위한 희생’의 표지. 히긴스는 이 책으로 여성으로선 최초로 퓰리처상 국제보도 부문에서 수상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자, 한국을 갈라놓은 국경으로 가다: 빨갱이들이 말과 포탄으로 싸우는 현장 발견.’

1950년 5월 29일 미국 뉴욕헤럴드트리뷴(트리뷴) 1면에 실린 이 기사 제목은 그 자체로 긴장감을 키운다. 작성자는 마거릿 히긴스(1920~1966). 한국전쟁 발발 이틀 만에 남한에 들어와 6개월 간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한반도 전역을 돌던 인물이다. 작업모로 애써 금발머리를 감추고 해병대에 합류해 인천상륙작전을 취재했고, 포격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도 지프 후드 위에 타자기를 올리고 타이핑을 하며 전쟁의 참상을 알렸다. 300여명의 한국전쟁 취재기자 중 여성은 히긴스 단 한 명. 그는 1951년에는 한국전쟁을 취재하고 쓴 ‘자유를 위한 희생’으로 퓰리처상 국제 보도 부문에서 여성 최초로 수상했다. 25일 개봉한 한국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 할리우드 배우 메건 폭스의 연기로 그의 활약상이 담겨있기도 하다.


‘전쟁의 목격자’는 그간 “매릴린 먼로를 닮은 금발의 종군기자”로만 기억돼 온 히긴스의 진짜 삶을 돌이켜본 책이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앙투아네트 메이가 히긴스를 기억하는 주변인 인터뷰와 그가 생전 쓴 기사, 기록 등을 재구성해 완성했다. 히긴스의 어릴 적 일화부터 사랑, 일, 그리고 죽음에 관해 솔직하고 대담하게 그려냈다.


히긴스는 홍콩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 출신 아버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다. 히긴스의 부모는 1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 대피소에서 만났다. 저자는 이를 ‘히긴스의 운명을 점칠 수 있는 만남’으로 표현했다. 에너지 넘쳤던 어머니의 교육열 덕에 그의 학창시절 학업 성적은 매우 우수했다. 경쟁심도 남달라 미국 버클리대,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수학했고 1942년 6월 마침내 트리뷴에 입사했다.


히긴스의 관심은 늘 전장으로 향했다.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콩고내전, 베트남전쟁 현장을 직접 누볐다. 굳이 고위 장교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고, 되레 참전 군인들과 함께 생활했다. 기사 곳곳에 총사령관에서부터 이등병까지 다양한 계급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이유다. 히긴스는 남들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자료를 읽고 거의 매일 1면에 실릴 기사를 송고하면서도 3,000자가량의 정보를 정리하고서야 잠에 들었다고 한다.


저자는 히긴스가 평생 두 갈래의 전쟁을 치렀다고 했다. 실제 총탄이 오가는 전쟁 외에도, 여성 종군기자로서 자신을 향한 왜곡된 시선과 불평등에 맞서야 했다. 한국전쟁 당시 히긴스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찾아가 취재 기회를 달라고 항의한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에는 자네에게 맞는 설비가 없네. 여성용 설비 말일세.”(맥아더 장군) “한국에서 화장실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전 독일에서 살아 남았고, 서울에서도 걸어 나왔어요. 그리고 다시 걸어 들어가고 싶습니다.”(히긴스) 맥아더 장군은 히긴스의 설득에 한국에서 여성 금지령을 해제한다는 전신을 트리뷴에 보냈다.


누구보다 강인했던 히긴스였지만 그를 스러지게 한 건 작디작은 벌레의 공격이었다. 베트남전쟁 취재 중 현지에서 맞닥뜨린 레슈마니아증(모래파리가 물어 원생동물이 혈관으로 들어가 간, 비장을 공격하는 병)으로 1966년 1월 숨졌다. 히긴스는 미국 버지니아주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다. 장례식 당일 미국 언론 워싱턴 이브닝 스타는 사설 면에 묘지를 묘사한 그림과 함께 이 같은 문구를 실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다시 그녀의 병사들과 함께 있다.”

한국일보

전쟁의 목격자 / 앙투아네트 메이 지음ㆍ손희경 옮김 / 생각의힘 발행ㆍ436쪽ㆍ1만6,000원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2019.09.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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