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은 촛불... “검찰 개혁” 함성이 더 컸다

[이슈]by 한국일보

28일 중앙지검 앞에서 대규모 집회… 강압수사ㆍ언론의 유죄 추정 보도 여파


“무조건 조국 지지 의사도 아냐” 문 정부 엄호로 보기도 어려워

한국일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8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코 앞에서 ‘검찰개혁’을 외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문제를 두고 2017년 3월 박근혜 탄핵 이후 2년 반 만에 열린 촛불집회였다. 당초 10만명 정도 참석을 예상한 집회였으나 주최측은 200만명 참석했다 주장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사람이 너무 많아 인근 편의점 음식이 동나고 휴대폰이 터지지 않을 정도였다. 현장에선 ‘검찰 개혁’ ‘조국 수호’ 등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앞서 여섯 차례나 검찰개혁 집회를 열었던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조차 예상치 못했다는 규모와 열기였다. 현 정부의 인기가 떨어질 법한 집권 중반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다시 촛불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달 5일로 예고된 검찰개혁 집회는 또 어떻게 될까.


◇ “단순한 조국 엄호 집회 아니다”


이날 집회에는 온갖 손팻말들이 등장했다. ‘특수부 폐지, 공수처 설치’는 물론, ‘정치검찰 물러나라’, ‘검찰 쿠데타, 국민이 제압한다’에서부터 ‘우리가 조국이다’ ‘이제는 울지말자, 이번엔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 ‘개싸움은 우리가 한다’를 거쳐 ‘자한당을 수사하라’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 모든 표현을 총정리한 구호가 ‘검찰 개혁’ ‘조국 수호’였다.


일각에선 현 정부 지지층이 결집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단순히 ‘친 정부 엄호집회’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실제 집회에서 만난 직장인 강나루(37)씨는 “검찰의 권한이 무엇이며 어디까지인지, 우리 사회가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조 장관을 지지한다기보다 조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보니 검찰개혁이 필요하다 생각해 시위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조국 수호’ 구호가 나왔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 구호를 따라 했다 해서 조 장관 혹은 현 정부를 지지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집회엔 현 정부를 지지한다는 뜻도 포함됐겠지만, 그보다는 검찰이 ‘조 장관 퇴진’을 넘어 ‘검찰 개혁 무산’을 노린다는 의심이 더 크게 작동한 것 같다”며 “단순한 지지층 결집인지, 아니면 좀 더 포괄적인 검찰 개혁 요구인지는 앞으로의 집회 진행 방향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노무현 트라우마 불러냈다”


가장 직접적 원인은 검찰의 강압적 태도, 언론의 ‘유죄 추정’ 보도가 꼽힌다. 이번 수사에서 결정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지난 23일 조 장관 서울 방배동 자택 압수수색이었다. 엄청난 기밀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닌 일반 가정집에 수사관들이 들어가 점심 식사까지 해가며 11시간 동안이나 압수수색하는 장면은 ‘한번 검찰의 표적이 되면 저렇게 탈탈 털린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여기다 ‘의혹 제기’를 넘어 혐의를 단정하고, 아예 파렴치범 취급하는 언론보도도 분노를 부채질 했다.


이런 현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과 언론에 의해 사실상 타살됐다는 아픈 기억으로 연결된다. 집회에 참석한 박모(44)씨는 “이대로 검찰 수사를 놔두면 노 전 대통령과 같은 비극이 반복될까봐 두려워서 촛불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박씨의 아내도 “지금처럼 강압적인 검찰의 수사 행태가 이어진다면 촛불시위에 나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직장인 박영훈(36)씨는 “지금 검찰 수사 행태는 한마디로 국민이나 국민이 뽑은 정부보다 자신들이 더 높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며 “누가 주인인지 검찰에게 보여주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집회 현장에서 언론도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보수언론은 조롱당했고, 진보언론으로 꼽히는 JTBC도 인터뷰를 거부당하거나 ‘공정보도’ 구호를 들어야 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 장관도 잘못이 있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유독 조 장관에 대해서만 엄하게 수사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도 크다”며 “그러다 지난 주 조 장관 자택 압수수색을 계기로 그간 누적된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에 대한 분노가 한번에 터져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 때는 고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등 그간 검찰의 부실 수사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상당히 많았다.


이 때문에 이번 촛불집회는 정치권, 검찰은 물론 여론 변화에도 미묘한 파장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신진욱 교수는 “조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라는, 현 정부에 불리한 국면에서 오히려 촛불시위가 터져 나왔다는 것은 한마디로 야당인 자유한국당에 대해서는 ‘너희들은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셈”이라며 “동시에 정부 여당 역시 ‘검찰 개혁을 제대로 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지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 이해하다가는 나중에 더 큰 반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나 개인 옹호는 경계해야”


이번 집회가 검찰 개혁보다는 조 장관 개인과 정권 지키기로 기울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집회에서 조 장관이 억울하다는 얘기는 많았지만 ‘조국 표 검찰 개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았고, 검찰 수사를 두고 ‘쿠데타’라고 지칭하는 위험한 장면도 있었다”며 “지금처럼 특정 인물을 지키겠다, 구속시키겠다는 식의 대결이 이어지면 양측 모두 기존 제도를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부딪힐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촛불집회가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큰 규모로 진행되는가에 상관없이 검찰 수사에 따른 진실 규명은 또 그것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걸음 더 나가 여당에 대해서도 “촛불집회가 지금 당장 이롭다고 그 현장에 나가서 발언하는 모습은 좋지 않다”며 “시민들 집회는 집회대로 두되 적법한 수사절차는 그 자체로 존중하고 적절한 검찰개혁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촛불시위는 앞으로도 강경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병훈 교수는 “검찰이 칼을 내려놓을 것 같지는 않고, 그렇게 되면 촛불 역시 자극을 받아 계속될 것“이라며 “조 장관에 대한 비판 의견 역시 여전히 많은데, 대규모 집회가 경쟁적으로 열린다면 여의도 정치가 실종되고 길거리에서 여러 정쟁이 증폭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2019.09.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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