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따르라” “무릎에 앉아 봐라”실업팀 성인 선수도 폭력에 멍든다

[이슈]by 한국일보

인권위, 지자체 등 소속 4069명 조사

“폭력 경험”26% “성폭력 피해”11%

학생 선수들 15%ㆍ4%보다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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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부 선수들이 트랙 옆에서 얼차려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시합이 일주일 남았는데 시청 분들이 맨날 술자리에 끌고 나가요. 일주일 내내 술 마신 선수도 있어요.” (30대 초 여자선수)


“술 마실 때 남자 선배는 옆에서 술을 따르라 하고, 남자 지도자는 자기 무릎 위에 앉아보라고 하더라고요.”(30대 후반 여자선수)


2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실업팀 성인선수 인권실태 조사 결과’에 담긴 내용이다. 직업이 ‘운동’이고, 어엿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술자리 요구는 끊이지 않는다 했다. 이런 감춰진 성폭력 말고 실제 성폭력에 노출된 이들도 10명 중 1명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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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실업팀 성인선수 인권실태_신동준 기자/2019-11-25(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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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폭력 경험 주기_신동준 기자/2019-11-25(한국일보)

올해 초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성폭력 사태 이후 인권위가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40여개 공공기관 소속 실업선수 4,06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1,251명 응답)와 심층인터뷰(28명)를 진행한 끝에 얻은 결과다.


인권위는 지난 7일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학생 선수들을 대상으로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놀랍게도 어린 학생보다 어른들 피해가 더 컸다.


성인 선수 중 폭력을 경험했다는 이들의 비율은 26%(326명)에 달했다. 초중고 학생 선수들의 14.7%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폭력 경험 주기는 1년에 1~2회가 45.6%로 가장 많았고, 한 달에 1~2회 29%, 일주일에 1~2회 17% 순이었다. ‘거의 매일’이라고 대답한 이들도 8.2%나 됐다. 남성 선수의 경우 주된 가해자는 선배 선수(58%)였고, 여성 선수는 코치(47.5%)였다. 신체 폭력을 당한 선수들 가운데 67%는 아무 대처도 하지 않고 그냥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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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폭력(33.9%ㆍ424명)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 XX야’ ‘이 X아’ ‘글러빠진 XX야’ 같은 욕설은 기본이었고, ‘실적 못 내면 잘라버리겠다’는 막말도 늘 들어야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 몸 하나 제대로 못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한 30대 후반 선수는 “아프다는 말을 하면 대부분의 감독님은 화 내거나 무시한다”며 “스파르타식만 강조하니 선수 생명도 금방 끝난다”고 말했다.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는 다른 20대 후반 선수는 “모든 걸 ‘정신력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라 내가 우울증에 걸린 줄도 모를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성폭력 피해 또한 학생 선수들(3.8%)보다 훨씬 더 많은 11.4%(143명)나 됐다. ‘신체 일부를 강제로 만지게 하거나 마사지, 주무르기 등을 시키는 행위’가 4.1%(남 1.4%, 여 2.7%)였고, ‘성적 농담’이 6.8%(여 5.2%, 남 1.6%)였다. 강제 키스나 애무를 당했다고 답한 경우는 여성선수가 11명, 남성선수가 2명이었고, 직접적 성폭행 피해는 여성선수 2명, 남성선수 1명으로 드러났다.


성인 선수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보복이나 팀 해체가 두려워서였다. 인권위는 “성인인데도 일상적 폭력과 통제가 심각하고, 특히 여성 선수는 회식 강요나 성희롱 등에 더 취약했다”며 “실업팀 선수의 인권보호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2019.11.2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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