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대서 바람 만나고, 바닷가에서 청어과메기 맛보고... ‘블루로드’ 걷다

[여행]by 한국일보

고래 뛰어놀던 바다에 BTS가 떴다…영덕 겨울바다 기행

한국일보

평범한 바다도 그들이 다녀가면 특별해진다. 영덕 축산면 경정항 인근 바닷가에 BTS의 뮤직비디오 촬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영덕=최흥수 기자

부산에서 강원 고성을 잇는 코리아둘레길 동해안 구간 중 영덕을 통과하는 걷기 길의 다른 이름은 ‘블루로드’다. 동해 바다 어느 한 자락 푸르지 않은 곳이 있을까마는 드넓은 모래사장과 아기자기한 갯바위가 어우러진 영덕 바다가 그만큼 짙고 푸르다는 의미겠다.

한국일보

상대산 꼭대기 관어대에서 내려다본 고래불해수욕장.

영덕 최북단에서 내려가면 고래불해수욕장에서 블루로드가 시작된다. 병곡면 소재지에서 시작되는 모래사장이 영해면 대진해수욕장까지 장장 4km 넘게 이어진다. 군에서 자랑하는 것처럼 ‘명사이십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동해안에서 가장 긴 해변이다. 해수욕장 초입의 고래 모양 전망대는 맞은편 해변 끝자락 상대산(183m)과 대척점에 있다. 상대산은 높지 않지만 사방으로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야가 넓다. 특히 고래불해수욕장과 푸른 바다가 거의 수직으로 내려다보인다. ‘고래불’이라는 지명은 목은 이색이 이곳에서 고래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한국일보

상대산 꼭대기의 관어대. 목은 이색이 고래불해수욕장과 바다를 조망하던 곳이다.

한국일보

관어대에서 바다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동해안에서 가장 넓은 영해평야가 펼쳐진다.

꼭대기에 세워진 ‘관어대(觀漁臺)’는 물고기를 관람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산 아래 괴시마을에서 태어난 목은이 이곳에 올라 푸른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붙인 이름이다. 그는 ‘관어대부(觀漁臺賦)’에서 날씨가 좋으면 바다가 거울을 닦아 놓은 것처럼 맑고, 파도가 치기 시작하면 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또 바다를 내려다보면 물속을 헤엄치는 고기가 몇 마리인지 알 수가 있다고 표현했다.


관어대에서 바다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드넓은 영해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영해평야는 울진 평해, 포항 흥해와 함께 동해안의 3대 평야로, 그중에서도 가장 넓다. 관어대까지는 대진해수욕장과 대진항에서 등산로가 나 있다. 왕복 약 2km에 불과하지만 1시간은 잡아야 한다. 가파른 계단을 끝없이 오르는 쉽지 않은 길이다.

한국일보

영해면 대진항 일출. 물살을 가르며 포구를 빠져나가는 어선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일보

대진항 일출. 포구를 감싼 양쪽 방파제 끝 두 개의 등대까지 산책로가 연결돼 있다.

상대산 아래 작은 포구인 대진항은 겨울철 일출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항구 북측 산책로에 서면 포구를 감싼 방파제 사이로 조업에 나서는 어선들이 물살을 가르고, 그 너머로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이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인근에서 가장 큰 축산항이다. 항구 바깥 죽도산 꼭대기에 등대를 겸한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계단 없는 산책로가 지그재그로 조성돼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죽도산은 이름 그대로 대나무 섬이다. 조그만 산봉우리 전체가 대나무로 덮여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검푸른 바다와 힘차게 뻗은 해안선, 아기자기한 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 아래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도 있어 해안 절경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한국일보

죽도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축산항 풍경. 영해 인근에서 가장 큰 항구다.

한국일보

죽도산은 이름처럼 전체가 대숲이다.

한국일보

항구 끝자락에서 전망대까지 대숲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다.

영덕에서는 ‘대게’라는 명칭이 죽도산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축산항 아래 경정리는 영덕이 자랑하는 대게 원조 마을이다. (울진 평해읍 거일리도 원조 마을이라 주장한다.) 경정2리 바닷가에 세운 비석에는 고려 충목왕 2년(1345) 영해부사 정방필이 이 마을을 순시하고, 이곳에서 나는 게의 다리가 죽도산의 대나무를 닮아 대게라 부르게 됐다고 적혀 있다. 행정 지명은 경정리지만 주민들은 차유(車踰)마을이라 부른다. 영해부사 일행이 수레를 타고 넘은 곳이라는 의미다. 요즘 경정리 바닷가에는 청어를 널어 말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지역에선 청어과메기가 꽁치에 비해 기름기가 많아 더 쫄깃하고 고소하다고 자랑한다.

한국일보

축산면 경정리 바닷가에 청어과메기를 널어 말리는 모습. 기름기가 많아 꽁치과메기보다 더 고소하다고 자랑한다.

한국일보

경정2리 차유마을의 대게원조마을 비석.

한국일보

경정리 바닷가의 버스정류장. 노란색 시내버스 일부를 형상화한 모양이다.

평범한 바다도 그들이 다녀가면 특별해진다. 영덕에서도 한적한 편인 경정리 바다가 최근 방탄소년단(BTS) 촬영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2015년 BTS가 경정항을 비롯해 인근 해변에서 ‘화양연화’ 프롤로그 뮤직비디오와 앨범재킷을 촬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덕군은 뒤늦게 표지판을 세웠다. 경정항에서 이동 커피숍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BTS 덕분에 외국인까지 찾아오고 있다며 한류 스타의 영향력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국일보

경정항 인근 바닷가에 BTS 촬영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한국일보

영덕 ‘블루로드’ 이정표 뒤로 검푸른 바다가 넘실거린다.

한국일보

BTS가 ‘화양연화’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축산면 경정항 풍경.

한국일보

대게 집게발이 감싼 모양의 창포말등대. 도로와 붙어 있어 접근이 쉽고, 독특한 외관으로 영덕의 ‘인증샷’ 명소로 떠올랐다.

한국일보

영덕 영해면 주변 여행지도. 송정근 기자

쪽빛 바다를 왼편에 끼고 조금 더 내려가면 영덕의 상징 창포말등대다. 1984년 세운 24m 높이의 하얀 등대를 대게 집게발이 감싸고 있는 특이한 모양이 눈길을 잡는다. 바로 아래에 넘실거리는 바다와 어우러져 ‘인증샷’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등대에서 해안까지 산책로가 조성돼 있고, 인근 해맞이공원과 연결돼 있어 일출을 감상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영덕=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2020.01.20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