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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다른 생활 탐구 - 종합재미상사 안정화 김신범 부부

“삶을 재미나게 하는
모든 것 취급합니다”

by한국일보

4년 전 결혼한 안정화(36) 김신범(36) 부부는 겨울이면 ‘외짝장갑중계소’를 연다. 짝 잃은 외톨이 장갑을 모아 짝을 찾아주는 일이다.

 

비슷한 것끼리 짝을 맞춰 간단히 수를 놓거나 바느질과 뜨개질로 작은 장식을 달아 외로운 장갑을 달래준다. 함께하려는 사람을 모아 워크숍도 한다. 이번 겨울에는 마포의 한 재래시장 안 공방 등 세 군데에 장갑 수거함을 달았고 두 차례 워크숍을 했다. 지난달 10일 첫 번째 워크숍에서 부부는 광화문광장의 촛불시민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외짝 장갑에 세월호 노란 리본과 촛불을 수놓았다. 그동안 모은 장갑은 40개 정도. 워크숍 참가자는 많아야 서너 명. 장갑 모으고 워크숍 준비하고 장소 구하고 사람 모으는 게 더 번거롭지만, 올겨울엔 한 번 더 한다. 21일 서울 반포동의 작은 문화공간 밸류가든에서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 한다. 그까짓 장갑 값이 얼마나 한다고, 날씨가 푹해서 장갑 낄 일도 별로 없는데 왜 굳이 그런 수고를 할까. 아이디어를 낸 김신범씨가 설명했다.

“삶을 재미나게 하는 모든 것 취급합

‘재미부부’ 안정화 김신범씨. 두 사람이 낀 장갑의 노란 리본과 촛불은 촛불집회와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손수 수놓은 것이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3년 초 친구의 페이스북에서 추억이 있는 아끼던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려 마음이 아프다는 글을 봤어요. 안타깝네, 외짝 장갑들을 모으면 새로운 짝을 찾을 수도 있겠는 걸. 불현듯 그런 생각이 떠올라 재미 삼아 한 번 해보자 했죠. 시작할 때 구상은 짝 맞춰서 필요한 곳에 보내거나 팔아서 수익을 기부하는 거였는데, 실제로 해보니 쉽지 않더라구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네’ 하면서도 호응은 별로 없고. 거리 가판대에서 한 켤레에 2,000원 하는 장갑을 보면서 왜 굳이 이 일을 할까 싶기도 했고요. 그래도 계속하는 것은 쓸모 있는데도 버려지는 물건에 대한 고민 때문이에요. 물건을 쉽게 버리기보다는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더 사용하는 마음을, 그런 작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삶을 재미나게 하는 모든 것 취급합

종합재미상사는 삶의 재미를 찾아내고 전파한다. 종합재미상사 페이스북에서.

삶의 재미 거래하는 종합재미상사

짝 잃은 장갑 프로젝트는 ‘종합재미상사’의 겨울 상품이다. 종합재미상사는 “스스로 삶의 재미를 만들어내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꿈꾸며” 부부가 차린 가상 회사. “삶을 재미나게 하는 모든 것을 취급”하는 이 회사는 “능동적인 여가를 지향하고, 청년들의 소규모 생산 활동을 지지하며, 많은 사람들이 삶의 재미를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 되는 것”이 목표다.

 

부부는 부지런히 생활 속 작은 재미를 찾아 나눠 왔다. 2014년 종합재미상사의 봄 신상품으로 내놓은 ‘내가 그린 결혼 그림’은 친환경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었으나 재생종이 청첩장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부부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였다. 그때만 해도 작은 결혼식이 낯설어서 정보가 별로 없었다. 그해 여름에는 ‘짝 잃은 귀걸이’ 프로젝트를 했다. 지난해는 5명의 친구들과 북한산 둘레길을 함께 걷는 재미를 누렸다. 1년간 둘레길 71.5km 21개 구간을 열네 번에 나눠 걸었다.

 

재미라야 별난 게 아니다. 부부가 권하는 재미는 재미있을 것 같은 공간과 행사, 사람 만나는 재미, 이야기 듣는 재미, 걷는 재미, 음식 만들어 먹는 재미 같은 사소한 것들이다.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함께라서 더 좋은 재미를 나눈다.

 

“사는 게 재미없다고요? 조금만 찾아보면 얼마나 많은데요.” 안씨의 말에 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맑고 순한 표정이 서로 닮았다.

 

각각 환경단체와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던 두 사람은 2년 반 연애 끝에 2013년 10월 결혼했다. 사무실에서 종이컵 안 쓰고 이면지를 사용하는 안정화씨를 보고 동료가 환경단체 다니는 청년이 있다며 김씨를 소개해줬다. 전통혼례식을 올린 두 사람의 혼례복은 이것저것 만들기 좋아하는 안씨가 직접 지었다. 직장 다니며 2주에 한 번씩 공방에 가서 배운 솜씨로 자기가 입을 한복을 다 짓고, 짝꿍 옷은 시간이 모자라 저고리만 완성하고 바지는 시장에서 맞췄다.

전등 끄고 한 달 촛불 켜고 집들이

결혼 후 첫 겨울인 그해 12월, 신혼 부부는 한 달 간 전등을 끄고 살았다. 마침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춰 핵발전에 대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밀양 송전탑 문제가 한창 이슈가 됐던 그 때, 서울에서 쓰는 전기를 생산하느라 밀양 주민들이 고초를 겪는 게 미안해서였다. 촛불을 켜고 집들이를 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무심코 전등 스위치를 켰다가 얼른 끄고 촛불을 찾아 들곤 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으려고 선택한 불편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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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짝 찾기 워크숍. 안정화씨(중앙)가 친구와 함께 외짝 장갑을 수선하고 있다. 종합재미상사 제공

이쯤에서 짐작되듯 부부는 환경과 생태, 더불어 사는 삶에 관심이 많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고민하던 두 사람은 2015년 2월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4월부터 7개월 간 유럽을 여행했다. 다르게 살기를 배우고 싶어서 떠난 여행에서 부부는 남들 다 가는 관광 명소 대신 숲과 생태 공동체, 시민들이 운영하는 대안 공간을 찾아다녔다. 덴마크에서는 한 달 이상 머물러야 게스트로 들어갈 수 있는 생태공동체 스반홀름에서 두 달 간 살았고, 유기농 농장에서 일하며 3개월 간 영국을 여행하는 등 229일간 7개국 23개 도시를 여행했다. 경비를 최소로 줄여서 다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되도록 그 지역의 물건을 소비하고, 글로벌 대기업의 물건은 사지 않고, 일회용품은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수저와 텀블러를 들고 갔다. 김씨는 평소 젓가락과 컵을 꼭 들고 다니고, 안씨도 늘 컵을 갖고 다닌다. 산을 좋아하는 김씨는 쓰레기를 주우면서 등산한다. 두 사람의 첫 데이트도 그런 등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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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유럽 여행 중 덴마크의 생태공동체 스반홀름에서. 두 달 간 머물며 농삿일을 도왔다. 종합재미상사 제공

돌아오면 뭘 해서 먹고 살지 딱히 대책을 세운 것도 아닌 상태에서, 멀쩡히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장기 여행을 떠나는 게 불안했지만, 인생 전환을 꿈꾸며 길을 나섰다. 오래 전부터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안씨와 다르게 살기를 고민하던 김씨에게 여행은 좋은 계기가 됐다.

탄소발자국 지우려 나무를 심다

여행 후 두 사람은 ‘종합재미상사 해외 출장 보고’라는 이름으로 마포 성미산마을의 작은 책방에서 작은 사진전을 열었다. 여행에서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나누고 싶어서 벌인 행사다.

 

부부는 여행 중 비행기, 기차, 차량 등으로 장거리 이동을 하면서 발생한 탄소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나무를 심고 있다. 계산해보니 나라 간 도시 간 총 이동 거리가 29.854km, 거기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6.2톤, 소나무가 60년간 자라면서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으로 따져서 44그루 이상 심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무 심을 땅이 없는 부부는 환경단체 등의 식목 행사에 몸과 돈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영종도 세계평화의숲, 역촌동 연서공원, 상암동 하늘공원에 총 18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부부는 원룸에 산다. 자동차는 없다. 여행 두 달 전 직장을 그만 둔 뒤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지인들의 일을 도와 최소한의 생활비를 번다. 월세와 통신비, 공과금 내고 나머지는 거의 식비란다. 새 물건을 안 사려고 노력하고, 있는 물건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고, 안 쓰는 물건은 주변에 나눠주거나 재활용가게에 기증한다. 설거지 마지막 헹굼물이나 화장실에서 온수가 나오기 전 찬물은 버리지 않고 대야에 받아서 변기에 사용한다. 아기가 없고, 둘 다 건강하고, 소비를 최소로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돈 문제로 괴로워해본 적은 없다고 한다. 돈은 없지만 시간 여유가 있고 선택해서 능동적으로 사는 삶에 안정감을 느낀다.

이사 가듯 가볍게 귀농 준비

지금 두 사람은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 가서 살 지역과 집을 알아보는 중이다. 농사라곤 지난해 두 달 귀농학교 다닌 것과, 노들섬의 시민 텃밭에서 삼 년간 작은 텃밭을 일궈본 정도. 땅을 갈지 않고 약도 안 치고 토종벼를 키우는 자연재배 논에서 지난해 총 네 번에 걸쳐 모내기, 풀 베기, 수확을 해보긴 했지만, 농사꾼 되기에는 어림없다. 그런데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단단히 각오하고 오래 준비해서 귀농한 사람들도 정착에 실패해 도시로 되돌아오곤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부부, 참 태평하다.

 

“귀농이라기보다 그냥 이사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삶의 터전은 언제든 옮길 수 있는 거니까요. 우리 부부가 먹을 만큼만 작게 지어보려고요.”

 

월급 받고 노후 대책 세우고 집 사려고 아등바등 하는 데서 벗어나 비장함 대신 가벼움을, 심각한 의미 대신 소박한 재미를 삶의 태도로 선택한 이 부부를 남들은 더러 신기하게 본다. 하지만 둘은 자신들이 그다지 남다르게 산다고 생각지 않는다.

 

“누구나 재미나게 나답게 살고 싶어하지만, 일이나 직장에 매여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많이 봤어요. 저희는 그럼 우리라도 하고 싶은 거 하고 표현하면서 살아보자는 것뿐이에요. 당신들도 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데 다르게 보이나 봐요. 누구나 저마다 다른 삶, 다른 재미를 갖고 사는 거니까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아요. ‘행복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일치할 때 찾아온다”는. 저희가 하려는 게 바로 그거에요.”

 

끝으로 종합재미상사의 신년 메시지를 전한다. “여러분, 새해 재미 많이 받으세요.”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