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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주거실험 '새동네' 프로젝트

불안하게 떠도는 삶에서
오래 머무는 삶으로

by한국일보

대한민국에서 집 걱정 없이 사는 건 행운이다. 집이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내 돈만 갖고 사기란 하늘의 별 따기, 무리해서 장만하면 빚 갚느라 허리가 휜다.

 

전세든 월세든 셋집살이도 고달프긴 마찬가지, 치솟는 전월세 가격은 2년마다 재계약을 할지 이사를 갈지 고민하게 만든다. ‘홈 스위트 홈’의 둥지라야 할 집이 까마득한 꿈이거나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다. 국토교통부의 ‘2014년도 주거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46.4%가 세입자이고 세입자 가구의 평균 거주 기간은 3.5년에 불과하다. 전국민의 절반이 떠돌이인 셈이다. 이래서는 삶이 안정될 수가 없다. 셋집이라도 좋으니 마음 편히 오래 살 수만 있다면 숨통이 트일 것 같은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불안하게 떠도는 삶에서 오래 머무는

새동네연구소 이재준 소장이 기획하고 제안하는 새동네 프로젝트는 집다운 집에서 마음 편히 오래 살 수 있는 권리를 상상이 아닌 현실로 바꿔나가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건축가인 이재준 새동네연구소장의 ‘새동네’ 프로젝트는 마음 편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좋은 집의 주거공동체를 꿈꾸는 실험이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을 짓거나 고쳐서 빌려준다. 여느 주택 임대 방식과 다른 점은 집 주인 맘대로가 아니라 철저히 사용자 중심이라는 것이다. 면적 20, 40, 60, 80㎡ 형을 기본으로 임대료를 제곱미터당 1만원으로 정했다. 보증금은 주변 시세를 따른다. 최소 2년부터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고, 재계약 인상률을 5%로 제한했다. 새동네 집에서 월세는 버리는 돈이 아니다. 2년 단위로 재계약할 때마다 10%를 적립해주고 10년 후부터는 월세로 사용할 수 있다. 설계는 건축가들이 맡는다. 불편해도 참고 사는 집이 아니라 잘 설계된 좋은 집을 짓는다.

 

새동네 집은 회원들이 추천한 살고 싶은 동네에 짓는다. 준공 후 사용 승인이 나면 입주 신청을 받는다. 새동네 프로젝트의 온라인 플랫폼인 새동네 복덕방 에는 회원들이 추천하는 살고 싶은 동네 37곳이 올라와 있다.

 

살고 싶은 동네의 살기 좋은 집에서 안심하고 오래 살면서 월세까지 돌려받는 방식이라니, 그게 가능할까. 이재준 소장이 4년 전 새동네 프로젝트에 착수할 때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서울과 청주에 만든 새동네 집 세 채는 그게 가능함을 보여준다.

불안하게 떠도는 삶에서 오래 머무는

새동네 프로젝트 1호인 서울 남가좌동의 가좌330 내부. 작지만 살기 좋게 잘 설계된 집이다. 새동네 제공

불안하게 떠도는 삶에서 오래 머무는

가좌 330의 외관. 새동네 제공

새동네 집 1호는 2013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지은 다세대주택 가좌330이다. 홍제천과 안산, 궁동공원에 가깝고 명지대에서 도보 10분, 신촌까지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이 집에는 6가구가 산다. 2014년 바로 옆에 들어선 가좌관330은 청년주거협동조합인 민달팽이유니온 조합원 4가구가 장기 임대로 살고 있다.

 

새동네 3호로 지난해 완공된 충북 청주의 사창186은 현재 입주 신청을 받고 있다. 충북대 옆 건물을 빌려서 원룸 17가구 주택으로 리모델링했다. 잠 잘 방만 따로 있고 거실과 부엌, 화장실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가 아니라 각각 독립적 생활이 가능한 집이면서, 더불어 사는 재미도 누릴 수 있게 공용 주방과 다용도실을 넣었다. 마당으로 이어지는 공용 주방은 다양한 주방기구를 갖추고 있어 방에서 쉽게 하기 힘든 요리를 할 수 있고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할 수도 있다. 1층 복도 끝에는 입주민들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 따로 있다. 사창186은 충북대 건축학과 학생들과 워크숍을 해서 설계했다.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등 1인가구가 많은 이 지역 특성에 맞춰 주사용자가 될 대학생과 청년들이 집에 바라는 바를 반영했다.

 

서울 홍은동과 신월동에도 새동네 집이 들어설 예정이다. 홍은동 프로젝트는 설계가 끝났다. 가구마다 작은 마당이 있고 마당이 서로 연결돼 입주자들이 자주 얼굴을 마주치며 살 수 있게 설계됐다. 신월동 집은 서울주택토지공사와 협력해 착공할 토지임대부 방식의 주택으로 1층에 아이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 있고 2층 내부에 공동 거실을 넣은 공동체주택이다.

 

새동네 주민은 필요할 때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사할 수 있다. 신혼 부부가 아이를 낳아 좀 더 큰 집이 필요하면 거기에 맞는 또 다른 새동네 집으로 가면 된다. 불안하게 떠돌며 막막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든든하다. 집에 끼워 맞춘 삶이 아니라 삶에 꼭 맞는 집이 가능하다. 현재 새동네 소식을 받아보는 회원 1,500명 중 연회비 10만원을 내고 입주를 기다리는 예비 주민이 50명, 연회비를 내진 않지만 입주 희망자가 50명 정도 된다. 예비주민은 우선 입주권을 갖고, 적립된 연회비는 입주 후 월세로 차감된다.

불안하게 떠도는 삶에서 오래 머무는

대학생을 위한 17가구 원룸 빌라로 리모델링한 사창186. 충북대 옆에 지은 이 집은 충북대 건축과 학생들이 설계에 참여했다. 새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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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186의 나누리방. 입주민들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다. 새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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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186의 나들마루. 마당으로 이어지는 공용 주방이다. 새동네 제공

새동네의 목표는 멋있고 근사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새동네는 보통 사람을 위한 보통 집을 짓습니다. 현재 국내 주거정책에서 소득 상위 20%는 자력으로 집 문제를 해결하고, 하위 20%는 공공임대 등의 방식으로 보호를 받지만, 그 사이에 있는 60%는 실수요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도 민간임대시장에 방치된 상태죠. 이들 보통 사람을 위한 주택 공급 방식이 필요합니다. 요즘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의 한 방도로 셰어하우스가 많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건 임시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셰어하우스는 이를테면 하숙집 같은 겁니다. 어쩔 수 없어서 모여 사는 거지 온전히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집이 아니죠. 혼자 살다가 결혼하고 아이 낳아도 계속 살 수 있는 집이라야 합니다. 머리 아프다고 두통약만 주는 건 임시처방일 뿐이죠. 주거 문제 해결의 핵심은 오래 살 수 있는 집, 곧 주거 안정화입니다. 그래야 삶이 안정되지요. 2년마다 이사해야 하는 불안한 주거로는 좋은 동네도 좋은 이웃도 만들기 어려우니까요.”

 

새동네의 실험은 규모로 치면 아주 작다. 작은 필지에 작은 집을 짓는다. 입주까지 마친 프로젝트는 아직 세 건에 불과하다. 안정적인 주거를 원하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집을 제공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좀 더 안정적이면서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새동네는 협동조합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시기획업체 글린트의 투자로 진행됐다. 협동조합이 되면 조합원 출자로 땅을 구입해 집을 지을 수도 있고 투자나 후원, 기부를 받아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신뢰를 쌓기에도 좋다.

 

새동네 프로젝트의 최대 목표치는 1만 가구다. 이 숫자는 현재 서울 전체 가구의 0.05%에 불과하지만, 뭉쳐서 네트워크를 이루면 안정적인 주거공동체를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회비 10만원을 내는 회원이 1만명이면 10억, 새동네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제 필요한 땅을 사고 집을 지을 수 있는 돈이다.

 

“신혼 부부가 방 한두 개짜리 전세를 구하려면 1억~1억5,000만원쯤 듭니다. 직장이 있고 1억이 있는 그런 가구 1만을 하나로 조직해서 모으면 1조, 그 돈이면 공동체 스스로 계속해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대신 작은 필지에 다세대주택을 짓고 그런 집을 곳곳에 만들어 연결하면 작은 집들의 네트워크, 새동네 공동체가 됩니다. 어디에 살든 집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는 새동네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셈이죠.”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을 만큼 주거 문제가 심각한 지금 이 나라에서 새동네는 주거난민의 불안한 삶에서 벗어나 집다운 집에서 오래 살 수 있는 희망의 모델을 실험 중이다. 누구나 안전하고 쾌적한 집에서 살 권리가 있지만 유보하고 살았던 그 권리를 되찾을 수 있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집에 저당 잡힌 삶이 아니라 집이 있어 행복한 삶을 모색한다. 집에 대한 다른 생각을 상상이 아닌 현실로 바꿔가는 새동네의 모험은 협동조합이 출범하면 프로젝트 2.0으로 진화할 것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