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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나는 사진 찍어주지 않는
사진사입니다

by헤럴드경제

참 이상한 일이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으면 실제 얼굴과 닮지 않은 사진일수록 더욱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컴퓨터 보정 작업을 거치면 남녀 공히 눈은 커지고 얼굴은 완벽한 대칭형이다. 사진관 광고에도 비포(before) 애프터(after) 증명사진이 등장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진(寫眞)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그런데 서울 계동 골목길에는 실제 얼굴과 똑 닮은 흑백 사진을 인화해주는 사진관이 있다. 실제 얼굴 본을 뜬 것처럼 정확히 일치하는 사진이다. 얼굴의 굴곡과 세세한 특성이 모두 담겨 있다. 두 달을 기다려야 보정이 없는, 단 한 장의 사진을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미리 예약을 해야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찾는 이가 많다.

 

“지금 당장 예쁘게 잘 나왔다고 만족하는 사진이 아니라, 10년 뒤 들여다보면서 당시 감정을 떠올릴 수 있는 사진을 찍습니다.” 정통 아날로그 흑백 사진을 고집하는 물나무 사진관 김현식 대표(49)를 만나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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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동 골목길에 위치한 물나무 사진관에서 만난 김현식 대표는 "간직하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사진관은 죽지 않았다

가장 한국적인 사진이란 무엇일까. 그는 한국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일본 잡지사 ‘수카라’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보는 관점과 우리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관점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 놀랐어요. 우리가 익숙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것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는구나. 시간이 한참 지나면 무엇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었는지 제대로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대상의 본질이 사진에 담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 대표가 피사체를 포착하는 과정을 보면 이렇다. 피사체 얼굴의 어떤 단편적인 부분이 부각되도록 사진을 찍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탐탁지 않은 부위를 가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진관 창문에 걸린 사진 속 얼굴에서는 겉멋이 들지 않은 편안함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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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화질보다 중요한 건 사진의 촉감과 기억"이라고 했다.

“대상의 깊이가 잘 드러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억지스럽지 않아야 해요.” 겨울 오후의 자연광이 스튜디오로 쏟아질 수 있게 사진관 천장을 유리로 만든 것도, 사진 속 사람들이 가만히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는 등 단순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사진의 고유성을 살리려는 고민의 결과였다.

 

“색과 형태를 예쁘게 보정하고 인위적인 자세를 잡는 사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담아낼 수 있는 사진이 한국적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을 보고 피사체의 전체를 관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사진관 입구에는 그의 사진 철학을 보여주듯 ‘전신사조(傳神寫照), 인물의 외형 모사에 그치지 않고 인격과 정신까지 나타내야 한다는 한국의 초상화론’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사진 찍어주지 않는 사진사

김 대표가 사진관을 찾은 이들에게 필름 카메라를 내준 건 2015년께부터다. “사진만 30년 가까이 찍었어요. 사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계속됐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자신의 모습을 담을 수 있게 스스로 ‘자화상’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화상 프로젝트는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 아닌, 간직하고 싶은 사진을 만들어주기 위한 그의 고뇌에서 시작됐다.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카메라와 조명뿐이다. 카메라 뒤엔 커다란 거울이 놓여 있다. 거울 속 나를 가만히 응시한다. 평생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봤던 사람들이 자신과 난생 처음으로 마주한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리모컨으로 셔터를 누른다.

나는 사진 찍어주지 않는 사진사입니다

거울 속 자신을 응시하다가 직접 사진을 찍는다. 자화상 프로젝트 사진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에요. ‘누구의 친구’, ‘어느 회사의 사원’ 같은 모든 관계를 벗어던진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거예요.”

 

그런데 펑펑 울면서 나오는 사람도 있고, 자기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빨리 촬영하고 나와버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는 “이 자화상에는 진짜 나를 바라보며 홀로 고민한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사진은 찰나를 찍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찰나 그 이상을 담기 위한 그릇이에요.”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사진에 담긴 현재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시간의 손때가 필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다시, 아날로그

폴라로이드사는 2001년 파산했고 필름 생산을 접었다. 김 대표가 폴라로이드 필름을 아껴 쓰는 건 필름을 더 이상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단종된 흑백 폴라로이드 필름을 구하려고 지금도 경매 사이트를 뒤져본다고 했다.

 

“화질이라는 품질만 따지면 아날로그 사진이 디지털 사진을 따라잡을 수 없어요. 하지만 아날로그 사진은 다시 인화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한 장뿐인 사진이에요. 화질보다 중요한 건 사진의 촉감과 기억이에요.”

 

박물관에나 전시돼 있을 법한 대형 필름 카메라에 폴라로이드 필름을 넣는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사진관 벽에 걸린 사진 속의 인물을 지긋이 쳐다본다. 편안하고 느긋한 미소가 번진, 낯설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들이 사진에 찍혀 있다. 시간의 켜가 쌓인 사진일수록 색감은 더욱 아련하다.

 

“사진은 기록입니다.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모두 이 사진 한 장에 담겨요. 겉모습이 예쁘게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몇 년 뒤 진짜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즐거워할 테니까요.” 그의 미소 위로 비추는 겨울날의 햇볕이 따사롭게 사진관을 감돌았다.

이정아 HOOC Editor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