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낼수록 더 화가 난다, 끝없는 굴레의 연속

[라이프]by 헤럴드경제

처음에는 무시무시한 인상으로 다가왔던 ‘분노사회’라는 말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범죄는 점점 더 극악무도해지고 사람들은 사소한 이유에도 화를 낸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분노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이 또 다른 분노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미디어는 오히려 분노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분노 속에서, 또 분노를 유발하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 분노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점 커지는 반면, ‘화’를 유발하는 상황들이 발생해 상충하는 현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화를 낼수록 더 화가 난다, 끝없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관련 국민청원(사진=청와대 국문청원 게시판 캡처)

#1. 일명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가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129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국민청원 게시판이 열린 사상 처음이다. 이후 법무부는 정신감정 결과 김성수는 심신미약 상태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성수에 대한 비난은 여전히 하늘을 치솟는다.


#2. 한 온라인 카페에 유치원 교사 A씨가 자신에게 안기려던 원생을 밀쳐 나뒹굴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글이 올라왔다. 글은 일파만파 퍼졌고 A씨는 ‘마녀사냥’식 비난에 시달렸다. 글쓴이는 해당 유치원에 찾아가 A씨와 동료 교사들을 무릎 꿇리고 물을 뿌리기까지 했다. 결국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이기도 했던 A씨는 ‘죽음’으로 마녀사냥을 끝냈다.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들로 인해 또 다른 분노가 생겨나는 요즘이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분노가 또 다른 분노를 키우면서 무서운 ‘힘’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위의 두 사건은 분노가 지닌 결속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자는 대중이 분노로 똘똘 뭉치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후자는 분노를 중심으로 한 집단력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를 극단적으로 알려준다.

화를 낼수록 더 화가 난다, 끝없는

(사진=픽사베이 제공)

 ‘또 다른 분노’ 불러오는 결속력, 온라인에서 더 강화

인간의 여러 가지 감정 중 ‘분노’ ‘화’ ‘답답함’ 등이 빠르게 덩치를 키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공감’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보다 쉽게 타인의 이해를 받는다.


일례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글 유형은 억울하고 끔찍한 일을 당한 내용이다. 물론 무언가를 제안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글도 있지만 비논리와 욕설로 점철된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통의 장’인 동시에 ‘분노 분출의 장’이 되어버린 것.


여의도 성모병원 뇌건강센터 나해란 교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분노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분노’라는 감정에 공감한다는 것”이라면서 “‘슬프다’ ‘착하네’ 등의 반응으로 끝나는 감정은 단편적인 공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분노는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비슷한 일을 겪거나 마음에 품고 있는 일들에서 비롯된다. 데이트 폭력, 갑질 등처럼 말이다”라고 국민청원을 둘러싼 심리를 짚었다.


공감은 일종의 결속력이다. 다함께 분노하고 있다는 은연중의 안심, 나도 분노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뜻밖의 공동체 의식을 움직인다. 그러다가 점차 도를 지나칠 정도로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고 화를 주체하지 못해도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무의식이 피어난다.

화를 낼수록 더 화가 난다, 끝없는

(사진=픽사베이 제공)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원장은 잔인한 분노범죄를 자주, 사실적으로 접하게 되는 요즘의 상황들은 나쁜 짓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함께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감정은 자신의 분노를 분출하는 데 합리화하는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이런 분노의 결속력은 네티즌의 힘과 맞물려 온라인상에서 더 강하고 빠르게 퍼진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예가 ‘혐오표현’이다. 맘충과 급식충 등과 같은 ‘~충’ ‘여혐·남혐’ ‘한남’ ‘김치녀’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쓰는 은어까지, 수많은 혐오표현들이 일상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이 삭제한 1억2400만 개의 게시물에는 혐오표현, 증오 연설, 인종차별 등과 관련한 내용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최명기 원장은 혐오표현이 생겨나는 배경에 분노가 또 다른 분노를 불러오는 과정이 투영됐다고 봤다. 최 원장은 “사람은 분노를 할 때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왜 사회는 잘못됐나?’ ‘누구 때문인가?’ 등 그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내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야 내 분노에 대한 해석이 된다고 여긴다”며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탓을 돌리며 ‘적’을 찾아낸다. 혐오표현이 남녀, 세대차이의 기준으로 많이 생기는 것도 서로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오는 적대심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화를 낼수록 더 화가 난다, 끝없는

(사진=MBC에브리원 화면 캡처)

‘분노 표출’이 주는 카타르시스, 그 반작용은?

이 가운데 스트레스 해소방, 일명 '분노방'의 경우는 ‘분노가 또 다른 분노를 불러온다’는 명제가 지닌 폭력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짜증의 정도에 따라 해당 비용을 내고 부수거나 던질 수 있는 물건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짜증’ 정도라면 세라믹 10여개를 10분 동안, 욕이 나올 정도로 화가 날 때면 세라믹 무제한에 가전제품 1개를 15분 동안 부술 수 있는 코스가 마련되는 식이다.


‘분노방’은 독특한 개성을 지니는 공간에 인기를 끌었던 만큼 미디어에 노출되기도 했다. SBS 예능프로그램 ‘살짝 미쳐도 좋아’에서는 장희진이,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이상민과 제시가 분노방을 찾았다. XTM 예능프로그램 ‘M16’에서는 ‘사나이들의 스트레스 해소법 16’이라는 주제로 분노방이 소개됐다. 최근에는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시즌2'에서 스위스 친구들이 분노방을 방문해 신기해했다.


그런데 분노방은 최근 처음 등장한 공간이 아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10여 년 전, IMF 쯤 그릇깨기방, 가전부수기방 같은 곳들이 성행했다. 즉 분노방은 단순히 개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넘어서서 모두가 분노로 똘똘 뭉쳤을 때, 그래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원하는 수요가 증폭됐을 때 모습을 비추는 셈이다.

화를 낼수록 더 화가 난다, 끝없는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는 “취업, 저축, 경제, 부정부패 등 요즘 사회에 잘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만연하지 않나. 이렇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박탈감, 노력해도 안 된다는 좌절감 등이 겹치면서 복합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는 사회가 됐다”면서 “분노방은 이런 스트레스를 비상식적으로 표현할 수 없으니 돈을 지불하고 한정된 공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는 움직임이 발생한 결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노방을 통해 눈앞에서 구현된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불러올 수 있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내가 부순 물건의 파편, 과격한 도구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화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실체다. 잠재되어 있던 폭력성이 바깥으로 노출되는 건, 분노를 해소하면서 느꼈던 ‘카타르시스’와 동시에 나타나는 반작용이다.


최명기 원장은 “분노방에서는 실질적으로 내가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른다. 분노방에서 이것저것 때려 부수다 보면 나중에는 화가 났을 때 길거리의 차, 집에 있는 가구도 때려 부수고 싶게 된다”면서 “결국 분노방은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해결하지 못 한 분노는 언젠가 다시 분출된다”고 짚었다.


분노방은 단편적인 분노를 ‘해소’하는 데 그칠 뿐 ‘해결’해주는 건 아니다. 국민청원 등 요즈음 대중이 분노를 표출하는 공간과 방식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감정의 근본적인 문제는 분노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철학자이자 여성학자인 마사 C. 누스바움 미국 시카고대 철학부 교수는 자신의 저서‘분노와 용서’에서 “분노가 일어나게 된 계기의 가치를 존중하는 한 적절한 감정이 될 수 있지만, 지위에 집착하고 피해를 갚아주겠다는 소망을 품으면 문제가 된다”면서 “분노가 던지는 미끼를 물고 공상적 응징으로 나아가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단순히 분노풀이와 감정풀이로 귀결돼선 안된다는 것. 분노의 발산보다 제도적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일은 아닐까.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culture@heraldcorp.com
2018.11.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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