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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건축, 이미지 그 이상의 것을 담다

by헤럴드경제

국립현대미술관-뉴욕현대미술관 공동주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신스랩아키텍처 신형철 건축가 당선…파빌리온 조형물 ‘템플’ 전시

35년 된 폐선 그대로 활용…친환경 생태휴식공간 탈바꿈

 

소격동 한복판에 뒤집어진 배가 등장했다. 뾰족한 배의 선수 부분을 잘라 만든 조형물이다. 세월호 참사가 트라우마처럼 남은 한국인들에게 이것은 단순한 조형물로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육중한 덩어리는 햇빛 쨍한 날보다 비오는 날 더 애잔함을 뿜어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공동 주최하는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당선작이다. 신스랩아키텍처의 신형철 건축가 작품으로, ‘템플(Temp’L)’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6일부터 오는 10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설치될 예정이다. 

건축, 이미지 그 이상의 것을 담다

국립현대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공동 주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6’ 당선작 ‘템플(Temp’L)’.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올해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에는 총 23개팀이 참여했다. 심사에 참여했던 션 앤더슨(Sean Anderson) 뉴욕현대미술관 건축디자인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는 신 씨의 작품에 대해 “건축이 이미지를 넘어섰다”며 “컨템포러리 건축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작품이 공개되자마자 이것이 세월호를 상징하는 것인가 아닌가를 두고 말들이 나왔다. 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형철 건축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며 “건축은 건축일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이 얼마만큼 철저하게 건축적 이론에 근간하고 있으며, 환경, 생태, 재생과 같은 동시대 현안들을 짚어내고 있는지 설명했다. 일부 호사가들의 이른바 ‘세월호 타령’에 펀치를 가할 만 하다. 

건축, 이미지 그 이상의 것을 담다

폐선의 선수 부분을 잘라 만든 템플의 내부 조경모습.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건축가의 설명에 따르면 ‘템플’에 대한 아이디어는 현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ㆍ1887-1965)가 1925년 펴낸 책 ‘건축을 향하여’에 나오는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노트르담대성당부터 개선문까지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이 한줄로 나열돼 있고, 그 뒤로 거대한 여객선 형태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미지다. ‘보지 못하는 눈’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이미지에서 건축가는 “파리의 어떤 모뉴멘트들보다 더 거대하고 아름다운 물건(배)”을 보게 됐다.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게 영감을 준 건 현대미술의 거장 마르셸 뒤샹의 ‘샘(Fontaine)’이다. 남성용 소변기를 미술관에 가져다 놓은 작품으로, ‘레디메이드’ 개념을 현대미술의 창작 영역으로 이끌어 온 획기적인 작품이다. 신 건축가는 “화장실에 있으면 소변기이지만 미술관에 있으면 작품이 되는” 뒤샹의 개념에서 착안해, 이미 쓰여지고 버려진 선박을 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구상을 시작했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중국 등을 돌며 오래된 선박을 찾아나섰다. 폐선 해체 작업도 지켜봤다. 그러나 시간, 비용 문제가 따랐고, 결국 전라남도 목포에서 ‘물건’을 발견했다. 

건축, 이미지 그 이상의 것을 담다

템플의 내부 모습.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신 건축가는 겹겹이 벗겨진 페인트칠과 검붉게 녹슨 철이 세월의 더께를 드러내는 폐선의 외관을 있는 그대로 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내부는 대왕참나무, 마과나무 등을 심어 정원처럼 편안하고 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해 자연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도심 속 명상과 휴식공간을 만든 것. 35년 동안 제주와 내륙을 오가며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던 화물선은 이렇게 쓰레기에서 작품으로 거듭나게 됐다. 

 

신형철 건축가는 ‘건축은 감동을 주고자 하는 기계’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이 파빌리온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표했다. 

 

이 곳을 찾는 이들에게 그 ‘감동’은 전해질까. 

 

탄탄한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사회적인 이슈들을 짚어낸 작품, 그 맥락이 환경과 생태, 재생의 문제로 읽히든,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령하는 ‘사원(Temple)’으로 읽히든, 건축과 현대미술의 경계를 확장시킨 이 영리한 예술가의 의도한 바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적중할 것으로 보인다. 

 

김아미 기자 ami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