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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힘 자랑 말라는 ‘그 고흥’…
소록도에선 ‘묵직한 힐링’

by헤럴드경제

박지성·김일·유제두의 고향

힘 세지만 티 내지않는 고흥

거금도 동백, 과역 매화 한창

소록도 두 천사, 감동의 울림

마리안느·마가렛 43년 봉사

다큐 영화 시사회 ‘눈물바다’

노벨평화상 후보 거론도

 

고흥 가서는 힘 자랑 하지 말라고 했다.

 

산소탱크 박지성(36)이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박치기 제왕 김일(1929~2006), 복싱영웅 유제두(69)가 난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육군에서 수군으로 보직변경한 첫 부임지(만호)로 세계 최고 제독이 되기 위한 전략과 리더십을 키운 고을이고, 국내 최초 유인 우주선이 초강력 로켓엔진의 추진력으로 박차고 날아간 고장이기도 하다.

 

사람 뿐 만 아니라, 팔영산 아래 짓궂은 주인의 내기에 걸려들어, 화살과 함께 출발했던 고흥 말(馬)이 쏜살 보다 빨리 도착했다가 늦게 도착한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설화도 있다. 그 스토리 또한 당차다. 더 센 것이 있다. 고흥의 파워는 정신력에서 더욱 빛난다.

 

나이팅게일보다 거룩한 마리안느 스퇴거(83ㆍMarianne Stger), 마가렛 피사렉(82ㆍMargaritha pissarek)의 희생정신, 한센병 환우들이 인간 한계를 뛰어 넘는 재활과 치료과정에서 보여준 불굴의 의지을 간직한 곳이다. 그래서 고흥은 절망에 빠진 사람이 다시 한 번 휴머니즘에 희망을 걸어보는, 마지막 파워 힐링(Power Healing) 지대’이다. 그러나 고흥은 힘 자랑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봄 바람에 꽃 치장을 할 지언정.

힘 자랑 말라는 ‘그 고흥’… 소록도

‘박치기 제왕’ 김일 선수가 나고 자란 고흥 거금도는 과거 큰 금맥이 발견되기도 했던 곳이다. 몽돌해변이 태평양 봄 파도를 반갑게 맞아주는 남쪽 바닷가엔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거금대교를 건너면 인간승리의 감동을 맛볼 수 있는 ‘건강한 소록도’가 여행자를 반긴다. ‘산소탱크’ 박지성이 태어난 고흥, ‘에너지 충전소’ 거금도, 소록도에 봄빛이 완연하다.

딱 15일만 지상에서 놀다 오라는 옥황상제 허락을 얻은 선녀 무리가 다도해 비경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방창한 고흥 풍경에 취해 하루 더 놀다가 그만 벌(罰)을 받아 돌로 변했다는 마복산에는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선녀 닮은 기암괴석 무리 사이를 휘감는다. 금강의 축소판이라 ‘소개골산(小皆骨山)’이라 불린다.

 

박지성이 태어나 수원으로 이사 가기 전 6년간 자란, 고흥 북서쪽 점암면과 그 옆동네 과역면 인학 언덕엔 매화가 만개했다.

 

거대한 금맥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김일의 고향마을 거금도에는 붉은 순정의 동백이 한창이다. 거금대교 남단 섬 초입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일주도로를 가다 보면 남쪽 끝에서 ‘전망좋은 창’을 만난다. ‘이곳에서 사진 찍으면 거금(巨金)이 들어옵니다’라는 문구가 익살스런 정자(亭子)형 전망대에선 시원스런 남해가 한눈에 보이고 주변엔 시(詩)를 새긴 돌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다.

 

오천몽돌해변은 공룡알ㆍ타조알팀과 오리알ㆍ계란팀 몽돌이 크기 별로 구역을 나눈채, 태평양 난류를 반긴다. 옆에는 단층과 절리가 어우러진 예쁘장한 절벽이 해송과 어우러졌는데, 이 전망은 고흥에서 심고 따서 볶고 갈아 드롭한 커피집 앞에서 잘 보인다. 동쪽 소원동산은 다도해 다운 섬ㆍ곶ㆍ배 생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과거 방목지 초원이 있었고 일주 도로와 올레길 닮은 트레킹로가 있다는 점 때문에 ‘소 제주도’라는 별명을 가졌다.

 

거금대교로 다시 나가는 북쪽 평지에 마늘, 쪽파밭이 초원처럼 펼쳐지고 다리 아래쪽 갯벌 가운데엔 충남 태안의 꽃지 할미섬 닮은 바위섬이 한가로이 떠있다.

 

연홍도는 거금도 서쪽, 올챙이연(鳶) 혹은 낚시바늘처럼 생긴 부속섬이다. 50여 가구가 사는 이 섬 초입에 방파제에 소라 조각, 자전거 하이킹 조형물이 있고, 어촌집 담벼락 마다 박지성과 김일의 벽화 등이 그려져 있다. 얕은 고개를 넘으면 근사한 미술관이 있다. 바다엔 공룡뼈를 연상케하는 철골 조각품이 설치돼 포구의 운치를 더한다. 완도군 금당도가 아름다운데, 울산바위 같은 금당도 벽석의 비경은 연홍도에서만 보인다. 태풍 피해 복구가 완전히 끝나는 오는 4월 7일은 ‘섬 여는 날’이다. 미술관도 더 멋지게 리모델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빛나는 산천경개와 천혜의 먹거리는 흉금을 상쾌하게 하고 신체를 강건하게 한다. 이제 거금대교를 지나 북쪽으로 가면 머리가 깨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분’들을 품게된다.

 

“그곳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43년간 소록도 봉사를 자처해 맨손으로 한센병 환자의 상처부위를 만지고 생활을 보살피며, 단 한푼의 급여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고국 오스트리아의 기부금과 약재를 받아 이들을 마침내 완치시킨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2005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100년전부터 한센병 환자가 1명이라도 있는 마을은 사람이 사라진다. 다른 가족이 살기 위해 환자 1명은 소록도로 보내졌다. 존재 자체가 죄이기에 이들은 소록도에서 죽음보다 큰 절망을 겪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제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환우들을 동원해 강제노동을 시켰다. 해방을 맞았다지만 우리 정부는 출산까지 금지시켜 더 힘들게했다.

 

전염성, 유전성 있다는 수백년 편견은 1962년 2월 마리안느가 오고나서야 깨졌다. 4년뒤엔 마가렛이 입도했다. 절망으로 내몰 만큼 멀리 할 이유가 없는 병임이 확인된 것이다.

 

두 천사는 맨손으로 환부를 확인했고 고국 오스트리아에서 가져온 치료용 오일을 등을 통해 부은뒤 맨손으로 환우의 온몸을 만지며 청결 소독 치료에 임했다. 아울러 오스트리아 부인회 등 기부로 치료제를 들여와 수천명 환우를 하나둘씩 완치시키고 정부의 감시속에서도 사랑으로 잉태한 아이들을 키워냈다. 감염 우려에 멀찍이 떨어져 한달에 한번씩 부모-자식간 상봉하던 탄식의 마당(수탄장)도 사라지고 모정의 뜨거운 스킨십도 부활했다.

 

과거 소록도 아이들은 녹동 아이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며 늘 풀이 죽어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리안느-마가렛 간호사와 함께 생활한 이후, ‘영웅’을 가슴에 품은 아이들은 당찬 모습을 탈바꿈했다. 완치한 주민은 어로와 농경으로 소득을 키워나갔다. 1992년 한국은 한센병 완치국으로 지정됐다.

 

2017년 이른 봄, 소록도 해수욕장은 울창한 송림과 깨끗한 백사장을 뽐내고 있었고, 고통의 상징이던 감금실, 검시실, 생식기능을 없애던 단종대 방 등이 이제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았다.

힘 자랑 말라는 ‘그 고흥’… 소록도

환우들이 구워낸 붉은 벽돌의 옛건물 앞마당엔 파릇파릇한 봄의 새싹이 돋아났다.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거룩하고 지고지순한 봉사 정신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지난 6일 서울 잠실롯데월드타워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다. 머지않아 뜻있는 극장들에서 개봉된다. 시사회장은 눈물과 감동의 도가니였다.

 

건물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예술적 운치를 더한 가운데, 주민 530명이 사진작가가 되어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담아 만든 벽화는 가슴을 찡하게 한다. 두 천사의 영화를 만드는데 앞장선 소록도 성당(주임신부 김연준)은 언덕 위 한폭의 그림이다.

 

소록대교 건너 녹동항은 남해안의 수산물 집결지이자 해상교통의 요충지이다. 다시 동북쪽으로 가면 이순신 유적, 우주발사전망대, 과역매화밭, 커피사관학교, 중산 ‘순정’ 영화 촬영지를 차례로 만날수 있다.

 

경칩이 지나면서 움츠린 우리 몸도 긴 잠에서 깨어났다. 참장어(하모), 붕장어, 낙지, 삼치 등 스태미너 음식과 청정 자연을 즐기고, 인간승리의 비결까지 품을 수 있는 고흥은 춘삼월 심신 에너지충전소이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