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례

[여행]by 안혜연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

30~40분에 한 번씩 솟아나는 물기둥

40일 일정으로 일본 후쿠오카에 머물고 있다. 지난주, 몸이 근질거려서 아침 일찍 열차를 타고 벳푸로 떠났다. 차로 2시간 거리인 벳푸는 오이타 현의 온천 지역이다. 벳푸 어딜 가든 원천이 풍부하게 샘솟는다. 온천이 많은 일본에서도 용출량 많기로 소문난 곳. 벳푸 칸나와 지역의 색다른 온천들을 둘러보고 왔다. 

벳푸 지옥 순례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

산신령을 만날 수 있을 법한 시라이케 지옥

벳푸 역에서 버스를 타고 6km 남짓 달려 칸나와에 도착했다. 마치 온동네에 불이 난 것처럼 뿌연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했는데 아니었다. 이 마을은 적어도 천 년 전부터 같은 모습으로 수증기를 내뿜고 있단다. 상상 속의 지옥과 매우 흡사했다. 지금은 벳푸 지옥순례의 중심지로 활약하고 있지만, 옛 기록을 살펴보면 온천에서 생기는 갖가지 기괴한 풍경들 때문에 불길한 땅으로 여겨왔다. 보면 안다. 이들 온천에 왜 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벳푸 여행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지옥 순례는 온천에서 생기는 기묘한 현상들을 둘러보는 일종의 관광 코스다. 온천은 으레 몸을 담그는 곳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칸나와의 온천들은 달랐다. 벳푸 지옥 순례에 포함된 8개의 온천은 물이 펄펄 끓는 온도인 100도에 가까운 고열을 품어 몸 담그는 게 불가능하다. 눈으로 즐기는 관상용 온천이다. 성분에 따라 옥빛, 핏빛 등 다채로운 색을 띠는 온천들과 정기적으로 물기둥이 솟아나는 간헐천 등 8개의 원천을 돌아본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관상용 온천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

물빛이 고운 우미 지옥

시작은 우미 지옥부터. 바다를 닮은 시원스러운 빛깔의 연못이다. 8개의 온천중 가장 아름다운 온천으로 꼽힌다. 1200년 전쯤 화산 폭발로 생겼다. 무려 98도나 되는 뜨거운 물이라 수증기가 끊임없이 피어나는 곳. 바람결에 따라 뿌연 기운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시야를 가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나무에 바구니를 매달아 계란 몇 알을 넣고 물에 담가두면 금방 온천 계란이 완성된다. 온천물 혹은 온천 수증기에 찐 뜨거운 달걀과 일본 사이다 라무네의 조화가 기막히다.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

(왼쪽) 지옥 순례 최고의 간식, 온천 계란 (오른쪽) 계란은 일본 사이다 라무네와 함께!

오니이시보즈 지옥은 회색 진흙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신기한 온천이다. 동그랗고 볼록하게 솟는 진흙의 모습이 마치 미끈한 스님의 머리 같다. 악어 수십 마리가 사는 오니야마 지옥도 있다. 악어가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입을 쩍 벌리면 여기가 생지옥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산신령이 금도끼와 은도끼를 들고 나타날 듯 평화로운 시라이케 지옥이 있는가 하면 붉은색을 띠어 피의 지옥이라 부르는 지노이케 지옥도 있다. 수증기마저 빨간색. 여기서 얻은 빨간 점토로 연고를 만들어 파는데, 피부병에 특효약인 것으로 알려져 절찬 판매 중이다.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

생전 처음 보는 독특한 모습의 온천, 오니이시보즈 지옥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

스님의 머리를 닮은 오니이시보즈 지옥

가장 붐비는 지옥은 가마도 지옥. 한국인 여행자가 특히 많은데 패키지 상품을 통해 벳푸를 찾은 단체 관광객이 많은 탓이다. 8개의 지옥 중 가마도 지옥에만 들르기 때문에 유난히 붐빈다. 가마도 지옥은 온천계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 옥빛과 붉은빛을 띠는 아담한 연못이 있고 스님 머리를 닮은 온천도 솟아나며 작은 족욕탕이 마련돼 있다. 인내심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간헐천 다쓰마키 지옥이 지옥 순례의 마지막 코스였다. 벳푸 시에서 지정한 천연기념물이다. 30~40분 일정한 간격으로 물기둥이 뿜어져 나온다. 언제 나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 넋 놓고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7개의 온천을 돌아보는 데 필요한 통합 입장권은 2,000엔이다. 산(山) 모양으로 수증기가 용솟음치는 야마 지옥은 별도로 400엔을 내야 한다.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

수십 마리의 악어가 한데 뒤엉켜 있는 오니야마 지옥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

붉은 기운을 토해내는 지노이케 지옥, 이곳의 점토는 피부병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점심은 찜 공방에서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

수증기로 뒤덮인 지옥의 찜 공방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 벳푸 지옥 순

찜 공방, 수증기로만 쪄낸 것들

칸나와 버스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찜 공방이 있다. 원하는 재료를 직접 고르고 찜통으로 가져가서 셀프로 찌는 방식의 체험 공간이다. 금방 익는 채소류는 7~15분간 찌고 단호박처럼 한참 익혀야 하는 채소나 고기, 해산물은 30분가량 넉넉히 찐다. 희한한 건 불이 없다는 것. 땅에서 피어나는 뜨거운 수증기로만 쪄낸다. 느긋하게 8개의 지옥 순례를 마치고 상점 구경, 끼니 해결까지 하고 나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이곳에 머물면 땅이, 지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광경, 볼거리 풍성한 이곳은 여행자에게 지옥이라는 이름의 천국이다.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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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탈을 쓴 백수. 버스타고 제주여행(중앙북스) / 이지시티방콕(피그마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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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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