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빛과 그림자

[컬처]by 아는동네

24시간의 그림자

밤 11시. 다리를 건넜다. 막차 시간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먼저였다. 유난히 한산했던 다리 위를 걸으며 각자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아이들처럼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 물체가 무엇인지 알아보자며 떼를 썼다. 막무가내로 사진도 찍어댔다. 우리는 별일 아닌 것에 반응하며 여름밤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다리 끝머리에 다다랐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야식을 외치며 물 위에 외로이 떠 있는 24시간 편의점으로 향했다. 문을 열어보니 주말이 아니었음에도 허기진 배와 여흥을 달래려는 사람들이 북적댔다. 물건을 고르고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했다. 고개를 내밀어 계산하려는 이들을 맞이하는 점원의 분주한 손놀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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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어디서 끓이나요?”
“그냥 저기 사람들 따라가면 돼요. 다 거기서 끓이니까.”

 

그는 바쁜데 왜 굳이 그런 걸 물어보냐는 투로 대답했다. 무성의한 답변에 불쾌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반복된 행위에 익숙해진 무심함에 공감하며 마음이 동했다.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고 으레 짐작해보았다. 늦은 밤에도 쉴 틈 없이 들이닥치는 사람들을 응대하면서도 친절을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수도 없이 참고 내려놓아야 했던 울분이 자신도 모르게 배어 나오는 듯하다. 물론, 이 에피소드 하나만 두고 모두가 이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과 직접 대면하며 이루어지는 장시간 노동은 분명 감정을 무미건조하고 무감각하게 만든다. 많은 한국인은 늦은 밤에도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 시간을 채워야만 하는 누군가의 노동이 밤을 지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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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나이트쿠스와 심야노동자

G* 25시
24시 셀프 빨래방
불한증막 24시 사우나
. . .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24시라는 용어가 넘쳐난다. 24시간 영업점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한 편의점 이름 앞에는 심지어 25시라 표기되어 있다. 1시간은 서비스 시간이란다. 24시이든, 25시든 그건 중요치 않다. 별별 가공식품이 허기진 배를 달래주고, 왠지 모를 헛헛함을 채우려는 이들에게 어떤 물건이라도 제공하는 편의점은 서울 사람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당연하다는 듯 일상 속 깊이 스며들었고, 밤을 즐기는 이들의 마지막 종착지로 큰 사랑을 받는 편의점. 밤과 낮의 경계 없이 24시간 빛을 뿜어대는 편의점, 그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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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타임트리 공식사이트

1989년 초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각종 금지령으로 인해 야간 활동이 불가했다. 오후 8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통행금지, 심야 네온사인 간판 사용금지, 심야 영화상영금지, 야간집회 금지 등이 그러한 금지령에 속한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통제하고, 사회시스템이 작동하는 범위를 제한한 것이다. 그러나 1989년 5월 올림픽선수촌에 한국 최초로 한 편의점이 문을 열었고, 야간활동의 손발을 묶어 두었던 금지령도 해제되면서 본격적인 24시간 영업의 시대가 열렸다. 통제되었던 욕망이 분출되기 시작하면서 거리에는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잦은 야근과 장시간 노동의 끝에서 사람들은 달콤한 시간을 맛보았다.

24시간,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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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스트레스를 풀고 흥을 돋울 수 있는 유흥업소들이 심야 영업을 이어갔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여가를 즐기는 방편이라 할 수 있는 헬스장, 카페, 찜질방 등의 공간이 24시간 영업을 시작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심야 시간의 활용은 야시장, 고궁 야간 개장, 야간 산책 등 문화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련의 상황은 밤을 의미하는 night(나이트)와 인간을 뜻하는 접미사 cus(쿠스)를 결합하여 만든 합성어, 밤샘형 인간을 뜻하는 호모나이트쿠스의 등장을 예고했다. 그렇지만 밤을 즐기는 시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욕구를 충족하며 누릴 수 있는 시간 범위를 확장해 나갈 때 다른 누군가는 일해야만 했다. 이러한 현상은 또 다른 형태의 밤샘형 인간, 심야 노동자의 존재로 인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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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삶

시간의 경계는 날이 갈수록 모호해진다. 24시간을 사는 시대, 호모나이트쿠스와 심야 노동자의 등장은 엇갈린 운명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심야 노동자는 노동을 강요받진 않지만,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기계처럼 쉴 틈 없이 일해야만 했던 공장 야간노동자들의 삶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야간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교대근무처럼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다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야간 노동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선택이 유일한 선택지이거나 이미 그 선택이 자율성을 잃은 것이라면, 그것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몰린 것과 다름없다. – 진보평론 제54호, ‘24시간 사회의 이면’ 中

‘24시간 사회의 이면’을 다룬 한 평론에서는 심야 노동이 그들의 자발적 선택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 해석한다. 평론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심야 노동자가 심야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일상을 들여다본다. 주간보다 높은 시급,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조건, 개인 업무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기대 등이 선택의 주된 이유인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그러한 기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다.

 

한편 다른 온라인 매체에는 심야 노동자들이 직접 작성한 글이 업로드되고 있는데, 평론의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24시간, 빛과 그림자 24시간, 빛과 그림자
신촌의 22시는 한창이다. 술을 먹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OOO에 온 사람들. 하루를 늦게 마무리하고 퇴근길에 햄버거를 포장해가는 사람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햄버거를 먹지?’라고 의문을 가질 만큼 손님은 많았다. 보통은 막차가 끊길 때 즈음 손님도 같이 끊기는데, 주말에는 그런 것도 없어서 23시 퇴근을 예정하던 크루가 새벽2시까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밤에는 손님이 없어 한가할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신촌의 밤 OOO매장에는 손님이 넘쳤다. – 미디어 일다, ‘청춘의 거리 반짝이는 간판아래 야간노동자’ 中

주로 경제적, 사회적으로 빈곤한 위치에 있는 이들이 대안으로 선택하는 심야 노동은 대개 육체적 피로 누적과 건강악화로 이어진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일부 심야 노동자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누리는 자유로운 심야의 낭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장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도시의 꺼지지 않는 불빛 뒤에는 늘 심야 노동자들의 노고가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라며 모두에게 평등할 수 있는 24시간이 오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에디터 이경민

2018.11.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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