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디올은 왜 서울에서 길을 잃었나?

[컬처]by 서울문화재단

간판은 거리 풍경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인구와 점포의 밀도가 높은 서울에서 무질서하고 요란하게 자리한 간판 풍경은 종종 이 도시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명동, 홍대 앞, 서촌의 풍경은 각각 다르게 자란다. 모두가 서울의 모습이면서 그 가운데 좀 더 꾸준히 가꾸고 싶은 풍경이 있다.

레이디 디올은 왜 서울에서 길을 잃었

‘무질서한 간판=다이내믹 서울’이라는 클리셰

레이디 디올이 서울에서 길을 잃었다. 패션 브랜드 디올이 청담동 매장에서 가방을 테마로 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작가 이완은 빨간 가방을 든 여성 모델을 ‘룸 비 무료’ ‘룸 소주방’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유흥가에 세웠다. 사진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자 여성들은 격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유흥가에서 번 돈으로 명품 백을 산 젊은 여자’라는 한국 여성에 대한 전형적 편견과 여성 혐오의 코드를 그대로 사진에 담았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전시회 측은 슬그머니 작품을 내렸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의 재현인가, 작가가 다루어온 소비사회 비판의 연장선상인가의 문제는 제쳐두자. 저런 사회적 의미도 파악하지 못한 디올 측의 몰상식은 다른 사람들이 꼬집어주길 바란다. 내가 주목한 것은 모델이 아니라 배경이었다. 레이디 디올보다는 간판들에 눈이 먼저 갔다. 서울의 거리를 요란하고 무질서한 간판으로 상징한 작가의 구태의연함에 쓴웃음이 났다. 나의 재미교포 친구는 이 사진을 보자마자 SNS에 북미판 <올드보이> 포스터를 올렸다. 오대수와 미도는 ‘몽셀 통통’ ‘바렌타인’ 등 어지러운 네온 간판들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 거리에 넘쳐나는 간판이 꽤나 이국적인 풍경 같다. 전통적으로 ‘야시시한’ 불빛을 걸어두는 홍등가만이 아니다. 명동, 신촌, 홍대 앞 어디에나 간판의 풍경은 요란하다. 행인들은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는 가게들의 아우성 속을 걸어야 한다. 일산이나 분당 같은 신도시의 상가 건물에는 거대한 건물 외벽을 온갖 간판이 콜라주처럼 뒤덮고 있다. 서울 외곽의 지하철역 주변 상가들은 똑같은 체인점 간판들을 ‘복사하고 붙이기’ 해서 편집해놓았다.

 

인상적이라면, 비록 추하더라도 어떤 효과는 있는 법이다. 예술가들은 때론 그런 과도함을 어떤 문화로 전향시키기도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는 홍콩 거리의 잡다한 간판을 모델로 해서 기묘한 미래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설치미술가 최정화는 아르코미술관 벽면을 상업 플래카드로 뒤덮은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렇게나>(2004)라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0년, 20년 전에나 인상적이었던, 철이 지나도 꽤나 지난 아이디어다.

공공의 경험인 간판, 그 공해와 통제

외국인이나 예술가가 아니라, 매일 그 거리를 오가는 생활인의 입장은 어떨까? 간판들의 공격에 매일 시달리다 보니 적당히 내성이 생겼을까? 유럽 여행을 갔을 때처럼, 눈에 뜨이는 간판이 없어 가게를 찾을 수 없는 괴로움보다는 나은 걸까?

 

소규모 요식업의 창업과 폐업이 번갯불에 콩을 볶는다. 퇴직금에 대출을 끼고 학원 몇 달을 다닌 뒤 급히 가게를 열자니, 그 생김새에 대한 깊은 고민은 어렵다. 그러니 7080 스타일의 복고풍 주점, 만화체 벽화가 있는 맥줏집, 박력 넘치는 손 글씨의 간판 등 체인 사업 본부에서 찍어내는 얕은 유행을 가져온다. 때론 고급스러운 유럽풍 외관을 복제해보지만, 여기저기 튀려고 안달하는 가게들 사이에서는 맥을 못 춘다.

 

그런 와중에 요즘 눈에 뜨이는 풍경이 있다. 기묘하고 요란스러운 간판의 일본식 선술집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다. 좋게 말하면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온천장 요리점 같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다층의 목조건물, 활짝 열린 나무 창 안으로 보이는 야릇한 장식들… 일본의 소도시로 여행 온 듯한 기분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경성 어쩌고’라며 모던보이를 소환하는 간판이 당혹스럽다. 서울이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다는 설정의 테마파크 같다. 국적도 불명이고 의미도 불명이다. 간판과 가게의 외관은 혼란스러운 한국 문화의 생살을 드러내는 것 같다.

 

종로를 중심으로 서울시에서도 간판 정비 사업을 꾸준히 벌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올 초에도 주인 없는 간판, 위험한 간판을 정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정비된 거리에서는 과거처럼 거대한 간판들의 공습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아기자기하지만 비슷비슷한 글씨에 지루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디자인과 학생이 무료 한글 폰트 몇 개로 졸업작품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 같다. 물론 지방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새마을운동 식의 간판 정비 사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레이디 디올은 왜 서울에서 길을 잃었

모두가 요란한 간판을 거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동네의 가게 주인이 여행하는 동안 가게 봐줄 사람을 찾았다. 그래서 재미 삼아 하루에 몇 시간씩 문을 열고 점장 놀이를 했다. 한옥을 개조한 작은 인쇄물 가게인데, 건물에 붙어 있는 간판이 없다. 문을 열어두었을 때만 접이식 나무 간판을 밖에 세워둔다. 그걸로 손님을 끌 수 있을까? 며칠 지나다 보니 깨달았다. 어차피 지나치다 들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입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에겐 그 작은 표시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작은 간판의 가게가 제법 늘어났다. 간판이 아주 작거나, 글씨가 없어 아이콘 같다. 아예 간판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주인이 허세 떠는 걸 싫어해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아지트 같아 좋다고 해서, SNS 보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 필요 없어서… 이유는 다양하다. 어쨌든 그 가게가 자리 잡은 골목길은 아늑하다.

 

간판은 가게 주인과 손님만 보는 게 아니다. 거리를 오가는 모든 사람이 그 외관을 경험해야 한다. 즐겁고 흥분되는 간판들도 있다. 동대문이나 명동에서는 그런 간판들이 다이내믹한 서울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우성에 동참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은 동네들도 있다.

 

언젠가 외국인들이 서울을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면 안 될까? 작고 예쁜 간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거리, 단골들이 사랑하는 오래된 가게들이 가득한 곳. 그러면 그 앞에서 누가 어떤 가방을 들고 사진을 찍든지, 욕먹을 일은 없을 거다.

 

글 이명석 

문화비평가 겸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여행의 즐거움과 인문학적 호기심을 결합한 <여행자의 로망백서>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도시수집가> <모든 요일의 카페> 등의 저서가 있고, KBS 라디오 <신성원의 문화공감>,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에 고정 출연 중이다. 

2016.06.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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