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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신 가족의 탄생

주민센터 직원 큰소리로 “미혼모냐” 상처 입은 30대 싱글맘

by중앙일보

입양 안 보내고 기르니 부모님 반대

동창 “아이 아빠는?” 씁쓸한 질문

사람들 다양하고 가치관 다른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 많아

때가 되면 아이에게 얘기해줄 것

주민센터 직원 큰소리로 “미혼모냐”

미혼모 김현아(가명)씨는 딸 보리를 출산한 뒤 친정 아버지로부터 성경책을 선물받았다. 김씨는 보리와의 세계 여행을 꿈꾸고 있다. [최정동 기자]

디지털 다큐멘터리 『新가족의 탄생: 당신의 가족은 누구입니까』를 연재합니다. 이 땅에 가족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세 번째 주인공은 14개월 아이 보리(가명·여)를 키우는 싱글맘 김현아(가명·35)씨입니다.

 

1막 가족의 탄생, 너를 만나기까지

 

저는 돌 지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저를 싱글맘 또는 미혼모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3년 전 훌쩍 떠난 여행지에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고 보리가 생겼어요. 제 몸에 생명이 깃들었다는 걸 알게 되자 도저히 포기할 수 없더군요. 숱한 갈등 끝에 아이를 홀로 기르기로 했습니다. 미혼모 앞엔 극단적인 선택지가 항상 놓여 있어요. 낙태하거나 입양 보내는 것이지요. 저 자신이란 산을 겨우 넘고 나니 더 큰 산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셨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가 암 선고를 받았어요. 출산 한 달 전 수술을 받은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난 후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마치 온 우주가 말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 가족에게 찾아 온 선물, 보리를 받아들이라고요. 평소 말 없으시던 아버지는 아이 첫 돌 때 성경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맨 앞장을 펼치자 꼭꼭 눌러 쓴 아버지의 필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랑하는 보리야,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다. 건강하게 자라다오….’ 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2막 아픈 한 마디 … “아이 아빠는?”

 

막 14개월에 접어든 보리는 나날이 예쁜 짓이 늘고 있어요. 손톱 같은 이가 벌써 8개나 났답니다. 부모님과 저는 보리 덕에 웃는 시간이 하루 하루 늘고 있어요. 하지만 집을 나서면 현실이 불쑥 불쑥 다가옵니다. 얼마 전 병원에 갔다가 동창을 만났어요. “아이 아빠는?” 당연한 것처럼, 쇳덩이 같은 질문들이 쏟아졌지요.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어요. 사람들은 엄마가 있으면 당연히 아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은 집이 있는데도요.

 

흔히 미혼모 하면 청소년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30대 싱글맘이 많아요. 원치 않게 아이를 낳았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데 저처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도 많아요. 저는 현재 육아와 건강 문제로 일을 잠시 쉬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이 보리와 저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에요. 임신 때 ‘한부모 가정’ 지원을 물어보려고 주민센터에 갔을 때 일이에요. 담당 직원이 저를 훑어보더니 큰 소리로 “미혼모냐” 묻더군요. 저는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에서 설명해야 했습니다. 싱글맘인 것이 창피하지 않지만 개인 사정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설명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해요.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텐데 어떻게 주민센터엔 조용한 상담소 하나 없을까요.

 

3막 보리와 나의 내일

 

친구들이 아이에게 묻는 날이 오겠죠. “너는 왜 아빠가 없니”라고요. 때가 되면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려 해요. 인생이 마음대로 되진 않았지만 지금 저는 충분히 만족감을 느끼며 살거든요. 제 꿈은 아이와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것이랍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가치관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저에게 가족이란 ‘희망’이에요. 극단적인 생각을 한 순간마다 저를 붙잡아 주고 일으켜 세워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의 가족은 누구인가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특별취재팀=김현예·이유정 기자, 조민아 디자이너, 정유정 인턴기자(고려대 미디어학부 3년) hy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