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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잇 백 말고 잇 베지터블…
요즘은 채소도 유행을 탄다

by중앙일보

요즘 뜨는 케일·밀싹·아보카도·아스파라거스

채소도 비주얼 시대

유행 질병과도 관련

식이 조절 채소가 각광받아

 

뭔가 새로운 것이 없을까?” 장바구니 쇼핑에도 통용되는 말이다. 늘 담는 양파·배추·무 대신 보다 새롭고 신기한 식재료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덕분에 핸드백 아니라 채소에도 따끈따끈한 ‘신상(신제품)’, 다시 말해 '잇 백(it bag)'말고 ‘잇 베지터블(it vegetable)’이 있다. 지금 뜨는 '잇 채소'는 뭘까.

'잇 채소'의 시대

잇 백 말고 잇 베지터블… 요즘은 채

잇 백처럼, 잇 채소가 있다. 최근 식탁 위에 새롭게 진입하는 샐러리와 케일, 아보카도와 방울양배추, 아스파라거스가 그 주인공이다. 지방시 호라이즌 백에 잇 채소를 담았다. 김경록 기자

“보라색 과채를 보면 채소나 과일에도 유행이 있다는 말이 실감 나요. 한동안 블루베리가 뜨더니 그다음에는 아사이베리와 아로니아가 주목받았죠. 요즘에는 노니(라임처럼 생겼는데 짜면 보라색 주스가 나오는 남태평양 열대과일)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어요.” 로푸드(raw food·생식재) 전문가이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디톡스 주스바 ‘에너지 키친’을 운영하는 경미니 쉐프의 말이다.

잇 백 말고 잇 베지터블… 요즘은 채

항염 효과가 뛰어나 새로운 슈퍼 푸드로 주목받는 노니 열매. 주로 주스로 착즙해 먹는다.

그의 말대로 늘 먹고 접하는 채소와 제철 과채 사이에서 유난히 존재감을 발하는 신상이 있다. 아예 모르고 살았던 생소한 채소의 이름이 어느 순간부터 자주 들리기 시작하고, 손질법이나 요리법이 각종 매체를 타고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게 신호다. 머지않아 그 채소는 내 장바구니 안에 담기고, 식탁 위에도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심상치 않은 아보카도 인기

잇 백 말고 잇 베지터블… 요즘은 채

아보카도는 고소한 맛은 물론 특유의 근사한 '비주얼'로 요즘 가장 주목받는 과채다. [사진 @avocadotoast 인스타그램]

이런 흐름에서 요즘 가장 눈에 띄는 게 아보카도다. 엄밀히 분류하자면 과일에 속하지만 그대로 먹기보다 요리해서 먹는 식재료라는 점에서 유행 채소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하다. 아보카도 명란 비빔밥, 아보카도 샐러드, 아보카도 샌드위치 등 2017년 들어 유난히 아보카도를 사용한 요리가 다양한 매체에서 자주 오르내렸다. 아보카도를 활용한 요리를 내는 식당도 크게 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아보카도를 이제 동네 슈퍼에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통계도 아보카도의 인기를 뒷받침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아보카도는 수입량이 꾸준히 증가해 2012년 534톤에서 2015년 1515톤으로 늘더니 2016년에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난 2914톤의 수입량을 기록했다.

아스파라거스 찾는 이유

이마트 채소 담당 곽대환 MD는 아스파라거스의 인기에 주목했다. 최근 1년간 전국 이마트 채소 매출 신장률 상위권에 허브류·모듬쌈과 함께 아스파라거스가 올랐다. 샐러리도 상위권에 오른 신규 채소 중 하나다. 곽 MD는 “바질 민트 등의 허브류와 아스파라거스 등 우리 식탁에 소개 된지 불과 5~10년 정도 밖에 안 된 고급 양채류(서양 채소)가 주목받고 있다”며 “늘 먹는 채소가 아닌 조금 더 특별한 채소에 대한 니즈가 분명히 있다”고 답했다.

잇 백 말고 잇 베지터블… 요즘은 채

주로 레스토랑의 스테이크 메뉴에 곁들여 나오던 아스파라거스도 요즘 가정집 식탁에 자주 오른다. 전국 이마트의 최근 1년간 채소 매출 신장률 상위권에 들었을 정도다. [사진 중앙포토]

에너지키친의 경 쉐프는 밀싹과 케일을 유행 채소로 본다. 최근 레몬보다 비타민C가 30배 이상 많아 주목받는 칼라만시도 떠오르는 과채 중 하나다. 경 쉐프는 “케일은 원래 미국 뉴욕 등 서양에서 슈퍼푸드로 주목 받고 있다는 게 국내에 소개되면서 자리 잡은 채소”라며 “2014년 즈음부터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했다. 케일과 비슷한 시기에 수입된 밀싹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을 당시만 해도 구하기 어려운 채소였는데, 지금은 국내 생산량이 꽤 될 정도로 수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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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미란다 커의 몸매 비결로 알려지며 인기를 끌었던 밀싹. 주로 착즙해 주스로 섭취한다. [사진 중앙포토]

채소도 비주얼 좋아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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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은 '잇 채소'를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신세계 'SSG 푸드마켓' 청담점 진열대에 이색 채소 들이 가득하다. [사진 중앙포토]

‘잇 채소’를 만드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비주얼이다. 일단 비주얼이 좋으면 주목받고, 주목받으면 찾는 사람이 늘고, 많이 찾으니 여러 매장에서 취급하고, 그렇다보니 쉽게 구입할 수 있게돼 우리 식탁까지 오른다는 얘기다. 채소 소믈리에이자 요리연구가인 홍성란씨는 “요즘 버터헤드나 방울 양배추, 아스파라거스 등 이색 채소 조리법 등을 문의해오는 사람이 많다”며 “미디어나 카페·레스토랑 등에서 보고 독특한 모양이나 맛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에 비해 대형 마트에서 취급하는 채소의 가짓수가 확실히 많아졌다”며 “먹기 좋게 소포장한 뒤 설명까지 부착해 놓은 경우가 많아 일반 소비자들이 새로운 채소에 접근하기가 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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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허브와 채소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진 중앙포토]

음식 관련 콘텐트가 늘어난 것도 영향을 줬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자신이 먹은 음식을 ‘인증’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식당이나 먹거리뿐 아니라 식재료의 유행도 보다 쉬워졌다. 새롭고 신기한 식재료의 파급력이 예전보다 높아졌다. 예전엔 채소에 효능이나 건강 잣대만 들어댔다면 이젠 채소에도 ‘비주얼’을 중시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인스타그램 같은 사진 기반의 SNS를 타고 유행 채소가 만들어지는 구조다. 건강에 좋은 채소도 이왕이면 남들 식단에 없는 흔치 않고 예쁜 것에 눈이 간다. 앙증맞은 방울 양배추 볶음, 레스토랑에서 주로 봤던 아스파라거스 구이, 케일과 밀싹을 넣은 건강 주스는 일단 SNS에서 한번만 봐도 각인이 된다. 언젠가 한 번 요리해 먹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잇 채소' 트렌드로 이어진다.

잇 백 말고 잇 베지터블… 요즘은 채

인스타그램에서 아스파라거스 해시태그(#)를 단 인증샷. 4만7000여 건이 검색된다. 유지연 기자

조리법 같이 떠야 제대로 뜬다

식생활에서 꼭 필요하지만 한번도 주연은 아니었던 채소가 왜 이리 주목받는 걸까. 유행 채소에 대한 관심은 채소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민텔은 2017년 푸드 트렌드로 ‘채식주의자의 확대’를 꼽은 바 있다.

 

채소는 먹거리 중 건강과 동의어로 쓰이는 식재료다. 채식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늘어났고 채소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곁들여 먹는 음식이 아니라, 아예 채소를 주 요리로 취급하는 레스토랑도 많아졌다. 다이어트와 건강을 위해 채소 샐러드로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잇 백 말고 잇 베지터블… 요즘은 채

채소 위주의 샐러드로 한끼를 해결하는 풍경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 샐러드 전문점 배드파머스의 주요 메뉴. [사진 배드 파머스 인스타그램]

채소 소믈리에이자 홈쇼핑 쇼호스트인 석혜림씨는 유행하는 질병과의 관련성에 주목했다. “5년 전만 해도 비타민이 화두여서 이와 관련한 과채가 주목받았다”며 “최근 당뇨나 대사 증후군, 다이어트 등에 도움이 되는 과채에 주목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인기 채소가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식습관을 교정해 건강에 도움을 주는 디톡스 주스에 활용되는 케일·밀싹·칼라만시 등의 과채나 새싹 채소, 당 조절 고추나 돼지감자 등 기능성 채소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조리법이나 도구의 발달도 유행 채소 만들기에 한몫한다. 아무리 건강에 좋고 맛있는 채소라도 쉽게 해먹을 수 있는 도구가 없거나 조리법을 모르면 관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석 쇼호스트는 “착즙기가 유행하면서 착즙을 해 먹었을 때 효능이 좋은 케일 등이 새롭게 식탁에 진입했다”며 “최근 건조 생강이나 말린 계피 등의 식재료가 서서히 관심을 끌고 있는 배경에도 티팟 유행이 있다”고 말했다.

잇 백 말고 잇 베지터블… 요즘은 채

착즙기와 성능 좋은 블렌더의 유행은 갈아 먹는 채소의 유행과 궤를 같이 한다. [사진 에너지키친 인스타그램]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는 이런 유행 채소 현상에 대해 “먹거리로서의 채소라기보다 식문화로서의 채소”라고 말한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건강보다 취향을 바탕으로 발전한다는 얘기다. 음식에서 문화를 찾고, 자기 만족감을 찾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마치 명품 가방을 구입하듯, 자기 만족감을 고급 식재료와 먹는 방식으로 드러낸다고 보면 된다. 정 교수는 “다양한 채소에 관심을 갖고 접근해 나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며 “다만 우리 채소 위주가 아니라 생소하고 새롭다는 이유로 서양 채소에 대한 환상 품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음식도 패션이 된 시대, 잇 채소의 탄생이 놀랍지 않은 이유다.

 

글=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