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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푸드 트립

20년은 명함도 못내미는
노포의 성지 '충무로'

by중앙일보

영화는 떠났지만 영광은 그대로

골목길 인쇄소 사이사이마다 노포

저렴한 가격과 인심 그대로

저녁에만 문여는 횟집·꼬치구이집도

 

요즘 뜨는 동네? 맛집 거리다. 서울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 등은 모두 이 집 저 집 옮겨다니며 밥 먹고 차 마시고, 또 디저트 즐기는 게 가능한 맛집 동네다. 이런 도심 핫플레이스를 즐길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푸드트립’, 이번에는 을지로에 이어 노포가 몰려있는 서울 충무로다.

20년은 명함도 못내미는 노포의 성지

충무로 골목을 걷다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로 돌아온 것같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마다 인쇄소와 오래된 맛집들이 숨어있다. [사진 중구]

영화 떠나고 남은 건

서울 중구 충무로. 한때는 영화의 중심지였다. 국도극장·스카라극장·명보극장·대한극장 등이 모여 있다보니 영화사와 제작자, 배우가 모여들어 한국 영화의중심지로 영광을 누렸다. 자연스레 식당도 붐볐다. 1987년 부산 초동에서 충무로로 가게를 옮긴 '부산복집' 최상해 사장은 "70~80년대 충무로는 어느 가게나 장사가 잘됐고 우리 가게도 문 열마자자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고 어머니에게 들었다"며 "충무로 인기는 IMF 외환위기도 끄떡없을 만큼 장사가 잘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기는 일찌감치 다른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영화 기획사들이 90년대말부터 낡은 충무로를 떠나 강남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멀티플렉스가 유행하며 국도극장(99년 폐관), 스카라극장(2005년 폐관), 명보극장(2008년 폐관) 등이 잇따라 문을 닫으며 충무로도 덩달아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20년은 명함도 못내미는 노포의 성지

골목마다 인쇄소가 있다. 충무로쪽은 작은 인쇄소가, 충무로역 건너편 필동엔 규모가 큰 인쇄소가 있다. [사진 중구]

영화 산업과 함께 충무로의 또 다른 축이었던 인쇄산업도 예전 같지 않다. 어느 골목에 들어서도 여전히 '인쇄·프린팅·컬러·코팅' 같은 인쇄 관련 용어가 적힌 간판과 마주하게 된다. 귀에는 쉴새 없이 돌아가는 인쇄 기계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 바뀌며 인쇄업 자체가 쇠퇴한 데다 큰 인쇄소 중 몇몇은 임대료가 싼 파주 같은 서울 외곽 경기도로 이전했다. 크고 작은 인쇄소가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성기 맞은 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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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동분식은 이름처럼 분식집이 아니라 닭꼬치구이 등 꼬치구이를 주메뉴로 한다. 오후 3시 무렵 아주머니가 그날 팔 닭꼬치를 초벌구이 하고 있다. 송정 기자

인쇄소와 함께 충무로를 지킨 게 바로 오래된 식당이다. 60년대, 늦어도 80년대 충무로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 문을 연 노포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2016년부터 노포가 남녀노소 모두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을지로와 더불어 충무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백발의 어르신은 옛 추억을 되짚으며, 20~30대 젊은이는 노포 탐방이라는 새로운 놀이를 하느라 찾아 오기 시작했다. 11년째 충무로의 한 회사에서 근무중인 직장인 심선애씨는 "깔끔하고 예쁜 식당을 찾는다면 이곳은 정답이 아니다"며 "하지만 육수를 계속 내주는 칼국수집 등 충무로 노포엔 푸짐한 인심같은 특유의 매력이 있어 함께 가는 사람마다 다들 좋아하더라"고 설명했다.

20년은 명함도 못내미는 노포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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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요리로 점심 한 끼

충무로 푸드트립은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5번이나 6번 출구에서 시작한다. 5번 출구부터 남산스퀘어빌딩, 6번 출구부터 명보사거리까지 'ㅁ'자 블록에 식당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제법 쌀쌀한 바람을 피해 즐길 수 있는 따뜻한 탕과 백반, 칼국수가 주요 메뉴다.

 

우선 6번 출구에서 명보사거리쪽으로 200m 걷다 보면 왼쪽에 오래된 타일과 유리창에 '百聞이 不如一見'이라고 적혀있는 건물이 나온다. 이곳이 '진고개'다. 1963년 충무로에 문을 연 후 2대째 이어온 식당이다. 게장백반과 불고기가 대표 메뉴인데 요즘처럼 날이 추워지면 낮부터 어복쟁반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어르신들을 좌석의 절반을 차지한다.

 

20년은 명함도 못내미는 노포의 성지

초동에 있다 1987년 충무로로 이전한 부산복집. 30년 넘은 단골부터 색다른 맛에 노포를 찾는 20~30대 젊은층까지 다양한 연령의 고객이 찾아온다. 송정 기자

진고개에서 충무로역 방향에 있는 티마크 호텔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 블록 더 안쪽에 '부산복집'이 있다. 콩나물을 듬뿍 넣어 개운한 복매운탕과 맑은 지리로 해장하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복매운탕 한그릇 가격이 1만2000원으로 다른 복집보다 저렴해 요즘엔 대학생들도 많이 찾는다.

 

국수를 좋아한다면 부산복집에서 을지로쪽으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랑방칼국수'에 가야한다. 68년 문을 열어 올해 50년째 충무로를 지키고 있는데 혼자 먹기에도 넉넉한 양의 백숙과 반찬을 담아주는 백숙백반과 양은냄비 가득 칼국수를 담아주는 칼국수가 대표 메뉴다. 충무로역 7번 출구 뒤쪽 골목에 있는 낡은 붉은색 간판의 '작은분식'과, 진양상가로 이어진 먹자골목에 있는 '충무로칼국수'도 칼국수로 유명하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인근 인쇄소와 회사 직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해주며 사랑받아왔다.

20년은 명함도 못내미는 노포의 성지

진고개 맞은편 골목에서 진양상가로 이어지는 '충무로 먹자골목'. 다양한 식당들이 마주하고 있다. 송정 기자

단팥빵·바밤바라떼 들고 산책

20년은 명함도 못내미는 노포의 성지

노포와 어울리는 단팥빵과 바밤바라떼를 파는 빵집 겸 카페 '원더브레드' 입구. 송정 기자

점심 식사 후엔 건너편 필동으로 건너간다. 충무로역 4번 출구로 나와 200m 정도 걸어가면 남산골한옥마을이, 4번 출구에서 퇴계로쪽 충무로역 2번 출구 앞엔 대한극장이 있다. 큰 길을 건너기 전에 따뜻한 차나 달콤한 디저트가 생각난다면 사랑방칼국수에서 명동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원더브레드'에 들러보길. 커다란 별이 그려진 벽 옆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면 따뜻한 바밤바라떼와 생크림·단팥이 반반씩 들어있는 빵을 맛볼 수 있다. 포장도 되니 사들고 산책에 나서도 좋다. 남산한옥마을까지 가는 게 부담스럽다면 3·4번 출구에서 사이의 필동주민센터쪽으로 이어진 골목을 추천한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일방통행로와 보행로로 나뉘는데 돌담과 작은 가게들로 이어져 큰 길과는 다른 정취를 즐길 수 있다.

해산물에 소주 한 잔

20년은 명함도 못내미는 노포의 성지

그날그날 신선한 해산물을 먹기 좋게 썰어 내는 필동해물. 간판과 입구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송정 기자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서 오후 6시만 되도 이미 거리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바로 이 시간이 충무로 맛집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황금 시간대다. 저녁에만 문을 여는 노포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후 6시면 이미 늦었다. 먼저 필동 주민센터를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가다보면 CJ인재원이 나오는데 입구를 지나 열 걸음 정도 걸어가면 '필동해물'이 나온다. 70~80년대 봤음직한 파란색 간판 아래엔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있다. 오후 6시를 넘기면 이미 좁은 가게 안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게 안이나 밖이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모두 소주 안주로는 먹기 좋게 썰어 플라스틱 체반에 담아낸 해산물을 먹는다. 옆 사람의 얘기가 들릴 만큼 간격이 좁지만 그렇게 왁자지껄한 게 충무로 노포의 매력이다. 

 

20년은 명함도 못내미는 노포의 성지

영덕회식당은 오후 6시만 되면 가게 안팎이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송정 기자

충무로역 대로 건너편 골목에 있는 '영덕회식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곳은 점심에도 문을 열지만 회덮밥 같은 식사메뉴만 팔기 때문에 제대로 된 매력을 느끼려면 저녁에 가야 한다. 매콤새콤한 양념장에 신선한 회, 채소를 함께 비벼먹는 막회와 과메기가 대표 메뉴다. 10월 19일 오후 6시에 도착했더니 이미 가게 안과 밖 모두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이곳에서 막회를 시킬 땐 대(大)자를 시키는 게 오히려 경제적이다. 중자와 고작 3000원 차이인데 양은 훨씬 푸짐하기 때문이다.

물갈비에 꼬치도 빼놓을 수 없지

20년은 명함도 못내미는 노포의 성지

돼지물갈비로 유명한 호남식당도 저녁 시간이면 사람들로 가득찬다. 송정 기자

육식파를 위한 고깃집도 있다. 영덕회식당에서 진양상가를 가로질러 가면 충무로 먹자골목이 나온다. 골목은 곱창·돼지갈비·닭볶음탕·횟집·치킨가게 등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마주하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식당마다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손님을 맞이한다. 이중 골목 입구에 있는 '호남식당'은 양념이 많아 물갈비로 부르는 돼지갈비이 유명하다. 배불리 먹었지만 집에 가기 서운할 때가 있다. 이때 가면 좋은 곳이 '필동분식'이다. 밤에 웬 분식집이냐 하겠지만 이곳은 떡볶이 같은 분식은 팔지 않는다. 연탄불에 구운 닭꼬치구이가 대표 메뉴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