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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사건추적

십년지기 매장 사건의 기막힌 범행동기 '청부통정'

by중앙일보

별거 중이던 남편과 이혼 후 재산 분할받으려

평소 친언니처럼 따르던 6살 아래 지인 이용

청부통정 알려질까 두려워 범행한 것으로 조사


절도죄 피하려 거짓말 부탁했다 거절 당하기도

범행 가담 아들은 구속, 남편은 스스로 목매

경찰, 7일 살인 혐의로 이씨 등 검찰 송치

십년지기 매장 사건의 기막힌 범행동기

십년지기 여성을 잠들게 한 뒤 매장한 혐의로 50대 여성과 이 여성의 20대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시신발굴 중인 경찰 모습. [사진 경기 분당경찰서]

십년지기 지인을 수면제로 재운 뒤 매장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50대 여성의 주요 범행동기가 ‘청부통정(請負通情)’으로 드러났다. 이 여성은 경찰 조사 초기에는 자신을 절도범으로 몬 데 따른 앙심이라고 거짓 진술을 했다.

 

하지만 별거 중이던 남편과 이혼해 재산을 분할 받으려 자신을 친언니처럼 따르던 6살 아래 지인에게 성관계를 지시했고, 이 사실이 주변에 알려질까 봐 결국 ‘매장’이라는 끔찍한 범행까지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에는 남편·아들도 끌어들였다.

 

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악연으로 끝난 이모(55·여·구속)씨와 A씨(49·여·사망)의 만남은 10년 전쯤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안에서 이뤄졌다. 장날이면 어김없이 품바가 공연됐는데, 관람객들은 공연이 끝난 뒤 자연스레 삼삼오오 모여 술자리 등을 가졌다고 한다. 둘 역시 이렇게 친해지기 시작했다. 

십년지기 매장 사건의 기막힌 범행동기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 자료사진. *본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 없습니다. [연합뉴스]

이들을 포함해 10명 가까이 모였다. 계(契)가 아닌 순수한 친목 모임이었다. A씨는 자신에게 친근하게 대해주는 이씨를 유난히 잘 따랐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이씨가 A씨에게 무리한 부탁을 자주 하면서 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이씨는 남편 박모(62·사망)씨와 성격 차이 등으로 별거 중이었다. 완전히 연을 끊지는 않고 가끔 왕래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이씨는 남편과 이혼해 재산을 분할 받으려는 목적으로 A씨와 함께 강원도 철원 남편의 집을 찾았다. 남편은 본인 명의로 논밭 등을 소유하고 있었다. A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도록 한 뒤 이를 빌미로 이혼서류에 도장을 받아낼 심산이었다. 관계는 이뤄졌지만, 남편이 “절대 이혼할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텨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십년지기 매장 사건의 기막힌 범행동기

분당 생매장 사건의 피의자 아들 모습. [사진 경기 분당경찰서]

A씨가 지적장애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유족의 진술에 의하면 지적 수준이 일반인보다 약간 낮은 편이라고 한다. 여기에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친언니나 다름없는 이씨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또 다른 지인들의 설명이다.

 

한 달 후인 같은 해 6월 이씨는 A씨의 옛 동거남 집에서 저금통 등을 훔쳤다 동거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마땅한 직업이 없었던 이씨는 절도 혐의를 벗으려 A씨에게 “경찰에게 네가 시킨 일이라고 진술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불구속 상태에서 경찰·검찰 조사를 받던 이씨는 절도죄가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년 뒤 ‘청부통정’을 시킨 사실이 이씨를 압박해왔다. 올해 6월 A씨의 동거남(52)이 이씨를 찾아와 “왜 그런 일을 시키느냐”며 따진 것이다. 이씨는 성남 모란시장 지인 모임에까지 이 사실이 퍼질까 고민하다 범행을 계획했다. 

십년지기 매장 사건의 기막힌 범행동기

피의자 검거 이미지. [중앙포토]

이후 이씨는 아들 박씨와 범행을 모의했다. 지난 7월14일 이씨 모자는 성남 모란시장 인근으로 A씨를 불러내 렌터카에 태웠다. 미리 준비해둔 수면제를 탄 커피를 건넸다.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든 커피를 마신 A씨는 곧 잠들어 버렸다.

 

이씨는 남편이 사는 강원도 철원을 향해 달렸다. 도착하자마자 이씨는 남편에게 “A씨가 당신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소문내고 있다. 수면제를 먹여 데려왔으니 살해하자”고 말했다. 남편은 아들과 함께 잠든 A씨를 자신의 텃밭으로 옮겨 매장했다. 

십년지기 매장 사건의 기막힌 범행동기

분당경찰서[사진 다음 로드뷰]

한 달도 되지 않아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8월10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던 A씨의 실종신고가 이뤄지면서다. 사라진 A씨의 전화통화나 은행거래 등이 확인되지 않자 경찰은 납치 등 사건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열어 놓고 본격 수사에 나섰다.

 

A씨의 소재파악에 나선 경찰은 9월 초쯤 이씨가 ‘A씨를 봤다’는 말을 성남 모란시장 모임 지인들에게 하고 다닌다는 제보를 접했다. 이후 아들 박씨가 7월14일(범행당일) 렌터카를 이용해 철원에 다녀온 사실을 확인했다. A씨의 휴대전화 전원은 남양주에서 꺼졌는데, 렌터카는 남양주를 거쳐 철원으로 향했다. 

십년지기 매장 사건의 기막힌 범행동기

자살 이미지. [연합뉴스]

이씨가 같은 날 성남과 철원에서 전화통화를 한 점도 확인했다. 하지만 이씨는 A씨를 만난 사실을 부인하고, 아들은 경찰의 출석요구에 계속 불응했다. 경찰은 A씨의 생존 등을 확인하려 지난달 24일 이씨 모자에 대해 감금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같은 달 28일 거주지인 서울과 시흥에서 각각 체포했다. 같은 날 이씨 남편의 철원자택도 동시에 압수 수색을 했다.

 

당시 남편 박씨는 피의자가 아닌 압수수색 입회인 신분이었다. 박씨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경찰의 눈을 피한 뒤 자택 인근 창고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

 

경기 분당경찰서는 7일 살인 혐의로 이씨 모자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당일 이씨 모자의 동선과 A씨 휴대전화가 꺼진 지점이 겹친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범행을 자백받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A씨 시신은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정밀 감정 중이다. 유골에서 골절이나 손상 등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몸속에 수면제 성분이 있는지, 다른 약물은 없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성남=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