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책 작가 이기주 "여태 여섯 번 실패…"

by중앙일보

여섯 번의 실패 뒤 맛본 성취

캐리어 끌고 시골 책방까지 누벼

『말의 품격』 더하면 100만 부 넘어

 

무거운 세상의 ‘가벼운 책’

내가 쓰는 글은 여백·공간 많아

빈 곳을 채우는 건 읽는 이의 몫

 

출판계와 독자 사이 엇갈린 시선

거창한 담론·인사이트는 잘 몰라

평가 존중하지만 ‘마이웨이’ 갈 것

 

[책 속으로] 책 펴내고 서점 200곳 순례 … 내 절박함에 독자들 움직인 것 같아

인터뷰 │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책 작가

이기주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책 작가

언어의 온도 / 이기주 지음 / 말글터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책 작가

말의 품격 /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세밑 도심 서점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이기주.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책 『언어의 온도』의 작가다. 그는 서점 통로에서 독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인터뷰를 요청했다. 절차를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그는 ‘2017년’ 어느 매체하고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2017년’이라는 시점은 중요하다. 2016년의 이기주가 무명작가였다면 2017년의 이기주는 ‘벼락 스타’이기 때문이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그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점 구석 카페에서 마주 앉았고, 인터뷰는 2시간 내리 이어졌다.

 

이기주는 인터뷰를 승낙하면서 조건을 걸었다. “밝히고 싶지 않은 개인정보는, 얘기는 할 수 있지만 보도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나이와 학교를 적지 않는다. 기자 경력은 책에도 언급된 바 있어, 약 8년의 기자생활을 했고 2010년 전업작가가 됐다는 사실은 공개한다.

 

Q : 왜 언론에 나오는 걸 꺼리는가.

 

“최근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너무 많은 인터뷰·방송·강연 요청으로 일상이 많이 무너진 상황이다. 언론을 통해 내 이야기를 들려줄 정도의 깜냥이 아직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에 근무했던 신문사 2곳의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다. 당분간은 책을 통해서만 생각과 감정을 전하고 싶다.”

 

(※이기주는 인스타그램에도 비슷한 글을 남긴 바 있다. ‘말을 아껴 글을 씁니다.’ 그는 “하루 평균 서너 건의 인터뷰·강연 요청을 거절한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출판사 사무실도 닫았다. 『언어의 온도』를 펴낸 출판사 ‘말글터’의 발행인도 이기주다. 이기주는 2017년 출판계의 키워드였던 ‘1인 출판’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다.)

 

Q : 책이 정확히 얼마나 팔렸나.

 

“『언어의 온도』는 73만 부 정도 나갔고 『말의 품격』(황소북스)은 32만 부 정도 나갔다.”

 

(※『언어의 온도』는 2016년 8월, 『말의 품격』은 2017년 5월 출간됐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언어의 온도』의 월별 판매량이다. ‘예스24’에 의뢰해 『언어의 온도』의 월별 판매량을 조사했다. 지난해 8∼12월 판매량이 전체 판매량의 3.3%에 불과했다. 2017년 3월 갑자기 판매량이 급증했고 이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출간 3개월 안의 판매량이 이후 21개월 동안의 판매량보다 많다는 출판계의 오랜 정설을 『언어의 온도』는 통렬하게 깼다. 2017년 출판계 키워드에는 ‘역주행 베스트셀러’도 있다. 주인공은 물론 『언어의 온도』다.)

 

Q : 왜 이렇게 많이 팔렸다고 생각하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야 할 것 같다. 조심스럽다.”

 

(※『언어의 온도』는 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 법칙을 조목조목 위반한다. 지은이가 유명 작가도 아니고, 대형 출판사에서 나온 책도 아니며, 대통령이 추천한 책도 아니고, TV·영화 등에 등장한 ‘미디어셀러’도 아니다. 그런데 판매량은 기록적이다.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이런 고백도 했다. “작가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사재기를 의심해 조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출판계는 올 1년 ‘이기주 미스터리’에 시달렸다.)

 

Q : 그래도 작가가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한참을 고민하다)한 권의 책이 10이라면 6∼7은 작가의 몫이고 3∼4는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문장을 메워 넣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백과 공간이 많은 책을 쓴다. 이런 점 때문에 독자에게 더 다가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북 토크를 하다 보면 ‘내 얘기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많은 독자가 거울 같은 책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Q : 민감한 질문을 해야겠다. 독자와 출판계의 반응이 많이 다르다. 출판계의 중진 한 명은 “『언어의 온도』가 베스트셀러인 상황이 우리 출판계의 현실”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연말 잇따라 발표된 ‘올해의 책’에서도 이기주의 책은 보이지 않는다. 『언어의 온도』가 작년 여름에 출간됐기 때문이라지만, 추천도서로도 거론되지 않았다.

 

“내 책에 대한 평가를 존중한다.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것에 감상을 얹은 글을 쓴다. 거창한 담론이나 인사이트가 있는 글은 잘 모르겠다. 글을 쉽게 쓰려고 정말 많이 노력한다. 나는 그냥 내 길을 묵묵히 가겠다.”

 

Q : 『언어의 온도』의 인기가 SNS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에서 책을 홍보하지 않는다. 1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글을 올리는데, 독자와의 소통 창구로 활용한다.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2만7500명 정도다.”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책 작가

이기주의 인스타그램. 사인회 소식을 알리고 있다.

(※출판계에는 “『언어의 온도』는 SNS가 낳은 베스트셀러”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출판평론가 장은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먼저 독자와 연결하고 출판은 나중에 하는 관행이 하나의 흐름으로 들어서면서 무명의 저자가 돌풍을 일으키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며 이기주를 꼽았다(월간 ‘채널예스’ 12월호).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언어의 온도』를 검색하면 5만9285건의 게시물이 나온다(26일 현재). 올해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른 『82년생 김지영』은 3만1515건이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이기주의 책 사진이나 문장을 필사한 사진을 올린 ‘인증샷’ 게시물이 수두룩하다. 이기주의 외모를 칭찬하는 글도 많다. SNS에서 이기주 팬덤 현상이 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SNS가 이른바 ‘이기주 현상’의 원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 이기주 현상과 SNS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예스24와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예스24 회원 중에서 이기주의 독자 1086명을 찾아 이기주의 인스타그램 팔로워인지 물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4%, 그러니까 44명만이 이기주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라고 대답했다. 젊은 여성독자가 열광한다는 분석도 근거가 약하다. 예스24에 따르면 20∼40대 여성이 『언어의 온도』 독자의 54.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에세이 분야 독자의 58.5%가 20∼40대 여성이었다.)

 

Q : SNS의 영향이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언어의 온도』를 냈을 때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몇천 명에 불과했다. 책이 알려지면서 팔로워도 늘어났다. 내 책을 알린 방법은 ‘면 대 면’이었다. 책을 내고서 6개월 동안 교보·영풍·반디앤루니스의 전국 매장을 다 찾아갔다. 독립 서점까지 합하면 200곳이 훨씬 넘는다. 출판사 영업사원도 잘 안 가는 지역의 작은 책방까지 가봤다. 순례였다. 나는 그렇게 부른다. 캐리어를 끌고 다녔는데 참 무거웠다. 작가로서의 책임감·근심·절박함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몸부림을 치다 보니 천천히 책이 움직이는 흐름이 느껴졌다.”

 

Q : 처음에는 서점에서 이상하게 봤을 것 같다.

 

“많이 서러웠다. 면전에서 박대 받은 적도 많고, 만나주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바쁘다고 기다리라고 하면 1시간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려서 10분 얘기했다. 한 줄이라도, 서문이라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언어의 온도』는 나의 7번째 책이다. 에세이도 냈고, 자기계발서도 냈지만 다 실패했었다. 『언어의 온도』도 실패할 수는 없었다.”

 

Q : 지금도 서점을 자주 다닌다.

 

“1년 365일 중에서 360일은 서점에 간다. 책의 뿌리는 서점에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책에 둘러싸인 공간이 좋다. 서점에 출근해서 다른 작가의 책을 1권 사고 구석에서 읽는다. 내 책을 사는 독자가 있으면 쫓아가서 설명을 해준다. 사인도 해주고 셀카도 찍어준다. 서점에서 무료 북 토크도 하고 사인회도 한다. 사인회를 7시간 한 적도 있다. 서점에서 글감을 얻는 경우도 많다.”

 

『언어의 온도』를 흔히 ‘라이트 에세이’라 부른다. 작고 가벼워서이다. 핸드백에 쏙 들어가는 크기여서 ‘파우치 판형’이라 하기도 한다. 휴대성을 고려한 판형이지만, 작가는 “가뜩이나 무거운 세상, 책이라도 가벼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볍다’는 의미에는 책 내용도 포함돼 있다. 『언어의 온도』가 일상의 경험을 무던히 적은 글 모둠이어서이다. 사진 한 장 없는 306쪽 책에는 3개 장 83개 꼭지의 글이 실려 있다. 한 꼭지의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5장 정도다. 영화를 보다가 떠오른 생각, 책의 한 구절에서 이어진 고민, 거리에서 마주친 풍경 묘사 등이 깨알 같이 적혀 있다. 자주색 표지가 인상적이다. 자주색이 ‘온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색깔이라고 생각했단다.

 

이기주는 아픈 개인사를 많이 털어놨다. 낮고 조용한 말투로 제 어려웠던 시절을 조곤조곤 들려줬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었다. 언젠가는 이기주의 삶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작가를 만나고 다시 책을 펼치니 글과 말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