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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왜 빚은 줄지 않나(하)

청년부채 미스터리···국가장학금 18조 썼는데 빚 2배

by중앙일보

등록금 부담은 분명 줄었지만

가정의 부채문제가 청년에 대물림

적성 상관없이 대학 가서 진로 고민

쉽게 빚 내주는 금융사가 문제 키워

청년부채 미스터리···국가장학금 18

서울 시내 한 중학교에 게시된 국가장학금 홍보 포스터. 한애란 기자

18조4000억원. 2012년 국가장학금 제도가 도입된 뒤 지난해까지 6년간 대학생에 지급된 금액이다. 한 해 평균 3조원 넘는 예산이 대학 장학금으로 투입됐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499억원 증액된 3조6800억원 예산이 편성됐다. 교육부는 국가장학금을 ‘반값 등록금’이라 칭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국가장학금을 나눠준 뒤에도 20대 청년층의 부채는 줄기는커녕 가파르게 늘기만 한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 평균 1268만원이던 20대 부채 규모는 2017년 2385만원으로 88% 증가했다. 빚을 보유한 20대 비율도 그대로(48.8→48.1%)다. 예산을 그렇게 쏟아부었는데도 청년부채 관점에선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 청년부채의 미스터리다. 왜일까.

 

대학을 휴학 중인 박수정(22·가명) 씨는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700만원의 대출을 안고 있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부모님의 부탁으로 생활비 대출을 받았다. 그가 받은 장학재단 생활비대출은 취업 후 상환 방식이어서 당장은 갚지 않아도 된다. 박 씨는 “어렸을 땐 집이 압류당한 적 있고, 내 명의로 가족이 쓴 휴대전화 요금이 연체되기도 했다”며 “내 대출은 모두 가족들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학재단의 학자금대출 금리는 2.2%. 학자금대출 중에서도 생활비대출은 학기당 15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금리가 낮은 데다 소득구간 8분위 이하이면 취업 뒤에 상환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거부감 없이 받는다. 박 씨처럼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부모님이 먼저 장학재단 대출을 제안하기도 하다. 고금리 금융회사 대출을 받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서다. 학자금대출이지만 청년의 부채가 아닌 가족의 부채인 셈이다.

 

장은영(30·가명) 씨는 대학 시절 장학재단 대출을 매 학기 받다가 결국 연체에 빠졌다. 그는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시는데 수입이 많지 않다 보니 생활비대출을 받아 매장 운영자금과 빚 상환에 썼다”며 “부모님이 이자만 내주셨는데, 여러 건 중 하나가 연체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모의 부채문제는 자녀에게까지 대물림된다. 학자금대출이라는 수단으로 부채 폭탄이 터지는 것을 몇 년간 미뤄뒀을 뿐이다. 청년만 봐서는 청년부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다.

청년부채 미스터리···국가장학금 18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적성과 무관한 대학 선택과 취업난, 두 가지는 청년부채를 키우는 구조적 원인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소현(25·가명) 씨는 대학을 다니는 내내 회의가 컸다. 환경에 관심 있어서 이름만 보고 관련 학과를 골랐는데 막상 가르치는 것은 다른 쪽이었다. 3학년을 마친 뒤 대학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동안 투자했는데 졸업은 해야 한다"고 말렸다. 스스로도 학자금대출 받은 것이 아까워서 그만두지 못했다. 이 씨는 "소득만 있으면 대출을 빨리 갚아서 없애버리고 싶은데 지금 버는 거로는 생활비도 벅차다"고 말했다.

 

지방 사립대에 다니는 김지훈(25·가명) 씨는 진로 고민이 부채를 키운 경우다. 대학에 다녔지만 비싼 등록금이 아깝고 학자금대출 쌓이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차라리 공무원 시험을 봐서 취업하는 것이 돈을 아끼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배달·서빙·콜센터 등 각종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돈으로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시험공부를 해보니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여러 명이 나눠서 인터넷강의를 수강하는데도 그 비용이 만만찮았다. 돈이 떨어져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고, 점점 합격과는 멀어졌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복학했고, 모아둔 돈이 바닥나서 생활비대출까지 받았다. 김 씨는 "빚이 있으니 친구를 만나도 머뭇거리게 되고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위해 빚을 지게 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장동호 남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불안한 일자리가 무엇인지 이미 잘 알기 때문에 안정적인 일자리인지를 따질 수밖에 없다"며 "그런 곳은 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공무원시험 준비 등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청년이 빚을 내기가 너무 쉬운 세상이다. 옷가게에서 일하는 최현정(25·가명) 씨는 대학 입학 직후 저축은행에서 '대학생 전용 마이너스 카드'를 덜컥 발급받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신용관리에 대한 개념이 없이 마이너스 대출 300만원을 받았고, 이를 갚기 위해 또 고금리 대출을 받아 돌려막기를 했다. 3년쯤 지나자 빚이 2400만원으로 불어나고 한 달 이자만 70만~80만원이 됐다. 결국 연체가 반복됐고 최 씨는 신용회복위원회 문을 두드렸다.

 

소수이긴 하지만 장학재단 생활비대출을 받아 다른 목적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대학생 윤지은(24·가명) 씨는 장학재단 생활비 대출을 두 차례 받아 해외여행 가는 데 썼다. 윤 씨는 “생활비대출을 생활비를 보조하기 위한 것보다는 뭔가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어떤 이에겐 학자금대출이 쉬운 저금리 대출 수단이다.

 

청년부채를 키우는 개인과 가족, 사회적 요인을 한꺼번에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부설 내지갑연구소 소장은 "저소득·고비용이라는 청년부채의 근본 원인은 일자리와 주거 정책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아울러 약탈적 대출이라는 금융의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동호 교수는 "청년부채 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교육부·대학·복지부·지자체·고용부·기업 등이 협의체 만들고 국무총리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해결책 모색할 것"을 제안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