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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불참' 통보한 펜스와 '그냥' 늦은 아베…리셉션의 진실

by중앙일보

청와대가 밝힌 펜스 리셉션 '5분 참석'의 진실은?

지난 9일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내외빈 200여명이 기다리고 있던 리셉션장 안에는 “펜스 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도착이 늦어져 행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불참' 통보한 펜스와 '그냥' 늦은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환영사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리셉션장 앞에서 귀빈들을 맞이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며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6시 13분 한국의 우방인 미국과 일본 정상이 불참한 상태에서 리셉션 행사를 시작하도록 지시했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의 공식 환영사가 시작된 이후에 도착했다. 문 대통령은 리셉션 중간에 나와 두 사람이 따로 기다리고 있던 방으로 이동해 한ㆍ미ㆍ일 정상급 인사들의 별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두 사람과 함께 리셉션장에 입장했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이 자리에도 앉지 않은 채 바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를 놓고 “북한과의 대면 거부”, “외교적 결례”라는 등의 주장이 나왔다.

'불참' 통보한 펜스와 '그냥' 늦은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미국에서 펜스 부통령이 6시 30분 자국 선수들과의 만찬 일정이 있어 처음부터 참석하기 어렵다는 뜻을 알려왔었다”며 “하지만 한국의 요청으로 리셉션 전 포토 세션에는 참석하기로 했고, 포토 세션에서 ‘오신 김에 입장해 인사라도 하시라’는 문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펜스 부통령이 5분여 리셉션장 안에서 인사를 나눈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미국 측이 행사 1시간 전 이러한 최종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 바람에 청와대는 펜스 부통령의 좌석을 1시간 전에 치웠다가, 문 대통령과 함께 입장하는 것을 보고 다시 헤드 테이블에 명패를 올려놓는 등 혼선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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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여자 예선전을 관람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그냥' 늦은 아베…文 "내정 간섭 곤란"

그런데 아베 총리는 그냥 늦었다. 청와대에는 ‘지각 참석’에 대한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펜스 부통령과 함께 나타났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어쨌든 늦게 온 것은 사실이다. 다만 다자간 회의에서 주요국일수록 (일정이 많아) 늦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늦게 나타난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 정상의 일정과 관련된 상황은 알지 못한다”며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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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양양국제공항에 도착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그러면서 9일 한ㆍ일 정상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부분을 추가로 공개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전한 양 정상 간의 대화 내용이다.

 

“올림픽 이후가 고비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지한 의사와 구체적인 행동이 이 필요하다. 한ㆍ미 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 한ㆍ미 협동 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 (아베 총리)


“아베 총리의 말씀은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될 때까지 한ㆍ미 군사훈련을 연기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의 주권의 문제이고, 내정에 관한 문제다. 총리께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 (문 대통령)

엇갈리는 한·일의 공식 브리핑

이러한 대화는 정상회담과 관련한 한ㆍ일 양국의 공식 브리핑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불참' 통보한 펜스와 '그냥' 늦은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9일 오후 평창 블리스힐스테이트에서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가차 방한한 아베 신조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회담 직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은 평창올림픽 기간 남북대화를 하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의 ‘미소 외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소개했다. 아베 총리의 말에 대해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가 비핵화를 흐린다거나 국제공조를 흩뜨리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가 결국 비핵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분위기를 살려 나갈 수 있도록 일본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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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 아베 총리가 국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브리핑에서는 “진짜 중요한 고비를 올림픽 이후다. 최대한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방침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이 소개돼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내정 간섭’이라고 했던 ‘한ㆍ미 훈련 중단’에 대한 아베 총리의 발언은 뺐다. 한 일본 기자가 “합동 훈련 실시를 언급했느냐”고 물었지만, 일본 정부 당국자는 “압력을 강화하고 최대한 (대북) 압박을 높여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면서도 “이 이상의 대화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자들의 관련 질문이 이어졌지만, 일본 당국자는 “이 이상의 설명을 어렵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서로 '할 말'만 한 위안부 문제

양국 정상은 박근혜 정부 때 체결된 위안부 합의안을 놓고도 이견을 드러냈다. 먼저 김의겸 대변인의 브리핑에 담긴 양 정상의 대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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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평창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던 중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위안부 합의는 국가 대 국가의 합의로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야 한다는 게 국제원칙이다. 일본은 그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약속을 지켜온 만큼 한국 정부도 약속을 실현하기를 희망한다” (아베 총리)

'불참' 통보한 펜스와 '그냥' 늦은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평창 블리스힐스테이트에서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가차 방한한 아베 신조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위안부 합의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결정은 지난 정부의 합의 이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국민이 합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그분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아물 때 해결될 수 있지, 정부 간의 주고받기식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계속하여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할 것” (문 대통령)

 

김 대변인은 “(양 정상이) 서로 하실 말씀만 하셨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위안부 문제 전반적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고 답했다.

 

일본 당국자의 브리핑에는 “일·한 합의는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다. 일본 정부는 이미 약속을 모두 하고 있고, 한국 측도 일·한 합의로 최종적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한 이상 합의의 약속을 모두 실행하길 바란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등을 언급한 문 대통령의 발언은 빠졌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