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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가는 곳마다 활활…
괜히 ‘불의 땅’이 아니었네

by중앙일보

아제르바이잔 바쿠 외곽에 천연가스 많아

바쿠 야경 명소는 불꽃 형상화한 '플레임타워'

 

“미스터리한 불꽃이 압세론 반도 도처에 타오르고 있다.” 13세기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했을 때 했던 말이에요. 압쉐론 반도(Absheron Peninsula)는 카스피해 서쪽에 혹처럼 튀어나온 작은 반도로,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가 있는 곳이기도 해요. 그 후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땅(Land of Fire)’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고, 근대에 이르러서야 불꽃의 정체는 압쉐론 반도 아래에 매장된 어마어마한 양의 천연가스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어요. 놀랍게도 그 불꽃은 지금까지도 타오르고 있어요.

가는 곳마다 활활… 괜히 ‘불의 땅’

불의 땅 아제르바이잔과 수도 바쿠.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의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코카서스 3국 중 가장 부유한 나라예요. 1870년 카스피해에서 최초로 유전이 발견되었고, 20세기 초에는 세계 석유생산량의 50% 이상을 기록하기도 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현재 아제르바이잔은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이 주 국가 수입원이고, 생산된 연료들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조지아, 러시아, 터키로 운송돼죠. 이 파이프라인은 코카서스 산맥 인접 국가들의 경제적-외교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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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의 유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20㎞만 외곽으로 가면 지금도 타오르고 있는 불꽃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어요. 지하철을 타고 쿄로글루(Koroghlu)역에서 내려 217번 버스로 갈아타고는, 30분 정도 달려 버스 종점에 도착했어요. 버스를 타고 오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전을 보았어요. 특이한 모양의 거대한 기계가 방아를 찧듯 오르락내리락 하며 기름을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서 더욱 신기했어요. 버스에서 내리니, 길 건너편에 야나르다그(Yanar dag)라는 커다란 표지판과 함께 푸른 언덕이 펼쳐졌어요. 바쿠 도심에서 고작 30분 벗어났을 뿐인데 도시에서 시골로 순간이동한 기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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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르다그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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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르다그 가는 길의 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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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번 버스 종점. 버스비는 0.25마낫(약 16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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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르다그 입구.

‘불타는 산(burning mountain)’이라는 뜻의 야나르다그(Yanar Da?)는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이름 그대로 1년 365일, 비가 와도 꺼지지 않는 불을 볼 수 있는 곳이죠. 이름만 보고 산 전체가 불로 뒤덮인 커다란 산을 상상했는데, 실제로 보니 산이라고 부르기는 민망할 정도로 작은 언덕 아래에 자그마한 불이 타오르고 있었어요. 사실 이 곳도 과거에는 불이 언덕 여기저기서 타오르고 있었는데, 천연가스의 대량 채취로 인해 지하압력이 내려가서 바쿠 주변에 타오르고 있던 불꽃들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해요.

가는 곳마다 활활… 괜히 ‘불의 땅’

불타는 언덕 야나르다그.

가는 곳마다 활활… 괜히 ‘불의 땅’

매장된 천연가스 때문에 365일 24시간 타고 있는 불꽃.

멀리서 볼 때는 작아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천연가스 불꽃은 10m 이상 길게 뻗어 있었고, 열기는 후끈후끈했어요. 불의 나라라도 겨울은 10도를 밑도는 쌀쌀한 기온이라서 몸이 으스스 했는데 마침 ‘천연 난로’가 생겨 불 가까이에서 몸을 녹였어요. 따뜻하긴 했지만, 가스가 계속 뿜어져 나와서 그런지 가스 냄새 때문에 옆에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요. 바쿠 외곽의 유명 관광지여서인지 여행사를 통한 다국적 단체 관광객도 많이 찾아왔어요. 야나르다그 입장료는 2마낫(약 1300원)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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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가스가 무한공급되는 자연난로.

가는 곳마다 활활… 괜히 ‘불의 땅’

야나르다그에 방문한 단체 관광객들.

가는 곳마다 활활… 괜히 ‘불의 땅’

야나르다그 기념사진. 살려주세요~!

야나르다그는 150년대, 양치기가 우연히 불을 붙인 게 지금까지 타고 있는 것이라고 해요. 야나르다그를 나오는 길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 양치기 아저씨를 만났어요. 7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는데, ‘혹시 이분이 야나르다그에 불을 붙이신 분일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양떼를 구경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노인이 우리를 보고 손짓하시더라고요.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니 말 등을 두드리며 직접 말을 타고 몰아보라고 하셨어요. 여행 중 이렇게 선의를 베푸는 척 하며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종종 있어, 우선 얼마냐고 물어봤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죠. 아저씨의 순박한 미소에 ‘에라 모르겠다’ 하며 말에 올라탔어요. 전에 몽골에서 승마 투어를 했던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양떼 사이를 누비며 유목민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어요. 반신반의하며 말에서 내리니, 아저씨는 다시 말에 올라 타시고는, 손을 흔들며 양떼와 함께 다른 언덕으로 떠나셨어요. 아저씨의 선의를 잠시나마 돈으로 판단한 우리를 반성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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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양치기가 되어.

가는 곳마다 활활… 괜히 ‘불의 땅’

도시에서 30분 벗어났을 뿐인데 이런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가는 곳마다 활활… 괜히 ‘불의 땅’

말을 태워주시곤 홀연히 떠나버린 아저씨. 감사합니다~!

야나르다그를 뒤로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바쿠 시내로 돌아왔어요. 어둑해지자 바쿠 도심에도 커다란 불꽃이 빛나기 시작했어요.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을 대표하는 건물인 ‘플레임타워(Flame Towers)’에요. 말그대로 타오르는 불꽃을 상징하는 이 건물은, 외벽 전체가 LED로 만들어져, 밤마다 빛 축제가 펼쳐져요. 활활 타오르는 불꽃부터 아제르바이잔 국기까지! 바쿠 야경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플레임타워 앞에는 바쿠시내 최고의 뷰 포인트이자 공원이 있는데, 이곳에 있는 샤히드라 기념비(Shahidlar Monumnet)에도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요. 이쯤 되면 누가 봐도 ‘불의 나라’ 맞죠?

가는 곳마다 활활… 괜히 ‘불의 땅’

불의 땅 아제르바이잔을 상징하는 플레임타워.

가는 곳마다 활활… 괜히 ‘불의 땅’

플레임타워의 낮 풍경.

가는 곳마다 활활… 괜히 ‘불의 땅’

바쿠 곳곳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 이 곳은 샤히드라 기념비(Shahidlar Monument).

날씨는 쌀쌀했지만 도시 곳곳의 불 덕분에 따뜻한 바쿠 여행이었어요. 다음은 코카서스 3국의 마지막 나라, 아르메니아로 떠나보겠습니다.

 

정리 = 양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