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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르포] 세계 최초 'AI 컬링로봇' 인간에게 석패…누가, 왜 만들었나

by중앙일보

[르포] 세계 최초 'AI 컬링로봇'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8일 경기도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장에서 '인공지능 컬링로봇 경기 시연회' 를 개최했다. 인공지능 컬링로봇이 강원도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선수들과의 경기 중 스톤을 투구하고 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AI) 컬링 로봇 '컬리'가 8일 데뷔 경기에서 인간 선수들에게 졌다. 이날 오후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센터에 등장한 로봇 '컬리'는 상대편인 강원도 고등부팀(춘천기계공고) 소속 컬링 선수들에게 3대 0으로 패했다.

 

로봇 개발을 주도한 이성환 고려대 교수(뇌공학)는 경기 내내 "영미!" 대신 "컬리!"를 외치며 로봇 선수들을 응원했다. 이 교수는 "결과는 아쉽지만 컬리는 학습을 통해 계속 똑똑해지고 있기 때문에 다음 경기에서는 더 향상된 실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록 인간에게 졌지만 로봇 컬리는 이날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였다. 본 경기에 앞서 오전에 열린 시범 경기에서는 컬리가 인간 선수들을 1대 0으로 이기기도 했다. 컬리는 컴퓨터가 고안한 다양한 경기 전략을 자로 잰 듯한 정확하고도 강력한 투구로 선보였다. 컬리와 맞붙은 김재원 선수(춘천기계공고)는 "똑같은 힘으로 계속해서 끝없이 투구하는 컬리가 무섭고 당황스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선수가 속한 강원도 고등부 컬링팀은 지난해 신세계·이마트배 전국컬링대회 고등부에서 우승한 팀이기도 하다.

[르포] 세계 최초 'AI 컬링로봇'

컬링 로봇. [사진 고려대]

컬리는 지난해 초 이 교수와 설상훈 고려대 교수(전기전자전파공학)를 필두로 하는 '컬링 로봇 컨소시엄'이 결성된 후 1년도 채 안 걸려 개발했다. 고려대·울산과학기술원, NT로봇 등 학계와 로봇 전문기업 등이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지난해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25억원을 지원받은 로봇 컨소시엄은 같은 해 가을 세계 컬링 로봇 컬리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컬링 전략을 수립하는 소프트웨어인 '컬브레인'을 완성한 것이다. 컬브레인은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열린 '인공지능 컬링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 우수성을 입증했다.

 

높이 220㎝, 무게 86kg의 로봇 컬리는 이날 경기에서 '더블 테이크아웃' (두 개의 스톤을 쳐냄) 샷 등을 정교하게 구사해 경기장 내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컬리는 높이 쭉 뻗은 머리 위에 달린 카메라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로봇 두 대가 경기장 양 끝에서 각각 '스킵 로봇'과 '투구 로봇' 역할을 한다. 맨 먼저 스킵 로봇은 목을 쭉 뻗어 경기장을 입체적으로 인식한다. 스킵으로부터 경기장 정보를 전달받은 소프트웨어 컬브레인은 투구 전략을 계산한 다음 곧바로 이를 투구 로봇에게 전달한다. 그러고 나서 투구 로봇이 투구를 하는 방식이다.

 

인간 선수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로봇 컬리에게는 아직 스위핑(브룸으로 빙판을 문지르는) 로봇이 없다는 점이다. 또 인간 선수들은 리드·세컨드·서드·스킵 4명이 번갈아가며 컬링 스톤을 던지지만, 컬리는 투구 로봇 한 대가 단 한 번만 투구를 하는 것도 특징이다.

[르포] 세계 최초 'AI 컬링로봇'

컬링 로봇의 전략을 수립하는 소프트웨어 '컬브레인' 구동 장면. [하선영 기자]

컬브레인은 훈련 과정에서 총 1300여개의 국제 컬링 경기와 경기 속 투구샷 16만 개를 딥러닝 기술로 학습했다. 경기장의 온도·습도 등 외부 환경 변화로 실시간 달라지는 빙질을 파악하는 것도 연구진들에게는 난제였다. 이날 로봇 컬리와 맞붙은 선수들도 승리 비결에 대해 "얼음에 대한 감은 로봇보다는 인간이 직감적으로 잘 파악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컬브레인도 2016년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을 벌인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처럼 몬테카를로 방식을 적용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찾고 그중 가장 합리적인 수로 투구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컬리는 현재 컬링 스톤을 원하는 위치에 놓는 드로 확률이 65%, 상대 스톤을 쳐내는 테이크아웃 확률 80%를 자랑한다. 통상 국가대표 컬링 선수들의 투구 정확도가 8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컬리의 경기력이 국가대표 못지 않은 셈이다. 컬리는 계속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앞으로 경기 정확도는 더 높아진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진은 또 연내 스위핑 로봇을 개발하면 현재의 오차를 더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르포] 세계 최초 'AI 컬링로봇'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8일 경기도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장에서 '인공지능 컬링로봇 경기 시연회' 를 개최했다. 인공지능 컬링로봇이 강원도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선수들과의 경기 중 스톤을 투구 하고 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성환 교수는 "로봇 컬리와 소프트웨어 컬브레인은 당장 컬링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경기력을 분석하고 전략을 짜는 컬브레인이 선수들이 게임 전략을 수립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이 은메달을 따면서 일고 있는 '컬링 붐'으로 늘고 있는 스크린 컬링장 등에서도 컬브레인을 활용할 수 있다. 컬링이 대중화되면서 컬링 시뮬레이션 게임을 출시할 수도 있다.

 

이 교수는 "컬링 경기 장면을 순간적으로 빨리 인식하는 컴퓨터 시각 기술도 여러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자율주행차나 인공지능 기반의 게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