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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이상원의 포토버킷(13)

"직장 다니기 싫어
식당 차리면 망한다"

by중앙일보

판교 '비스트로 도마'의 우정호 셰프

은행서 홍보·자금 등 요직 거쳐

직장 다니며 요리학원서 3년 공부

요리 반대하는 부모 5년간 설득


많은 직장인이 업무에 지치거나 싫증이 나면 으레 하는 소리가 있다. “확 때려 치고 식당이나 차릴까?” 그런 사람치고 진짜 직장을 관두고 식당 차리는 사람 많이 못 봤고, 설사 차린다 해도 잘 되는 경우 거의 보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힘든 직업 중 하나가 요리사이기 때문이다.

 

후배로부터 잘 나가던 금융맨이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 오너셰프로 변신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호기심이 크게 일었다. 판교의 맛집으로 소문 난 ‘비스트로 도마’의 우정호 셰프(43)를 만났다. 간단한 소개만 나누고 일단 대표 메뉴로 소개받은 스테이크부터 먹어봤다. 깜짝 놀랄 만한 맛이었다.

 

첫맛에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아내 생각이 났다. 곁들임 채소로 나온 마늘종 조림을 먹어봤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주 해 주던 그 맛이다. 먹자마자 아내와 어머니 생각이 났다면 말 다 한 것 아닌가. 우 셰프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직장 다니기 싫어 식당 차리면 망한

금융맨에서 오너셰프로 변신한 우정호 씨.

점심시간 후 브레이크 타임에 여유 있게 인터뷰를 하려고 했는데 와인 회사, 정육 회사 등에서 계속 찾아와 여의치 않았다. 회의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셰프가 되기 전 은행 다닐 때도 일을 꽤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 셰프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기다리게 해 미안하다면서도 고기와 소스 등에 대한 자랑을 쉴 새 없이 쏟아놓았다. ‘어떻게 은행원이 됐고, 또 어떻게 셰프로 변신했을까?’ 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해 모 은행에 입행했다. 은행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잘 다니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길을 가다 우연히 요리학원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학창시절부터 요리를 가끔 하긴 했어도 요리학원에 다닐 계획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되기로 계획되어 있던 것처럼 이끌려 ‘프랑스 요리 취미반’에 등록을 했다. 그것도 일요일 수업에. 직장인에게 일요일이 어떤 의미인가. 귀중한 휴일을 요리학원에 투자한 셈이다. 무려 3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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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가르쳐 준 스승과 아들과 함께.

언제 요리사로 직업을 바꾸려고 결심했는지 물어봤다.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어요. 요리를 가르쳐 주시던 유성남 셰프로부터 은행원이 요리는 왜 배우냐는 질문을 받았지요. 한 번도 그리 생각한 적 없는데 입에서는 요리사가 꿈이라는 대답이 나오더라고요. 진짜 마음을 확인한 거죠.”

 

부모의 반대는 없었냐고 물었다. “바로 요리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같은 금융계에 계시던 부친께서 직장 얼마 안 다녔으니 좀 더 생각을 해 보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따라 직장생활을 하며 요리공부를 3년을 더 했네요.”

요리학원 다닌지 10년만에 식당 창업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학을 떠나는 스토리를 예상했는데 의외라 생각되었다. “5년을 설득했어요. 결국 2010년 4월 8년 반 만에 무작정 직장을 그만뒀죠. 직장에서 영업, 홍보, 자금 등 주요 업무는 다 해 봐서 미련이 없었어요. 부모님도 포기하시고 받아들여 줬어요. 그해 9월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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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학교 졸업식에서 동료학생, 교수들과 함께 한 우정호 셰프.

아내의 반대는 없었는지 궁금했다. “다행스럽게 이해를 해 줬어요. 단 가족이나 회사 등 주변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게 방법만 잘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 줬죠. 100% 지키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더니 맞장구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얘기해 줬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랑 골프를 치러 갔어요.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은데 운동이나 하자는 뜻이셨나 봐요. 그날 아버지가 홀인원을 하셨어요. 좋은 징조 같다며 이왕 마음먹은 거 잘해 보라고 해 주셨어요. 진짜 운이 좋았던 거 맞죠?”

 

유학하면서 마음껏 요리공부를 했다. 참으로 행복한 기간이었다. 졸업하고 현지에서 일하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2012년 귀국해 새로 오픈하는 레스토랑의 셰프를 맡아 1년 여를 일했다. 2013년 겨울 현재의 ‘비스트로 도마(Bistro Doma)’ 문을 열고 오너셰프가 된 지 4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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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로 도마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1kg 스테이크.

처음 요리학원 문을 열고 들어간 지 10년 만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가졌으니 꿈을 이룬 것 아니냐 물었다. 이제 시작이라고, 아직 멀었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였지만 표정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요리는 여전히 재미있고 보람 있지만, 오너셰프는 또 다른 세계에요. 요리 말고도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집중이 안 될 때가 많아 힘들기도 하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말이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8년 반 동안의 직장생활 경험이 현재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경험은 어디에나 다 쓸 데가 있더라고요.”

 

레스토랑은 문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아 나름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우 셰프가 만든 요리가 베이커리 잡지 표지를 장식 했고, 모 식품회사의 기업홍보 CF에 출연하기도 했다. 직업방송 TV에 출연해 창업과 전직 경험을 강의한 적도 있다. 이후 여러 대학교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인연이 돼 올해부터 연성대학교 호텔 조리학과 겸임교수도 맡았다.

"직장 다니기 싫어 식당 차리면 망한

베이커리 잡지 표지를 장식한 우정호 셰프의 요리.

"직장 다니기 싫어 식당 차리면 망한

모 식품행사 기업홍보 CF에 출연한 비스트로 도마.

잘 나가던 금융맨이 셰프로 변신하고, 자신의 레스토랑을 갖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비결을 물었다. “추진력과 지구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을 먹으니 여러 어려움이 닥쳤는데 잘 돌파했지요. 직장을 다니기 싫어서 도피하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혹시 저와 같은 상황의 분이 계신다면, 싫은 직장이라도 잘 다니면서 서두르지 말고 준비를 잘하라고 당부드리고 싶어요. 급히 피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직장 다니기 싫어 식당 차리면 망한

직업방송에 출연하여 경험담을 얘기하는 우정호 셰프.

“해산물 식당 하고파”

마지막으로 현재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물었다. “기회가 되면 후배 양성에 힘을 쓰고 싶습니다. 제가 받은 것이 많아요.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겠지요. 돌려 드려야지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해산물 식당 ‘시푸드 도마’를 열 계획이에요. 새로운 도전이 되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필자가 운영하는 회사 ‘밤비노컴퍼니’의 이름은 건방진 초보 요리사의 성장기를 다룬 일본 드라마에서 따 온 것이다. ‘밤비노’는 ‘애송이’라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애송이’의 도전과 성장에 관심이 많다. 우정호 셰프와 인터뷰를 하면서 또 한 편의 드라마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곧 만들어질 속편이 기대된다.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몸이 전부다> 저자 jycys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