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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48세 김남주의 도발
“삶은 전쟁터, 유리천장을 깨라 ”

by중앙일보

드라마 ‘미스티’ 화제 1위

불륜·살인에 얽힌 9시 앵커 맡아

보도국 내부의 자리다툼도 생생

6년 공백 깨고 여성들 욕망 대변

“5달간 닭고기 먹으며 다이어트”

48세 김남주의 도발 “삶은 전쟁터,

드라마 ‘미스티’의 주인공 고혜란(김남주 분). [사진 JTBC]

‘욕망덩어리’. 6년 만에 연기에 복귀한 배우 김남주는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제인 극본, 모완일 연출)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주인공 고혜란을 이렇게 말했다. 고혜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최고의 앵커지만 “내가 올라갈 수 있을 데까지, 최고로 높이”라며 청와대 대변인 자리까지 탐내는 거침없는 여성이다. 지난달 2일 첫회 3.5%(닐슨 코리아 기준)로 시작한 시청률은 최근 두 배 넘게 뛰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조사에서 ‘미스티’와 김남주는 3주 연속 TV 드라마 부문 화제성 1위다.

 

드라마는 크게 두 축이다. 고혜란의 남편 강태욱 변호사(지진희 분)와 첫사랑 프로골퍼 케빈 리(고준 분), 고등학교 시절 친구 하명우(임태경 분) 등 세 남자와 로맨스가 한 축이라면, 케빈 리의 죽음을 둘러싼 살인범 찾기의 추리물이 다른 한 축이다. 불륜과 살인이란 자극적 사건이 모두 김남주, 아니 고혜란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지난해 종편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품위 있는 그녀’(12.1%)가 막장 가족극과 추리물을 결합했다면, ‘미스티’는 격정 멜로에 추리물을 더한 셈이다.

48세 김남주의 도발 “삶은 전쟁터,

옛 사랑을 만났다가 살인 사건에 휘말리고 변호사인 남편(지진희 분·아래 사진)의 도움을 받는다. [사진 JTBC]

다른 점이라면 등장인물의 주 무대가 가정에서 직장으로 확장됐다는 것. 고혜란이 일하는 보도국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나이든 선배를 제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후배 기자와 기 싸움은 물론 둘 사이의 경쟁을 교묘하게 부추기는 국장 등 여러 사람의 욕심이 얽히고설킨다. 여기에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고자 하는 정계와 재계 인사까지 개입, 그야말로 칼만 안 든 싸움터라 할 수 있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보도국 안에서 각각의 욕망이 충돌 지점에서 극 전체의 긴장감이 높아질 뿐더러 캐릭터 간의 관계가 살아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자연히 김남주가 품은 욕망도 한층 다층적으로 드러난다. “9시 앵커 오디션이었어. 배 불러오는 앵커를 받아줄 리도 만무하고”라며 앵커 자리를 얻기 위해 낙태한 사실을 고백하고, “선배들은 앵커 맡고 1년 차에 국장 달았어요. 전 지금 7년 차인데도 여전히 부장”이라며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언급한다. 다시 첫사랑을 만나 살인사건까지 연루된 것도 뉴스 섭외와 다큐멘터리 제작 때문이었을 만큼 일에 몰두하는 캐릭터다.

48세 김남주의 도발 “삶은 전쟁터,

변호사인 남편(지진희 분)의 도움을 받는다. [사진 JTBC]

일에서 벗어나도 ‘여성’이기 때문에 임해야 하는 전투는 계속된다. “그런 걸로 유명했지. 쌔끈하게 주고”라고 성희롱하는 동료 기자에게는 “실력으로 주고, 인정받고”라고 받아쳐야지, 아이 문제로 사이가 틀어진 남편과 배란주기에 맞춰 한약을 들고 오는 시어머니의 압박에는 꿋꿋이 견뎌야 한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후배가 됐든 친구가 됐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기도 하고 덫에 빠뜨리기도 한다.

 

착한 주인공과 거리가 먼 악녀임에도 시청자들의 지지가 열렬한 이유는 뭘까.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김남주는 “우리 모두 전쟁터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좀 독하긴 하지만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고혜란은 할 수 있다는 대리만족 때문에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심한 인간 김남주로서는 차마 이해할 수 없지만 욕망에 따라 솔직하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고혜란을 보며 자신도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는 “‘뉴스나인’ 세트가 ‘뉴스룸’보다 훨씬 크다. 거기 앉아 있으면 제 위에 아무도 없어서 마치 왕처럼 느껴졌다”며 “세트를 부술 때 더이상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없겠구나 싶어 너무 아쉬웠다”고 말했다.

 

사실 김남주는 오랫동안 여성의 욕망을 대변하며 닮고 싶은 ‘워너비’로 군림해 왔다. 1992년 미스 경기 진으로 시작, SBS 4기 공채로 데뷔한 그는 ‘도시남녀’(1996) ‘모델’(1997) 등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 전문이었다. “외모가 화려해서인지 들어오는 시나리오마다 노출신이 있어” 영화는 겁이 나서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화장품·아파트 등 잘 나가는 연예인들만 한다는 CF도 도맡아왔다. 결혼 후 30대가 돼서는 ‘내조의 여왕’(2009)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 등에서 코믹하고도 똑 부러진 미시 전문 배우로 거듭났다.

 

김남주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었다. 예전 같으면 (세는 나이로) 48살에 주인공을 할 수 있을 거라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6년 간의 공백을 채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엄마로 살아서 여배우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예민한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다이어트는 필수여서 5달 동안 일반식을 못 먹었다. 닭하고만 친해져서…. 코미디를 하다 보니 말이 빨라져서 지적인 말투로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한 대사를 100번씩 읽기도 하고. 끈적거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눈빛 연습도 했다.”

 

‘미스티’의 ‘김남주 효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공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영화계에선 여성 원톱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반면, 4050 중년 여성을 다양하게 조명하는 드라마가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며 “앵커로서 목소리 톤을 낮춘 발성이 또 다른 인생 캐릭터를 만드는 데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윤석진 교수는 “드라마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20대 때도 주연인 배우가 40~5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주연인 것은 또 다른 다양성을 억압하는 부작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