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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이번엔 증평 모녀의 비극, 숨진지 두 달간 아무도 몰랐다

by중앙일보

생활고 40대, 3세 딸과 극단 선택

남편과 사별 … 관리비 수개월 연체

아파트 임대보증금 재산으로 잡혀

저소득 계층으로 분류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한 뒤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40대 여성이 세살배기 딸과 함께 숨진 지 두 달여 만에 발견됐다. 모녀는 수개월째 이웃과 교류를 끊고 지냈고, 아파트 월세와 관리비·세금이 밀려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럼에도 명목상 저소득층이 아니어서 복지안전망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8일 충북 괴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5시18분쯤 충북 증평군의 한 민간임대아파트에서 A씨(41·여)가 집 안에서 그의 딸(3)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딸은 침대 위에 이불을 덮고 있었고 A씨는 방 바닥에 누워있었다. 경찰은 시신의 부패 상태를 고려했을 때 모녀가 두 달 전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엔 증평 모녀의 비극, 숨진지 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A씨 모녀의 죽음은 아파트 관리비가 수개월째 연체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에 의해 확인됐다. 아파트 관리소 관계자는 “3개월 정도 아파트 관리비가 연체되고 있어서 A씨 집을 찾아갔으나 문이 열리지 않아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포함해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A씨의 남편은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지난해 9월 증평의 한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집에서 함께 살던 친정 어머니(65) 역시 같은 달 지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경찰관계자는 “부검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타살 의혹은 없다”며 “A씨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 힘들다’는 내용을 유서에 쓴 것으로 미뤄, 남편과 어머니를 잃은 뒤 경제적으로 어렵고 심리적으로 위축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는 기초수급 등 복지 대상자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2015년부터 민간 임대인 이 아파트 32평에 보증금 1억2500만원, 월세 13만원을 내고 살았다. A씨 가족 차량 3대 중 2대가 A씨의 소유였다. 나머지 한 대는 남편 소유의 트럭으로 명의 변경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국민연금은 자동이체로 꼬박꼬박 납부되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과 사별 직후부터 A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다시 남편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관은 “A씨가 수차례 ‘살기가 막막하다’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A씨의 수입은 딸에게 지급되는 가정양육수당 10만원이 전부였다.

 

최재숙 증평읍 맞춤형복지팀장은 “실제 소득은 없었지만 고가의 아파트 임대보증금이 재산으로 잡혀있어 저소득계층으로 분류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사회보장급여 대상자를 선별하는 복지사각지대 발굴 사업에도 A씨 가정이 체크되지 않았다. 국민건강보험·국민연금 체납, 단수·단전 등 이상 징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3월부터 각 지방자치단체에 두 달에 한 번씩 복지사각 대상자를 선정해 통보하고 있다. 올해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전력 등 유관기관과 사회복지사와 마을 이·통장 등을 통해 증평군에서 1월 87세대, 3월 35세대 등 122세대가 발견됐다. 하지만 A씨 가정은 이 명단에 없었다. 정부가 정한 복지안전망 선별 기준에 충족되지 않았고, 공동주택에 살고 있어 단전·단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아파트 관리비가 체납됐지만 단전·단수는 이뤄지지 않아 A씨의 상황을 인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주변 사람들이 A씨의 사정을 몰랐던 것으로 봐서 이웃과의 교류도 적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A씨의 아파트 보증금 대출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남편이 사망했을 당시 정부의 긴급생계비 지원 신청 등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부분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모녀의 상황은 이웃도 알지 못했다. A씨와 같은 층에 사는 이웃 B씨는 “엘리베이터에서 딸과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봤지만 밝은 얼굴로 인사하길래 어려운 상황인 줄 몰랐다”며 “넉 달전 부터 보이지 않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줄 알았다”고 말했다. 8일 현장에서 만난 아파트 같은 동 주민 10여 명을 접촉했지만 A씨의 사정을 아는 이는 없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수도·전기·임대료 등이 밀려 독촉은 했지만 형편은 알 수 없었다”고 전했다.

 

증평=최종권 기자 choigo@joongn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