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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드 ] 심식당

압구정동서 37년째…
북한까지 소문난 평양만두집

by중앙일보

이민 해비치 대표 추천 ‘만두집’

 

‘어디로 갈까’ 식사 때마다 고민이라면 소문난 미식가들이 꼽아주는 식당은 어떠세요. 가심비(價心比)를 고려해 선정한 내 마음속 최고의 맛집 ‘심(心)식당 ’입니다. 이번 주는 해비치호텔&리조트의 이민 대표가 추천한 ‘만두집’입니다.

압구정동서 37년째… 북한까지 소문난

큼직한 평양만두와 담백하면서 시원한 국물이 특징인 '만두집'의 만둣국.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만둣국이 있는 노포”

압구정동서 37년째… 북한까지 소문난

이민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대표. [사진 해비치]

이 대표는 호텔 업계에선 전설적인 인물로 꼽힌다. 2014년 셰프로선 처음으로 특급호텔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셰프 출신 임원은 이전에도 소수 있었지만 대표 자리에 오른 건 그가 처음이다. 레스토랑뿐 아니라 호텔 전반의 운영을 총괄하느라 서울·제주를 오가며 바쁘게 지내는 이 대표가 서울에서 근무할 때면 꼭 찾는 곳이 ‘만두집’이다. 이 대표는 “서울 본사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있고, 어머니가 빚은 듯 투박한 모양과 기교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만둣국 맛이 좋아 자주 찾는다”고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셰프 출신인 만큼 만둣국 한 그릇에 담긴 정성이 자연스레 느껴진단다. 이 대표는 “이 집처럼 개운하고 맑은 국물을 내기 위해선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작은 노포 특유의 무심한 듯한 편안함도 이 대표가 ‘만두집’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는 “평범한 듯 특별한 한 끼를 맛보고 싶다면 꼭 가보라”고 추천했다.

북한에도 소문난 남한 맛집

압구정동서 37년째… 북한까지 소문난

갤러리아 백화점 바로 맞은편 골목에 자리한 만두집. 무심하고 심플한 작은 간판 때문에 처음 찾는 사람은 골목 앞에서 헤매기 쉽다.

신사동 압구정로데오역 6번 출구,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에 두서너 명이 겨우 지날 법한 좁은 골목이 있다. 이곳에 37년째 한결같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아주는 '만두집'이 있다. 평양 출신인 한동숙(2004년 작고)씨가 고향에서 즐겨 먹던 빈대떡·만둣국·비지 등을 팔기 시작한 게 1981년부터다. 한 씨는 북한에서 유명 축구 선수였던 남편 옥정빈(2004년 작고)씨와 함께 5남매를 데리고 51년 남한으로 왔다. 부부의 막내딸이자 현 만두집 사장인 옥혜경(70)씨는 “아버지는 북한 축구 대표로 실력이 뛰어나 김일성 주석이 좋아하는 선수로 꼽힐 만큼 유명했다“며 “나중에 건너 들었는데 부모님이 만두집을 열었을 때 북한에 ‘옥정빈 선수네가 남한에서 만둣가게를 한다’는 소문이 났었다더라”고 말했다.

압구정동서 37년째… 북한까지 소문난

어머니가 처음 가게를 열었던 곳은 이제 직원들이 만두 빚는 곳으로 사용하고, 식당은 규모가 큰 옆 가게로 옮겼다.

사람을 좋아하던 부부의 집엔 늘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남한에서도 활발하게 선수로, 감독으로 활약했던 아버지 옥 씨 때문에 축구 선수들과 협회 관계자들이 수시로 집을 찾았다. 그때마다 한 씨는 직접 빚은 평양식 만두와 맷돌에 간 녹두로 부친 녹두전을 한 상 가득 차려냈다. 한 씨의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식당을 하라”고 권했다.

 

사실 한 씨는 60년대 서울 저동의 영락교회 인근 4층 건물에서 냉면과 불고기를 파는 식당을 했고 제법 장사가 잘됐지만 집안 사정으로 문을 닫았었다. 이 때문에 다시 식당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계속되는 권유로 결국 한 씨는 “조그맣게 해보자”며 당시 개발이 한창이던 신사동에 8평짜리 작은 가게를 열었다. 다행히 한 씨에겐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농구선수로 활동하다 은퇴한 막내딸 옥혜경씨다. 옥 씨는 어머니와 함께 만두집을 시작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지금까지 한결같이 가게를 지켜가고 있다. 손님이 늘어 기존 가게는 만두 빚는 곳으로 사용하고, 식당은 바로 옆 더 큰 공간으로 옮겼다.

담백한 국물에 큼직한 평양만두담아내

압구정동서 37년째… 북한까지 소문난

매일 아침 새로 빚은 만두로 끓여낸 만둣국. 두툼한 피 안엔 속이 꽉 차 있다.

‘만두집’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지만 이 집의 공식 상호는 ‘뉴만두집’이다. ‘만두집’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은 영수증에 적힌 ‘뉴만두집’ 상호를 보고 주인이 바뀌었는지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식당의 세무처리를 해주던 세무사가 만두라는 대명사를 사용할 수 없어 앞에 ‘뉴’자를 붙여 상호를 등록한 것이다.

 

식당의 오랜 단골들은 어머니 한 씨와 딸 옥 씨를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옥 씨가 미국의 오라버니 집에 가서 잠시 쉬자 “주인이 바뀌었냐”는 문의가 이어졌다. 결국 옥 씨는 가게에 어머니의 사진을 걸었다. 지금도 오랜 단골들은 한 씨의 사진을 보며 추억을 떠올린단다.

압구정동서 37년째… 북한까지 소문난

식당 한쪽 벽에 걸어놓은 어머니 한동숙씨의 사진. 오랜 단골들에겐 '당신이 찾던 37년 전 바로 그곳이 맞다'는 편안함을 선물해주는 사인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만둣국이다. 만두는 지역에 따라 그 모양과 맛이 다르다. 서울만두는 양반가에서 즐겨 먹던 음식으로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다. 반면 평양만두는 만두소를 듬뿍 넣어 알이 크다. 웬만한 남자들도 한입에 넣기 어렵다. 지금도 어머니 한씨가 평양에서 빚었던 크기를 그대로 유지한다.

 

직접 만든 반죽을 사이다병으로 민 만두피는 적당히 두툼하다. 여기에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숙주, 두부, 파 등을 섞은 소를 아낌없이 넣는다. 옥 씨는 “쇠고기만 넣으면 식감이 너무 퍽퍽하기 때문에 부드러운 식감의 돼지고기도 함께 넣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모든 만두는 당일 아침에 빚는다. 한 그릇에 1만1000원인 만둣국엔 어머니가 계시던 때와 똑같이 큼직한 만두 6개를 넣는다.

 

육수는 평양냉면처럼 맑다. 쇠고기 양지와 대파를 삶아 기름을 말끔히 걷어낸 육수는 특유의 구수함과 대파의 단맛이 잘 어우러진다. 여기에 매콤한 양념장을 조금씩 넣는다. 먼저 맑은 국물을 맛본 후 가라앉은 양념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면 금세 대접이 붉게 물든다. 다시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으면 개운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속을 시원하게 채운다.

압구정동 흥망성쇠 지켜본 진짜 토박이

압구정동서 37년째… 북한까지 소문난

만두집은 '미쉐린 가이드'에 2년 연속 '좋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 자리에서 37년 넘게 장사를 한 만큼 만두집은 압구정동 로데오 상권의 흥망성쇠를 잘 기억하고 있다. 옥 씨는 “88년에 처음 맥도날드가 문을 열었을 땐 밤늦게까지 동네가 환하고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상권이 서서히 죽으면서 이젠 해가 지면 조용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주변의 크고 작은 가게들이 문을 여닫는 사이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만큼 만두집을 다녀간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부모님 손을 잡고 가게를 드나들던 꼬마 손님은 이젠 30~40대가 되어 자식들의 손을 잡고 찾아온단다. 가수 패티 김과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대표적인 단골이었다.

 

평양 출신 주인장의 손맛을 통해 향수를 달래려는 북쪽 실향민과 그 가족들은 만두집의 대표 단골들이다. 두 살 때 어머니 품에 안겨 떠나온 고향이지만 옥 씨도 고향인 평양 땅을 밟아볼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요즘처럼 남북 관계가 훈풍을 타니 더욱 반갑단다.

 

“남북 분위기가 훈훈해지니까 당연히 기분 좋죠. 고향인 평양에도 가보고 유명하다는 옥류관 등 북한 식당도 가보고 싶네요.”

압구정동서 37년째… 북한까지 소문난

만둣국만큼 인기가 많은 빈대떡과 고추부침.

이곳은 평일에는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 영업하고 일요일은 쉰다. 가격은 만둣국 1만1000원, 만두전골(어복쟁반) 6만 원, 빈대떡 2만 원, 고추전 1만6000원이다.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전유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