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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돈 잘쓰는 젊은 여성들…
이젠 ‘쉬코노미’ 시대

by중앙일보

여성 1인 가구 지출 남성보다 많고

20대 해외 출국자 중 60% 넘어서

여행업계, 취향 반영한 패키지 늘어

“여성성보다 만족·편안함 추구”

돈 잘쓰는 젊은 여성들… 이젠 ‘쉬코

디오르가 선보인 ‘페미니즘 티셔츠’

중소 정보기술(IT) 기업에 근무하는 이지은(38)씨는 최근 ‘모녀여행 패키지’로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어머니의 체력을 고려해 동선은 짧고, 스파·마사지에 집중된 여행 일정을 찾다 발견한 상품이다. 이씨는 “여성들의 취향에 맞는 여행 계획이 맘에 들어 보자마자 바로 결제했다”며 “여행을 다녀온 어머니도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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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쉬코노미’ 바람이 거세다. 쉬코노미는 ‘그녀(She)’와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다. 과거 패션·화장품 등 일부 분야에서 최근에는 그 분야가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다. 여성이 독립적인 경제주체의 지위를 확보하면서 자신을 위한 소비를 점점 늘리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여성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194만6000원으로 2008년(141만3000원)보다 37.7% 늘었다. 여성 1인 청년 가구(25~39세) 월평균 소비지출은 125만원으로 남성(110만원)보다 씀씀이가 크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 교환을 하는 여성들의 전파력이 강해진 점도 한몫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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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근 국내 시장에서 쉬코노미가 두드러지고 있는 곳은 여행업계다. 한국여행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출국한 여성은 1245만 명으로 남성(1238만 명)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특히 20대 출국자 462만 명 가운데 여성은 279만 명으로 전체의 60%를 넘었다. 조일상 하나투어 홍보팀장은 “가족여행을 결정하는 주도권이 보통 여성에게 있기 때문에 가족용 패키지에도 카페에서의 자유시간을 추가하는 등 여성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관중이 늘어난 프로 스포츠도 다양한 여성 대상 이벤트를 벌인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남자프로배구의 여성 관중은 전체의 68%에 이른다. 지난해 역대 최다 관중인 840만 명을 기록한 프로야구는 여성 관중 비율이 42%를 넘어섰다. SK 와이번스는 매주 금요일을 ‘레이디스 데이’로 지정해 여성 대상 이벤트를 진행하고, 두산베어스는 한 달에 한 번 ‘퀸즈 데이’에 여성 팬을 대상으로 입장권을 할인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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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애주가를 겨냥한 조니워커 위스키 ‘제인 워커’.

KOTRA에 따르면 쉬코노미의 진원지인 미국 소비시장에선 여성이 구매 결정의 85%를 담당하고 있다. 여성 근로자의 수입이 남성의 80%를 넘을 정도로 경제력도 커졌다. ‘서드러브’는 기존 브래지어 컵 사이즈인 AA·A·B·C·D 사이즈 등에 ‘B1/2’ ‘C1/2’ 등의 사이즈를 추가했다. 주류 브랜드 ‘조니워커’는 여성 애주가를 겨냥한 ‘제인 워커’ 위스키를 미국 시장에 선보였다. 임신·출산을 계획적으로 할 수 있게 돕는 ‘프릴류드’, 월경일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 등 이른바 ‘펨테크’(FemTech) 스타트업들도 눈에 띈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가치관 변화가 소비 행태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여성성보다는 자신의 만족감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소비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NPD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용 스니커즈 판매량은 37% 늘었지만 하이힐은 11% 감소했다.

 

명품 브랜드 디오르에서는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라는 문구가 찍힌 티셔츠를 선보였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부 활동가와 학자의 영역에 머무르던 페미니즘이 시민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여성을 내세우는 마케팅이 자칫 돈벌이 수단이 돼 ‘여성을 위한다’는 본질이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올 초 미국의 펩시코는 ‘레이디 도리토스’를 만들겠다고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공공장소에서도 씹는 소리가 나지 않고, 손에 양념이 잘 안 묻는 과자로 소개됐다. 하지만 ‘여성들은 과자를 조용하고 깨끗하게 먹어야 한다’는 편견이 암시돼 있다는 반발을 불러왔다. 강채린 KOTRA 로스앤젤레스 무역관은 “여성용 제품이라는 이유로 가격이 비싼 것을 ‘핑크 택스’라고 하는데, 기능상 큰 차이가 없는데도 디자인·색상만 바꿔 ‘여성용’으로 판매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여성을 ‘가치’가 아닌 ‘수익’ 차원에서 접근했다가는 장기적으로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