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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양말 신고 카레 먹다 들킨 치즈', 무슨 뜻일까요?

by중앙일보

냥덕 용어 파헤치기

'양말 신고 카레 먹다 들킨 치즈',

“미안, 나 갑자기 총 맞아서 오늘 못 만날 것 같아.”

내가 친구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무시무시한 내용이지만 가까운 친구 중 누구도 이 말에 놀라지 않는다. 병원이 어디냐고 묻지도, 농담하지 말라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총 맞는다’가 ‘갑작스럽게 취재 지시를 받는다’는 뜻임을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취재 지시를 내리는 행위는 ‘총을 쏜다’고 한다. 기자들끼리 사용하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어느 분야에나 그 안에서만 통하는 ‘전문용어’가 있다. 의학 용어나 법률 용어처럼 지식의 영역만 있는 건 아니다. 기자들이 서로 총을 쏘고 맞는 것처럼 원래 있는 표현이 다른 의미로 통용되기도 한다. ‘고양이 덕후(이하 냥덕)’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날로 높아지는 고양이의 인기 덕에 냥덕 세계도 규모가 상당히 커졌다. 국내 최대 고양이 관련 커뮤니티 ‘고양이라서 다행이야’는 회원 수가 55만 명이 넘는다. 집에서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 길냥이를 돌봐주는 캣맘과 캣대디, 또는 그저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다. ‘냥알못(고양이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 카페의 글을 읽는다면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분명히 아는 단어와 표현인데, 알고 있는 의미로는 좀처럼 해석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앞발에 양말 예쁘게 신은 턱시도의 가족을 구합니다’

 

‘창가에서 노릇노릇 식빵 굽는 ○○이 좀 봐주세요.’

 

’◇◇이 젤리에 상처가 났어요! 병원 가야 하나요?‘

‘앞발에 양말을 신었다’는 건 하얀 무늬가 발끝에서부터 양말처럼 올라와 있다는 의미다. ‘턱시도’는 얼굴 일부와 배 부분은 하얗고 나머지 털은 검은색이어서 블랙 앤 화이트 수트를 입은 듯 보이는 고양이를 말한다. 네 다리를 배 밑으로 숨기고 납작 엎드린 자세를 ‘식빵 굽기’라고 한다. 노랑 줄무늬 고양이가 그렇게 앉아 있으면 오븐에서 노릇노릇 잘 구워져 나온 식빵 같다. ‘젤리’는 고양이 발바닥 아래의 올록볼록한 분홍색 부분을 말한다. 대개 말랑하고 매끈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고양이가 잘못 깨물거나 거친 바닥을 오래 걸으면 상처가 나기도 한다.

'양말 신고 카레 먹다 들킨 치즈',

나무는 앞발엔 페이크삭스를, 뒷발엔 발목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었다.

이처럼 냥덕들의 대화에는 보통 사람은 부연 설명 없이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 수시로 등장한다. 고양이 주인을 부르는 ‘집사’라는 단어부터가 그렇다. ‘집사’란 본래 ‘주인 가까이 있으면서 그 집의 일을 돌보는 사람’이다. 제집을 고양이에게 내주고 갖은 수발을 들며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그보다 적합한 표현도 없다. 대저택과 귀족이 등장하는 옛날 소설책에서나 보던 단어가 고양이 덕분에 현대 대한민국에서 흔하게 쓰이고 있다.

 

특히, 고양이의 생김새를 묘사하는 표현들은 고양이만큼이나 귀엽다. 한국의 길고양이 종인 ‘코리안숏헤어’는 털 색깔과 무늬에 따라 부르는 말이 다르다. 턱시도 외에도 치즈·고등어·삼색이·카오스·젖소 등이 있다.

 

‘치즈’는 바로 나무와 같은 노란 털 고양이를 말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색깔이지만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아 ‘치즈냥은 진리’라는 말도 생겼다(내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진리의치즈’를 검색해보시라. 먹는 치즈가 아닌 노란 고양이 사진만 3000개가 넘게 뜰 것이다.

 

등 푸른 생선처럼 회색 몸통에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는 ‘고등어’라고 부른다. ‘삼색이’는 흰색·검은색·노란색 세 가지 색 털이 섞여 있는 고양이다. 이 녀석들은 99.9%의 확률로 암컷이다. 세 가지 털 중 검은색과 노란색 비율이 더 높고 무늬가 온몸에 정신없이 퍼져 있는 고양이는 ‘카오스’라고 구별해서 부른다. 이쯤 되면 ‘젖소’는 어떤 고양이인지 상상이 갈지도 모르겠다. 젖소처럼 하얀 털에 검은색 얼룩무늬가 있는 고양이다.

'양말 신고 카레 먹다 들킨 치즈',

카레 먹다 들킨 표정. 코와 입 사이, 그리고 아래턱까지 좌우 대칭으로 깔끔하게 카레 자국이 나 있다.

동그랗고 한없이 보드라워 보이는 고양이의 발은 ‘솜방망이’다. 양말을 신어 발끝이 흰색이면 ‘찹쌀떡’이라고도 부른다. 얼굴 부분이 하얀데 입 주변에만 색깔이 있는 경우, 노란색이면 ‘카레 자국’, 검은색이면 ‘짜장 자국’이 묻었다고 한다. 그릇에 머리를 박고 카레나 짜장을 먹다가 입 주변에 잔뜩 묻힌 것처럼 보여서다. 나무는 네 발 모두 흰 양말을 신어서 찹쌀떡이 네 개이고 카레 먹은 자국이 있다. 흘리지도 않고 어찌나 얌전하게 먹었는지 아주 정직한 동그란 모양이다.

 

행동 묘사도 재밌다. 발톱을 세우지 않고 솜방망이를 휘두르는 행동을 ‘냥냥펀치’라고 한다. 솜방망이로 냥냥펀치라니. 말만 들으면 타격일랑 전혀 없이 귀엽기만 할 것 같지만 맞아보면 의외로 아프다. ‘식빵 굽기’의 자매품으로는 ‘냥모나이트’가 있다. 고양이와 암모나이트의 합성어다. 고대 생물 암모나이트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자는 모습을 나타냈다.

'양말 신고 카레 먹다 들킨 치즈',

캣폴에 올라가 햇살에 식빵을 굽고 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날카로운 공기 소리를 내며 공격 의사를 표하는 행동은 ‘하악질’이다. 예민한 고양이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이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크다. 야생의 사자나 호랑이가 포효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마냥 귀엽기만 하다. 그러나 고양이는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니 겁먹은 척을 하고 잠시 피해주도록 하자.

 

집 안에서 고양이가 갑자기 미친 듯이 뛰어다닐 때가 있다. 잠자던 사냥 본능이 불쑥 튀어나와서 그렇다. 강아지들은 마룻바닥을 뛸 때 ‘탁탁탁’ 발톱 소리가 나지만, 고양이는 발톱을 완전히 숨기고 뛰기 때문에 발바닥이 바닥과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만 난다. 그래서 고양이들의 이 같은 뜬금 질주를 부르는 말은 ‘우다다’다. 주로 아기 고양이 때 많이 하다가 나이 들면 뜸해진다.

 

‘강아지파’였던 내가 고양이 용어 풀이까지 할 수 있는 냥덕으로 거듭나는 데에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평소 고양이를 귀엽다고 생각해왔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원에 치즈 두 마리가 새로 왔는데 뒷발 한쪽에만 양말 신은 애가 어미고 카레 먹은 애가 딸이에요. 공원 터줏대감인 고등어랑은 만날 때마다 하악질을 하고 사이가 안 좋았는데, 요즘은 벤치에 앉아서 같이 식빵 굽고 있더라고요.’

이 말을 모두 이해한 당신, 이미 훌륭한 냥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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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