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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과학자가 본 야구’-기교파보다 강속구 투수, 팀 승리 기여 높다

by중앙일보

볼이 어디로 올지 몰라 당황스러운 기교파 투수, 스트라이크 존으로 정직하게 꽂히지만, 공이 빨라 알고도 치기 어려운 강속구 투수. 어떤 투수 유형이 팀 승리에 유리할까.

 

정답은 강속구 투수다. 이른바 ‘파이어 볼러’로도 불리는 투수 유형이다. 포항공대(POSTECH) 산업경영공학과 정우성 교수 연구팀은 빅데이터를 이용, 메이저리그(MLB) 선발투수들을 '주 무기' 구종에 따라 분류하고 어떤 유형의 투수가 팀 승리에 더 기여하는지 연구했다. 그랬더니 일관성 있게 같은 스트라이크 존에, 빠르게 공을 넣는 투수가 팀을 승리로 이끌 확률이 높았다. 선발투수에게는 구속(球速)보다 구종(球種)이 중요하다는, 야구계의 통념을 깨는 연구 결과다.

‘과학자가 본 야구’-기교파보다 강속

일본의 대표적 파이어볼러로 꼽히는 오타니 쇼헤이(24ㆍLA에인절스)가 5월 13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첫 이닝에서 역투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9개 스트라이크 존, 전부 노리는 변화구보다 '영점 잡힌 속구'가 낫다

계투ㆍ마무리 투수와 달리 선발투수는 한 경기에서 여러 명의 타자를 상대하게 된다. 첫 타석에서 투수가 타자를 제압한다 해도 다음 타석에서 타자가 투수의 공을 예측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선발투수가 일반적으로 경기당 100여개의 공을 던지며 6~7회까지 마운드를 지키는 것을 고려하면, 경기 중에도 선발투수의 구종과 구질은 분석 당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그간 야구계에서는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는 ‘기교파’ 투수가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간다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데이터는 정반대의 결과를 내놨다. 연구를 진행한 정 교수는 “같은 스트라이크라 하더라도 9개 스트라이크 존에 공이 넓게 퍼져 있는 투수보다, 한두 개 존을 지속해서 노리더라도 빠른 공을 집어넣는 투수가 승리에 유리했다"고 밝혔다. 타자가 어떤 공이 오는지 예측하더라도 치기 힘든 ‘영점 잡힌 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존을 넓게 찌르는 기교파 투수보다 통계적으로 나았다는 얘기다.

‘과학자가 본 야구’-기교파보다 강속

메이저리그의 대표적 강속구 투수에는 랜디 존슨이 있다. 사진은 2005년 4월 3일, 랜디 존슨이 보스턴 레 레드삭스와의 경기 첫 이닝서 투구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이는 연구팀이 공의 종류와 스트라이크 존 위치를 분석한 '정규 상호 정보량'을 바탕으로 얻은 결과다. 이 수치를 바탕으로 투수가 던지는 공의 '불확실성'을 정의할 수 있었던 것. 예를 들어 동일한 구종의 공이 특정한 스트라이크존에 자꾸 들어오면 불확실성이 낮아지는 식이다. 연구에 따르면 불확실성이 낮은 투수일수록 성적이 좋았다.

 

정 교수는 “확실한 주 무기를 가지고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투수가 팀 승리에 기여한다는 법칙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선수 기복 상관없이 일정한 경향...KBO에서는 양현종, 소사

정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경향성은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관측된 것으로, 선수 기량의 일시적 기복과는 관련이 없었다. 한국프로야구(KBO)에서는 기아 타이거즈의 양현종, LG트윈스의 헨리 소사가 대표적 파이어 볼러에 속했다. MLB에서는 랜디 존슨, 로더 클레멘스, 요한 산타나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포함됐다.

‘과학자가 본 야구’-기교파보다 강속

4월19일 광주 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LG트윈스와의 경기에서 9회초 완투승을 거둔 양현종이 기뻐하고 있다. 양현종은 작년, 평균구속 143.9km의 빠른 속구를 주무기로 20승을 거두며 다승왕에 올랐다. [출처 연합뉴스]

특히 KBO의 양현종(30)은 지난해 리그서 평균 구속 143.9㎞(리그 1위)로 20승을 올려 2017시즌 다승왕에 올랐다. 총 191 이닝을 소화하고도 사구가 0개, 볼넷이 45개로 제구가 좋았던 점을 고려하면 '알고도 못 치는 공이 많았다' 는 평가가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MLB의 가장 영향력 있는 현역선수 TOP5에 오른 오타니 쇼헤이(24)가 대표적 선수로 꼽힌다. 2015년 열렸던 프리미어12 대회 당시, 한국 타자들은 최고 161km에 달하는 오타니의 직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경험이 있다.

‘우투좌타’가 성공한다는 통계도...야구는 ‘머니볼’의 세계

타율(AVG), 출루율(OBP), 장타율(SLG) 등, 야구에서는 선수를 평가하는 다양한 통계적 지표가 사용된다. 야구가 '기록의 스포츠'로 불리는 이유다. 영화 '머니볼(2011)'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이 출루율을 이용, 오합지졸 구단이었던 팀을 월드시리즈로 올린 이야기는 통계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과학자가 본 야구’-기교파보다 강속

영화 머니볼은 만년 꼴찌팀이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이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 '피터 브랜드'와 함께 출루율을 분석, 팀을 월드시리즈로 올려놓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중앙포토]

또 지난해 말 미국과 네덜란드 공동연구팀은 146년간의 MLB 데이터를 분석해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고 왼손으로 타격하는, 우투좌타자가 좌투좌타자보다 선수로서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포수가 '프레이밍'을 통해 추가 스트라이크를 얻어내는 능력까지 주목받는 등 통계적 지표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통계학ㆍ경영학ㆍ운동역학 등 다양한 학문의 연구 대상인 스포츠

통계학자·산업공학자·물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스포츠를 분석하고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는다. 특히 한국에서는 2013년 1월 ‘한국야구학회’가 설립돼 야구에 관한 여러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초대 회장을 정재승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가 맡았다.

‘과학자가 본 야구’-기교파보다 강속

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 빌리 빈 단장과 피터 브랜드가 출루율을 분석하고 있다. 장원철 한국야구학회 회장은, "작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LA다저스의 통계분석원은 20명이 넘는다"며 야구에 있어서 통계분석의 힘을 강조했다. [중앙포토]

현(現) 야구학회 회장인 장원철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는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은 LA다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양팀 모두 통계 분석원이 20명이 넘는다”며 통계분석이 실제 팀과 선수의 역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도 이유로 꼽았다. 그는 “지난해 휴스턴으로 이적한 투수들이 선전하는 이유를 봤더니, 코치진이 선수들의 지표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고 있었다”며 “통계학뿐만 아니라 운동역학·경영학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야구가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2015년 일본서 개최된 프리미어12에서 강속구 투수 '오타니 쇼헤이'의 활약상. 한국은 이 대회 준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결승에 진출해 우승했으나 오타니 한 투수에게 삼진 21개를 당하기도 했다.[출처 유튜브]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