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1년만에 쏘카로 돌아온 '다음' 이재웅 "오죽하면 내가 또 나왔겠나"

[비즈]by 중앙일보

경영 복귀한 벤처1세대 '다음' 창업자

AI·자동화로 급변하는 사회, 한국은 과거 규제에 잡혀

혁신기업가 부족, 물꼬 트는 역할할 것

쏘카, 사회적 가치 만드는 종합 모빌리티 플랫폼


‘왜 돌아왔을까.’


지난 4월 이재웅(50) 다음 창업자가 카셰어링 벤처 ‘쏘카’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자 곳곳에서 쏟아진 질문이다. 1995년 다음을 창업하고, 2007년 다음 대표를 그만 둔 그는 10년 이상 소셜벤처 투자자로 지냈다. 공유경제ㆍ미디어 분야의 스타트업을 키우는 ‘막후의 벤처 1세대’였다. 쏘카도 그 중 하나다. 지난해 매출 1200억원을 돌파한 쏘카는 국내 1위 카셰어링 기업이다. 모바일 앱으로 차량을 예약하고 가까운 전용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 분 단위로 빌려 타는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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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쏘카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취임 후 100일을 갓 넘겼다고 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새로운 규칙"이라는 표현을 스무 차례 이상 언급했다. 각종 규제를 둘러싸고 스타트업과 기존 사업자 간 갈등이 반복되는 상황에 대해 "기술 발전으로 달라지고 있는 사회ㆍ경제ㆍ노동 환경에 맞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또 "앞으로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새로운 규칙들을 제안하겠다"며 이를 "다음 세대를 위해 벤처 선배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오죽하면 제가 다시 나왔을까 싶을 만큼, 우리 사회의 혁신 동력은 바닥나 있다"며 "국내에는 앙트르프러너(entrepreneurㆍ혁신기업가)들이 너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11년 만이다. 다시 경영에 나선 이유는.


"쏘카는 인큐베이팅(사업 구상)부터 참여한 기업이라 관심도 애정도 많다. 고속 성장했지만 앞으론 지속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쏘카의 지향점을 내부 구성원이 공유하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쏘카가 더 커지면 못할 일인데 더 늦어지면 안 돼서 내가 맡았다. 기업이 상장하면 긴 호흡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쏘카의 지향점은.


"우리는 데이터와 기술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이동수단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최적화시키려는 종합 모빌리티 플랫폼이다. 데이터와 기술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100일 간 전문 인력 70명을 더 뽑았다(*전체 직원은 300여명). 우리 같은 기업이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습관과 새로운 규칙을 만들 수 있다. ‘매출ㆍ이익ㆍ보유차량 대수 같은 걸 좇지 말고, 수평적ㆍ자율적ㆍ창의적으로 일하면서 우리의 지향점을 추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그러면 매출은 뒤따라오는 것’이라고 취임 후 직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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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규칙'이라는 게 뭔가.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모빌리티에선 자율주행이 코앞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기존의 아주 오래된 패러다임에 따라 만들어진 법령들이 많다. 자동화와 인공지능(AI)으로 노동시간이 줄면 사람들의 경제적ㆍ사회적 자유도는 증가해야 맞다. 현실은 반대다. 수중에 돈은 더 없고 일은 더 해야 하고 저임금 노동은 늘고…. 이를 기존 방식으로 풀려고 하면 해결 못 한다. 사람들의 사회적ㆍ경제적 자유를 더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새로운 규칙을 고민해야 한다. 집이나 차 같은 자산을 공유해서 가처분 소득을 늘려주는 공유경제 모델도 더 확산될 것이다. 이런 변화에 맞는 룰이 필요하다."


-정부도 규제를 없애려고 노력한다는데 성과가 없다.


"이제까지 벤처업계는 자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주장했다. ‘예전 규제는 다 없애주세요’라고 피켓만 들었지, 전체 산업이나 사회를 고려하지 못했다. 사회의 규칙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가치뿐 아니라 상대방의 상황도 이해하며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현 정부도 이전보다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하지만, 산업계 파트너의 역할이 약했다."


-이 대표도 투자한 카풀 스타트업(풀러스)은 결국 구조조정 중이다.


"소통 부재 때문이다. 카풀만 해도 국내 택시 시장(8조원)에서 대표적인 카풀 업체 2곳의 비중은 0.1%도 안 된다(지난해 약 20억원). 카풀은 택시를 대체할 영리 시장이 아니다. 유럽 대표 카풀인 블라블라카(Blablacar)를 봐도 비영리 카풀 모델로 자리를 잘 잡았다. 국내에선 기존 사업자들이 새로운 사업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기회가 없었다."


(*현행 법상 24시간 카풀은 불법이다. 상시 카풀을 중개해주는 풀러스 규제 및 택시업계와 충돌해왔다.)


-택시업계는 생존권을 이유로 반대한다. 설득이 가능할까.


"우린 지금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경쟁해야 한다. 자율주행 시대가 오고 있고 우버의 기업가치(720억달러ㆍ80조7840억원)는 현대자동차ㆍ네이버ㆍSK텔레콤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약 71조3000억원)보다 더 크다. 국내 기존 산업을 보호하기만 하면 괜찮을까. 기존 사업자들이 발전적으로 다른 길을 찾을 수 있게 같이 고민해야 한다. 금융ㆍ물류 분야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창업가들이 있다. 같이 고민해보겠다."


-이게 경영자로 돌아온 진짜 이유 같다.


"오죽하면 내가 뛰어들었을까. 정말 ‘오죽하면’이다. 혁신기업가는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고 혁신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혁신기업가들이 국내에 너무 부족하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모델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 그게 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이다."


-왜 혁신기업가가 부족할 정도까지 됐나.


"국내에선 창업가들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듯한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많이들 좌절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또 시도해볼 이유가 없다. 미국에서 스쿠터나 자전거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는 건 먼저 창업한 기업들이 성공한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쟁도 하고 합병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수 있게 물꼬를 트는 일이 저희 같은 벤처 1세대들 역할이다. 우리끼리 모이면 의미 있는 기업을 만들고, 만든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기업의 모델을, 기존 대기업들과 다르게 갈 방법을 고민한다. 지금 새로운 규칙을 만들면 그 위에서 경쟁하고 도전하는 후배 세대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90년대 인터넷 이후 20년 만에 AI 같은 기술적 혁신이 진행 중인데.


“현재로선 우리 사회에는 ‘혁신 동력’이 바닥나 있다. 새로 생겨나는 기회에 자신이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규제 영향이 크다. 또 이런 산업에 필요한 자본이 국내에 충분히 모이고 있느냐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전 세계에서 투자를 하고 있는데 왜 한국에만 투자 기업이 없을까. 20년 전에는 20대 때 창업하고 30대초에 기업을 상장했는데 왜 지금은 그게 더 어려워졌을까. 그런 혁신 동력을 만드는 일을 지금 안 하면 한국엔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절박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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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리티 시장에서도 우버와 디디추싱이 세계를 양분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모빌리티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없다. 그나마 국내서 1등 한다는 쏘카가 상대적으로 우위인 지점은 카셰어링의 전 과정을 직접 다 관리하고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와 기술력이다. 국내선 개인간(P2P) 카셰어링을 할 수 없어서 쏘카는 차량을 직접 사서 운영하는데 이 과정에서 쌓은 경쟁력이 있다. 국내에 우선 주력하겠지만 나중에 동남아 시장 도전도 생각한다. 장기적으론 우리가 가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직접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에 자동차를 주문 생산할 수도 있다. 제조사들이 우리와의 협의에 더 적극적이다. 머지않아 그런 차가 나올 수 있다.”


-승차공유 기업들이 스쿠터·자전거 서비스도 종합하는 추세인데, 쏘카는.


“우리도 다른 이동수단을 포함해 신규 서비스들을 내놓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동 습관을 분석하고 이 흐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매커니즘은 자동차나 다른 모빌리티 수단이나 비슷하다. 데이터와 기술로 사람들의 이동을 최적화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여러 방법을 준비 중이다.”


-풀러스와 합병 계획은.


“아직 계획에 없다. 다만, 올해 하반기부터 국내에서 다양하게 인수합병(M&A)을 공격적으로 하겠다. 우리의 기술에 다른 아이디어나 서비스를 붙이기 위해, 또 더 좋은 기술을 보강하기 위해서다. 최근엔 대규모로 자율주행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는 국내 스타트업(라이드플럭스)에 투자했다. 몇 년 내에 대규모 자율주행이 가능해질 것이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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