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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알쓸신세]칸 황금종려상 '어느 가족'…아베의 침묵 뒤엔 '일본회의'

by중앙일보


[알쓸신세] 영화 ‘어느 가족’이 촉발한 일본의 가족관 논쟁

중앙일보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사진 티캐스트]

한 가족이 있습니다.


인자한 할머니와 유쾌한 엄마·아빠, 귀여운 아들·딸에 이모까지 함께 사는, 언뜻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지요. 하지만 이들에겐 감춰진 비밀이 있었습니다.


연금과 좀도둑질이 이들의 주요 수입원이라는 것이 한 가지.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이들이 일반적인 ‘가족’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지난 26일 한국에서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일본판 제목은 ‘만비키(万引き·좀도둑질) 가족’)입니다.


이 영화는 지난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죠. 일본 영화로서는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의 ‘우나기’ 이후 21년 만의 황금종려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상 소식이 알려진 후 일본이 시끄러웠습니다. 일본 사회의 그늘에 카메라를 들이댄 감독에 대한 상찬과 함께 이 영화가 “일본의 망신” “일본의 수치”라는 극우파들의 비난도 이어졌죠.


이 영화의 무엇이 일부 일본인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요. 그들이 영화 속 가족을 그토록 불편해 한 이유는 뭘까요. 이번 [ 고 보면 모 있는 기한 계뉴스- 알쓸신세]에서는 ‘어느 가족’이 드러낸 일본 사회의 모순과 시대를 역행하는 일본 우익의 가족관을 들여다봅니다.





‘축하 전화’ 즐기는 아베 총리의 의도적인 침묵


논란의 시작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화였습니다. ‘어느 가족’의 칸 국제영화제 수상이 발표된 후, 많은 이들은 아베 총리가 축하 메시지를 내놓을 거라 예상했죠. 그런데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지나도 정부발(發) 축하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국 스타나 운동선수의 해외 수상 소식에 유별나게 환호해 온 총리였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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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 제 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 티캐스트]

아베 총리는 올해 초 평창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하뉴 유즈루(羽生結弦), 고다이라 나오(小平奈緖) 선수에게 축하 전화를 건 것은 물론이고, 지난 해에는 일본 국적도 아닌 ‘일본계 영국인’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함께 축하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발표했었습니다. 도쿄 신문은 총리가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 “그동안 고레에다 감독이 영화나 인터뷰에서 지속적으로 반(反) 아베 의견을 내 왔기 때문”으로 분석했죠.


프랑스의 피가로, 미국 할리우드 리포터 등 영화 전문지들도 의문을 표했습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5월 31일 ‘일본 총리가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을 무시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추측합니다. “영화 ‘어느 가족’의 주인공들은 소득 격차 확대로 일본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이 부분이 보수적인 지도자 아베 총리를 화나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피로 이어진 대가족이 가장 행복하다’는 가치관


이런 논란 가운데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은 아베 총리의 가족관을 파헤치는 기사를 내 보냅니다. 총리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일본 가족’과 영화가 드러내는 가족관의 격차가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는 지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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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딴 하뉴에게 축하 전화를 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EPA=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2014년 7월 한 강연회에서 이런 의견을 밝혔습니다. “대가족을 높이 평가하는 제도 개혁을 논의해야 한다. 정책적인 지원도 고려해 볼만 하다.” 자신의 정치 철학을 담은 책 『아름다운 나라로』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아빠와 엄마와 아이가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두 포함한 것이 가족이다’라는 가족관과 ‘그런 가족이 사이 좋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가치관은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슈칸분슌은 총리의 가족관을 이렇게 평합니다. “가족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가장 행복한지 아닌지’는 당사자가 정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론 이런 가족관은 아베 총리 혼자의 것이 아닙니다. 아베 정부의 가장 든든한 지지 세력이자 ‘정치적 브레인’ 역할을 하는 ‘일본회의’라는 단체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1997년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라는 두 우익단체가 통합해 만들어진 일본회의는 회원수가 4만명에 달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극우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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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의 홈페이지 메인화면. [사진 일본회의 홈페이지 캡처]

일본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靑木理)가 쓴 『일본회의의 정체』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물론이고 2014년 발족한 아베 2차 내각 각료 19명 중 15명이 일본회의 간담회 소속었습니다. 일본 국회의원의 절반 이상이 이 간담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구요.





“여성은 사회 진출 말고 육아에 전념하라”


일본회의가 추구하는 목표는 한 마디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으로 돌아가자’입니다. 이들이 강조하는 주제는 ①일왕, 왕실의 수호와 숭배 ②현행 헌법과 그로 상징되는 전후 체제의 타파(헌법 개정) ③애국 교육 추진 ④전통적인 가족관의 고집 ⑤자학적인 역사관 부정 등입니다.


이 중 전통적인 가족관 부분은 간단히 말해 “대가족을 만들자” “여성은 사회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일본회의 임원인 교육학자 다카하시 시로(高橋史朗) 메이세이(明星)대 교수가 제창한 ‘부모학(親學)’이 대표적인데, 이 학설은 ‘전통 육아의 부활’이 일본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 말합니다. 아이들이 ‘조부모+부모+자녀’로 이뤄진 대가족에서 ‘엄마’의 돌봄을 받고 자란다면 공교육 붕괴도, 왕따 문제도, 심지어 아이들의 발달 장애까지 막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발족한 ‘부모학 추진 의원연맹’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일본회의는 아예 일본의 헌법에도 이런 가치관을 담으려 합니다. 개인의 존엄성과 부부 평등을 보장한 헌법 24조를 개정하라고 촉구하면서 “가족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라는 구절을 넣은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즉,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루는 기반은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선언이지요.


아래, 일본회의의 기관지인 ‘일본의 숨결’(日本の息吹)’ 표지 그림들은 이들이 추구하는 가족의 이상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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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회의 기관지 '일본의 숨결' 표지 사진. [사진 일본회의 홈페이지]

이쯤 되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정치인들의 이런 발언이 그치지 않는 이유를요.


“여성은 세상을 위해 아이 셋은 낳으라.”(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


“‘남자도 육아를 해야 한다’고 근사하게 말해도 결국 아이에게 폐 끼치는 이야기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





일본의 ‘진짜 가족’은 어디에 와 있는가


영화 ‘어느 가족’으로 돌아와봅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연금을 받기 위해 가족의 사망 신고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 뉴스를 듣고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아베 정부가 아무리 대가족을 부르짖어도 일본의 1인 가구 비중은 나날이 늘어 전체의 34.5%(2015년)에 이르렀고, 2040년에는 4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아동 학대, 빈부 격차의 심화 등은 실제 일본 매체에 연일 등장하는 ‘진짜 뉴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반일(反日)영화”라는 일각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모여들고 있습니다. 지난 달 8일 일본에서 개봉한 ‘어느 가족’은 3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한 달 만에 약 40억 엔(약 400억원)의 수입을 기록하며 올해 개봉한 일본 극 영화 중 흥행 순위 1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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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 가족'. [사진 티캐스트]

정치인들이 눈을 돌리고 싶어하는 사회의 ‘인비저블(invisible)’들에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주면서 감독은 ‘일본의 진짜 현실을 똑바로 보자’고 권하는 게 아닐까요. 칸 영화제 수상 이후 분게이슌주(文藝春秋)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단호히 말했습니다.


“(전통적인 가족관) 그 생각 자체를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하나로 단정 지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공권력이 ‘이런 가족을 목표로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입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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