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물 다리 너머 신비한 세상, 그 섬에 가고 싶다

[여행]by 중앙일보






때아닌 다리 전성시대다. 육지와 섬, 산과 산을 잇는 다리가 2018년 한국 관광의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흔들다리ㆍ출렁다리뿐 아니라 바닥이 유리로 된 ‘스카이워크’까지 방방곡곡의 자치단체가 온갖 모양의 다리를 지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냉정히 말해 요즘의 ‘다리 바람’은 과열 조심이 의심된다. 다리에서 찍은 기념사진 말고 딱히 남는 게 없어서이다. 다리 건너 더 좋은 세상을 숨겨 놓은 섬 두 곳을 소개한다. 경남 창원의 저도와 전남 강진의 가우도다. 두 섬 모두 다리만 구경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아직은 더 많다. 안타까운 마음에 남도 끝자락의 두 섬을 다녀왔다.



저도(?島).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돼지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는 경남 창원의 최남단 섬이다. 요즘의 저도는 문자 그대로 북새통이다. 지난해 3월 선보인 스카이워크 덕분이다. 창원시 구산면 구복리와 저도를 잇는 낡은 연륙교가 스카이워크로 탈바꿈하면서 저도는 전국 명소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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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는 작은 섬이다. 면적 2.2㎢, 주민 수는 95명에 불과하다. 저도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창원시청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다. 미시령옛길처럼 구불구불한 5번 국도를 한참 달려야 한다. 그런데도 저도 스카이워크 주차장은 늘 북적인다. 스카이워크 방문객은 주말 평균 4700명이 넘는다. 개장 초기인 지난해 봄에는 하루 1만3000명이 방문한 적도 있었다. 6월 15일 저도 스카이워크는 누적 방문객 100만 명을 넘었다.

저도 연륙교는 1987년 생겼다. 당시 섬 인구는 약 100명. 뭍이 지척이었지만, 다리가 없어 나룻배를 타야 했다. 5대째 저도에 살고 있다는 김정칠(80)씨가 “날마다 학교 가는 아이들이 고생하는 걸 더 볼 수 없었다”며 “저도 주민이 갹출해 2000만원을 모으고 마산시 도움을 받아 다리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길이 170m 폭 2m 남짓한 다리는 생각보다 수명이 짧았다. 애초에는 도보 다리로 만들었으나, 자동차도 다리를 건넜다. 다리 붕괴를 우려한 마산시가 2004년 연륙교 옆에 왕복 2차로 교량을 신설했다. 낡은 다리는 사람만 다니도록 했다. 한데 이 낡은 다리가 뒤늦게 주목을 받았다. 영화 속 다리와 닮았다 하여 ‘콰이강의 다리’라는 별칭이 붙었고, 드라마와 광고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이 늘었다. 그리고 지난해 낡은 다리는 개통 30년 만에 스카이워크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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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폭염 경보가 내린 지난 2일 스카이워크는 한산했다. 덧신을 신고 다리에 올랐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었고, 유리 바닥 15m 아래로 파도가 굽이쳤다. 창원시 이동순 문화관광해설사가 “강화유리 4장을 겹쳐 놓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켰지만, 다리 곳곳에서 난간을 붙든 채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스카이워크 방문객 가운데 일부만 저도에 들어간다. 대부분은 다리만 걸어보고 돌아간다. 하나 저도도 걷기에 좋은 섬이다. 근사한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비치로드’가 2010년 조성됐다. 비치로드는 3개 코스(6.5㎞)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를 끼고 걷다가 섬에서 제일 높은 용두산(203m)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그늘이 많아 여름에 걷기 좋다는 1코스(3.7㎞)를 걸었다. 일부 오르막길을 제외하면 걷는 내내 나무 사이로 맑은 바다가 보였다. 전망대에 오르니 마산만 너머로 거제와 통영 시내가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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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 섬을 빠져나왔다. 스카이워크는 낙조를 감상하는 관광객으로 붐볐다. 경남 고성 쪽으로 해가 넘어가면서 사위가 붉게 물들었다.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연륙교는 초록·분홍·보랏빛 조명으로 거푸 옷을 갈아입었다. 다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1970∼80년대 가요와 팝송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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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다산초당·백련사·월출산…. 전남 강진 하면 떠오르던 전통의 명소다. 목리 장어와 강진 한정식으로 강진을 기억하는 미식가도 계실 테다. 하나 시방 강진을 대표하는 장소는 따로 있다. 가우도. 다리 하나 놨더니 별안간 전국 명소로 변신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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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는 이른바 낙도다. 강진군청에서도 자동차로 30분이나 달려야 한다. 15㎞ 거리라지만, 강진 읍내에서 강진만 남쪽의 선착장까지는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다. 서쪽 망호 선착장도, 동쪽 저두 선착장도 마찬가지다. 섬 면적은 0.32㎢, 해안선 길이는 2.4㎞다. 섬을 한 바퀴 도는데 1∼2시간이면 족하다. 주민 수는 14가구 31명이다.

선착장부터는 걸어야 한다. 가우도에는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두 발로 걸어 긴 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가우도 출렁다리. 이름과 달리 다리는 출렁거리지는 않는다. 망호 쪽은 716m, 저두 쪽은 438m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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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는 2012년 다리가 놓였고, 2015년부터 소문이 퍼져 전국 명소로 거듭났다. 지난해만 90만 명이 섬에 들어왔다고 한다. 강진군청 강성남 주무관이 “주말에는 1만∼2만 명이 찾아와 다리에 긴 줄이 서곤 한다”고 덧붙였다. 가우도가 세상에 알려진 건 다리가 놓인 다음이지만, 가우도에 인파가 몰리는 건 다리 때문만은 아니다. 가우도에는 자동차가 없다. 매연과 소음도 없다. 가우도에 들면 시간이 느려진다.

가우도(駕牛島)라는 이름도 여느 섬처럼 바깥의 시선에서 비롯됐다. 섬이 소 등에 올리는 멍에[駕]처럼 생겼다고 한다. 내려다보면 영락없는 자라 꼴이다. 멍에를 닮았든, 자라를 닮았든 가우도 주민의 생업은 어업이다. 강진만 바다는 이름난 숭어 산지다. 황가오리·감성돔 같은 귀한 어종도 곧잘 잡힌다. 갯벌에는 개불·바지락·꼬막·굴이 흔하다. 바다는 늘 넉넉했으나 섬사람은 쪼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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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운영하는 매점에서 가우도 토박이라는 김동윤(71)씨를 만났다. 그는 읍내에 나간 아들을 대신해 매점을 지킨다고 했다. “섬이 유명해져 좋겠다”고 운을 떼니 “외지 사람들이 고사리를 다 캐 간다”고 투덜댔다. “벌이는 나아지지 않았느냐” 물었더니 “아들이 매점 수입으로 용돈을 준다”며 배시시 웃었다.

여행자의 시선에서 말하면, 섬은 자체로 야트막한 산이다. 산에 나무가 울창하다. 후박나무가 유난히 많은데, 사철 푸른 나무가 물고기를 부른다고 한다. 이름하여 ‘어부림’이다. 해안 탐방로에는 데크로드가, 산을 넘는 오솔길에는 야자 매트가 깔렸다. 산꼭대기에 거대한 청자 타워가 서 있다. 강진의 명물 청자를 본뜬 전망대이자 짚트랙 승강장이다. 짚트랙은 바다 건너 저두 선착장까지 이어진다. 973m 바닷길을 눈 깜짝할 사이에 건넌다. 섬에서 시간이 빨라지는 유일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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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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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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