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의 인간혁명]서양·일본에도 저승차사? 영생을 꿈꾸는 인간들

생명·나노 공학, 백세인생 눈앞

칼리코 ‘수명 500세’ 프로젝트도

하라리 “‘불멸’을 향한 신의 길로”

초장수 사회, 혼란·갈등 커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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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는 죽음 이후 저승에서 심판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1편과 더불어 2편도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가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죠. 주인공은 세 명의 저승차사입니다. 이들은 1000년 동안 죽은 이들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며 환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승차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일본에선 ‘시니가미(しにがみ)’라는 사신(死神)이 인간의 죽음을 관장하죠. 영화 ‘데스노트’에서 나오는 것처럼 인간보다 덩치가 몇 배 크고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명부를 들고 다니며 거기에 적힌 사람들을 저승으로 데려가죠.


서양문화에선 ‘grim reaper’라는 죽음의 신이 있습니다. ‘grim’은 오싹하고 음침하다는 뜻이고 ‘reaper’는 수확물을 거둬가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사람의 영혼을 거둬간다는 뜻이죠. 영화나 그림 속에선 종종 긴 망토를 걸치고 큰 낫을 든 해골로 나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나라에 생김새는 다르지만 저승차사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는 죽음이 단지 소멸과 끝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나라의 신화와 종교에선 죽음 이후의 새로운 영적 세계가 존재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유사 이래 인간은 죽음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신의 뜻’으로 여겼다”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물질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세계를 설정하고 신봉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인간의 죽음은 이런 ‘형이상학적 의미’를 벗어던질 가능성이 큽니다. 죽음이 신의 뜻이 아니라 점점 기술의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0~200년 동안 인간의 기대수명은 2배 이상으로 늘었지만 진짜 ‘생명연장의 꿈’은 이제부터입니다.


현실이 된 생명연장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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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엘리자베스 블랙번 박사는 ‘텔로미어(telomere)’ 연구로 2009년 노벨의학상을 받았습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에 있는 유전자 조각을 말하는데 세포 분열 때마다 그 길이가 짧아집니다. 계속 짧아지다 노화점을 지나면 그 때부터 세포는 늙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소멸하죠.

블랙번 박사는 “텔로미어가 줄지 않으면 세포는 늙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때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걸 막는 효소가 바로 텔로머라아제입니다. 블랙번 박사는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아제의 역할을 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죠.


2010년 미국에선 텔로머라아제를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실험이 성공합니다. 하버드 의대 로널드 드피뇨 박사 연구팀은 나이 든 생쥐에 텔로머라아제를 투여하고 몇 주간 관찰했습니다. 놀랍게도 생쥐는 털 색깔이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고 작아졌던 뇌의 크기도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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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는 주인공이 4개 나라를 모험 하는 이야기다. 걸리버가 만난 스트럴드브러그 인종은 죽지 않고 영생을 하지만 매우 비참한 삶을 산다. [영화 ‘걸리버 여행기’ 캡처]

최근에는 노화를 인위적으로 막는 약제도 개발됐습니다. 바로 ‘현대판 불로초’라 불리는 ‘라파마이신’입니다. 이는 세포가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도록 해 성장을 멈추고 노화를 억제합니다. 미국 워싱턴대 매트 케블라인 박사는 2016년 실험을 통해 이를 입증했습니다. 20개월 된 생쥐(사람으로 치면 60세)를 두 그룹으로 나눠 관찰했는데, 이중 90일간 라파마이신을 투여한 생쥐는 사람 나이로 최대 140세까지 생존했습니다.

나노기술과 로봇공학도 인간을 불멸의 삶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로봇을 몸속에 삽입해 암세포 등을 죽이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죠. 전기의수를 팔의 절단면에 연결해 자유롭게 관절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됐습니다. 최근엔 국내의 스타트업 만드로가 수천만원에 달하는 전기의수를 3D프린터로 찍어내 150만~200만원대로 가격을 대폭 낮췄습니다.


죽음은 기술결정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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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인공 장기와 배아복제를 활용해 신체기관 이식이 활성화되면 머지않아 인류는 불치병도 정복할 겁니다.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한 20대 청년이 전신 마비가 됐는데, 그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투여한 후 움직일 수 있게 됐습니다.

이처럼 생명연장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죽음 해결’을 목표로 삼는 회사가 있을 정도니까요. 바로 2013년 설립된 구글의 자회사 칼리코입니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만든 칼리코는 노화의 원인을 찾아내 인간의 수명을 500세까지 연장하려고 합니다. 구글벤처스의 빌 마리스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래 인간이 500살까지 사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라고 했죠.


이제 죽음은 신이 정한 어느 날 차사가 내려와 영혼을 데려가는 게 아니라 고장 난 전자제품을 고치는 것과 같은 물질적인 문제가 돼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영혼도 과학에선 형이상학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단지 뇌의 화학작용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명이 연장되는 것이 꼭 좋은 일이기만 할까요?


생명연장 시대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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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의 끝은 죽음이다. 현대 과학은 노화를 늦춰 생명을 연장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수명이 백세를 훌쩍 넘는 ‘초장수’ 기술이 완성된다 해도 이런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한정될 것입니다. 부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오래 살 수 있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죠.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자와 빈자도 죽음 앞에서만큼은 공평하다는 오랜 믿음이 깨지고 ‘수명 양극화’ 현상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래 살게 된 사람들도 여러 고민에 빠질 수 있습니다. 먼저 일의 방식이 달라져 지금처럼 60세 은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의무교육도 지금은 초중고교생 등 미성년이 주요 대상이지만 미래엔 평생교육, 또는 노년교육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공적 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는 나이도 상향돼야 할 것이며, 각종 복지제도 역시 손봐야 합니다. 법률은 어떨까요? 평균 80~90세까지 산다는 전제에서의 무기징역과 150세 시대의 무기징역은 의미가 다르지 않을까요?


이처럼 우리는 지금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문제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생명연장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초장수 사회의 윤리와 제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미리 고민해야할 이유죠.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는 ‘스트럴드브러그(struldpugs)’라는 죽지 않는 인간들이 나옵니다. 처음 걸리버는 이들이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에 더욱 현명하고 지혜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영생과 불멸은 이들을 더욱 탐욕스럽고 오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삶의 경험이 많다고 해서, 생물학적으로 나이만 든다고 해서 저절로 시민의 교양과 지혜가 길러지는 것은 아니란 이야기죠. 과연 우리는 100년이 넘는 삶을 살게 됐을 때 새롭게 생겨나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만큼 지혜를 갖출 수 있을까요?


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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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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