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뮤지컬의 '원톱' 무대 디자이너 오필영

[컬처]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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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뮤지컬 무대는 오필영(37) 디자이너의 독무대다. 그가 무대 디자이너로 참여한 작품의 제목을 대는 것만으로도 숨 가쁠 정도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웃는 남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광화문 연가’ ‘햄릿:얼라이브’ ‘무한동력’ 등 다섯 편에 이른다. 또 창작 뮤지컬 ‘신흥무관학교’(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가 이달 9일 첫 선을 보이고, 2016년 무대를 완전히 새로 바꾼 ‘지킬 앤 하이드’(샤롯데씨어터)가 11월부터 다시 공연한다. 2009년 ‘지킬 앤 하이드’ 내한 공연으로 대극장 뮤지컬에 데뷔한 이후 채 10년이 되지 않아 국내 공연계의 ‘원톱’ 무대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특히 지난 7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웃는 남자’는 그의 무대 디자인 인생에 이정표가 될 만하다. 총 제작비 175억원을 들인 창작 초연 뮤지컬 ‘웃는 남자’는 공연 한 달여 만에 관객 수 10만 명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웅장한 볼거리로 관객을 압도하는 무대가 ‘웃는 남자’ 성공의 첫째 요인으로 꼽힌다. ‘웃는 남자’는 지난달 26일 예술의전당 공연을 마무리 짓고 오는 5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다시 공연을 시작한다. 새로 무대 설치 작업을 하고 있는 그를 지난달 28일 블루스퀘어로 찾아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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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웃는 남자’ 무대가 공연계의 화제다. 제작과정이 특별했나.


A :

“준비 기간이 길었다. 대본과 음악이 모두 완성된 상태에서 2년 6개월 동안 무대 디자인을 준비했다. 현재 많은 창작 뮤지컬 제작환경이 그렇지 못하다. ‘웃는 남자’는 음악의 작은 악기 소리까지 다 외울 정도로 들어가며 장면을 구상했다. 준비 기간이 긴 만큼 무대ㆍ조명ㆍ영상 디자이너들 사이의 협업이 잘 됐고, 그 덕분에 무대를 통해 관객들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또 예술의전당에 들어가기 전 하남예술회관을 두 차례 대관해 무대 테스트를 해봤다. 제작사가 큰 투자를 한 셈이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웃는 남자’는 빈부 격차가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이 배경이다. 인신매매단에 의해 입이 찢기는 바람에 평생을 웃는 표정 광대로 살아가야 하는 그윈플렌(박효신ㆍ박강현ㆍ수호)의 인생 여정을 그리며 불평등과 차별 등의 사회문제를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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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어디에 초점을 맞춰 무대 디자인을 했나.


A :

“ ‘웃는 남자’는 이야기가 너무나 명확하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대립을 그린 작품이다. 둘의 공통점은 상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는 자신이 가진 상처를 드러내고 이를 서로 보듬어주지만, 부유한 자는 어떻게든 상처를 가리려고 한다. 그 상처를 마치 나뭇가지가 얼기설기 얽힌 듯한 모양의 아치형 세트로 형상화해 모든 장면에 집어넣었다. 가난한 자들의 세계는 그 ‘상처 세트’가 보이면서도 따뜻하게 표현했고, 부유한 귀족의 세계는 강렬한 색깔과 장식들로 ‘상처 세트’를 숨기면서 ‘낯설게 화려한’ 무대로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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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무대가 화려하다 보니 “너무 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A :

“내 개인적인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채우는 무대보다 비우는 무대를 좋아한다. 하지만 공연 무대는 보여줘야 할 대상이 분명하다. 바로 관객이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기대하는 것에 맞춰야 한다. 우리나라 뮤지컬 관객들은 화려한 무대를 선호한다. 그 취향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는 남자’의 무대는 해외 투어도 염두에 뒀다. 미국 브로드웨이 극장 규모에 맞춰 세트 크기를 줄였고, 자동화 장치도 최소화했다. 여왕이 리프트를 타고 무대 밑에서 올라오는 장면 하나만 빼고 모두 수동으로 무대 세트를 움직인다. ‘웃는 남자’는 지난 7월 개막 직후 일본 공연제작사 도호와 라이선스 공연 계약을 했다. 내년 4월엔 도쿄 닛세이 극장에 그가 디자인한 무대가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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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처음부터 무대 디자이너를 꿈꿨나.


A :

“아니다. 배우가 되고 싶었다. 연기도 못하진 않았다. ‘무대’는 대학 재학 시절 선배들이 ‘덩치가 좋으니 무대 제작 크루를 하라’고 해서 시작했다. 그런데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제작 크루가 할 일이 없었다. 그때 ‘놀면 뭐하냐’는 권용 교수님의 권유로 무대 디자인을 배웠는데 너무 새롭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캐스팅되길 기다려야 하는 배우의 스트레스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 진로를 바꿨다. 무대 디자인을 집중적으로 배운 건 2007년 미국 뉴욕대(NYU)로 유학을 가서다.“

그는 NYU의 교육 방식에 잘 맞았다. “선생님이 지시하고 가르쳐주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끄집어내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그래서 저마다 자신만의 표현을 할 수 있게 된다”면서 “예술은 모두가 똑같아지는 순간 재미없어지지 않냐”고 되물었다.




Q :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A :

“대본을 읽고 작품의 이야기가 무엇인지부터 살핀다. 큰 이야기가 없으면 작업을 맡지 않는 편이다. 에피소드 나열식인 작품에는 마음이 안 간다.”


Q : ‘오필영표 무대’의 특징이 있다면.


A :

“ 나만의 시그니처? 그런 거 필요 없다. 나는 각 작품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만 집중한다. 작품마다 다른 걸 찾아 다르게 표현해야 한다. 무대 디자인의 역할은 작품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다. 작품이 보이는 디자이너가 되려고 한다. 디자이너가 보이는 작품이어서는 안된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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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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