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의 레저터치] 인증샷 여행, 너무 뜨겁거나 너무 가볍거나

[여행]b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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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이란 무엇인가? 볼 관(觀)에 빛 광(光) 자, 빛 광 자는 영어로 플래시다. 관광이란 그저 사진 찍힐 곳이 많으면 되는 거다. 시간이 없어서 다 못 찍고 돌아갔다가 다음에 다시 오면 역시 재방문이다.’


남이섬 강우현 전 대표가 10년쯤 전 낸 『강우현의 상상망치』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때만 해도 참신하다고 생각했었다. 남이섬은 겨울에 눈이 없으면 밤새 물을 뿌려 고드름을 만들었다. 주렁주렁 걸린 고드름 앞에서 동남아 관광객은 연신 기념사진을 찍었다. 남이섬이 파는 건 겨울이 아니라, 겨울 기분이 나는 사진이라는 걸 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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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전남 순천의 드라마세트장에서도 기념사진의 위력을 실감했다. 2006년 개장한 드라마세트장은 순천시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한류 명소를 기대하고 투자했지만, 세트장은 적자에 허덕였다. 2014년 옛날 교복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개시했는데, 이듬해부터 젊은 방문객이 확 늘었다. 처음에는 순천시도 영문을 몰랐다. 왜 전국의 젊은이가 순천까지 내려와 교복 빌려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지 순천시 공무원들은 한동안 이해하지 못한 채 직원을 늘리고 주차장을 넓혔다.


원인은 인스타그램이었다. 2015년 봄 누군가가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린 게 화제가 됐고, 전국의 젊은이가 그 인증샷을 목표로 꾸역꾸역 찾아왔다. 2016년 봄 세트장에서 만난 군인 4명이 아직도 기억난다. 휴가 때 어디를 갈까 검색하다 순천 세트장 인증샷이 가장 핫하다는 걸 알고 경남 김해에서 찾아왔다고 했다. 생애 첫 순천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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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일 전엔 ‘부산의 인스타 명소’를 찾아다녔다. 이번 여행은 느낌이 달랐다. 부산의 대표 인증샷 명소라는 기장의 한 카페에서 나는 솔직히 당황했다. 이 일대는 원래 관광과 무관한 지역이었다.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지척에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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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고, 해안 언덕에 자리해 전망도 빼어나다. 주말이면 카페 앞에 긴 줄이 서고, SNS에서 30만 건 가까운 게시물이 검색되는 까닭이다. 카페 하나가 관광 소외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해야 하는 걸까. 인스타그램에서 원자력발전소는 애초부터 무시되거나 고의로 배제된다. ‘인생샷’ 타령만 검색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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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부산에서 가장 핫한 사찰은 천 년 사찰 범어사가 아니다. 해동용궁사다. 갯바위 자락에 걸터앉은 모습이 이채로워 인증샷 명소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해동용궁사는 SNS의 해설처럼 전국 3대 관음사찰이 아니다. 조계종이 꼽은 ‘33관음성지’에서도 빠져 있다. 사진에 예쁘게 나오면 없던 신통력도 생기는 걸까.


그러고 보니 SNS에서 검색되는 소위 맛집은 하나같이 음식이 예쁜, 정확히 말하면 음식 사진이 잘 나오는 식당이다. 이 중에서 상당수가 이른바 SNS 마케팅 업체의 작업 결과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여행문화도 바꾸는 것인가. 남이섬의 고드름과 부산의 인스타 명소는 똑같이 사진 속 배경으로 소비되지만, 전혀 다른 성질의 관광 콘텐트다. 인증샷 열풍이 시대 흐름이라면 관광 당국도 콘텐트의 의미를 살리려고 목맬 이유가 없다. 기념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는 게 관광이라지만, 씁쓸한 기분은 가시지 않는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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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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