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간 박미선 “뭔가 저지를 시간 이제 많지 않다”

[컬처]by 중앙일보

연극 ‘홈쇼핑 주식회사’ 내달 개막

연예인 출신 쇼호스트 역할 맡아

“ TV서 개그우먼 설 자리 적어져”

데뷔 30년 동안 딱 두 달만 쉬어

“일 없어 공허해지는 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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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 박미선(51)이 대학로 연극 무대에 선다. 다음달 14일 서울 혜화동 굿씨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홈쇼핑 주식회사’에서 연예인 출신 쇼호스트 신데라 역을 맡았다. 2003년 ‘달님은 이쁘기도 하셔라’ 에 이은 두 번째 연극 출연이다. ‘개그콘서트’ ‘폭소클럽’ 등을 쓴 코미디 작가 김은미·최영주가 공동으로 극본·연출을 맡은 ‘홈쇼핑 주식회사’는 ‘웃음 버라이어티쇼’를 표방하는 연극이다. 개그우먼 김영희·권진영 등도 함께 출연해 쇼호스트들이 벌이는 ‘완판녀’ 경쟁을 코믹하게 풀어낸다. 22일 서울 서교동 연습실서 만난 그는 방송에서 보이는 성실한 모습 그대로였다. 연습 중간 쉬는 시간에도 혼자 거울을 보며 춤 동작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하루가 너무 빨리 간다. 아까워 죽겠다”고 했다.


Q : 15년 만의 연극 출연이다. 어떤 계기로 도전하게 됐나.




A : “김은미·최영주 두 작가는 예능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친구들이다. 이들의 역량을 믿고 대본도 보지 않고 결정했다. 마치 뭐에 씐 듯 저질러 버렸다. 이제 18년 뒤면 나이 70이다. 뭔가를 저질러 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말고 해보자는 마음이다.”


최근에 그가 저지른 일은 여럿이다. 18세 이상 여성 관객만 관람 가능한 개그토크콘서트 ‘여탕쇼’를 제작해 지난 4일 춘천에서 첫 공연을 했다. 그는 “앞으로 전국을 다니며 공연할 계획”이라며 “‘여탕쇼’와 ‘홈쇼핑 주식회사’를 한꺼번에 준비하느라 몸은 좀 고됐지만, 덕분에 갱년기도 잊고 산다”고 말했다. 1주일 전 머리를 탈색해 ‘금발’로 변신한 것도 그가 평생 처음 해본 일이다. 그는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반응이 꽤 괜찮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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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1988년 MBC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한 이후, 줄곧 방송일을 했다. 활동 영역을 넓히는 건가.




A : “방송에서 개그우먼들이 설 무대가 많지 않다. 공연은 후배 개그우먼들이 이미 개척해놓은 방송 이외의 활동 무대다. 2012년부터 대학로에서 ‘드립걸즈’라는 공연을 하고 있다. ‘홈쇼핑 주식회사’에 함께 출연하는 김영희·홍현희·김나희도 ‘드립걸즈’ 출신이다. 후배들이 먼저 도전한 일에 나도 동참해 나이 들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또 이번 작품이 성공해 시즌 공연으로 이어지면 후배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자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게 아니겠나.”




Q : 방송이 여성에게 더 좁은 문인가.




A : “남성 진행자들로만 구성된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선 여성 출연자가 있으면 화장실 문제 등 신경쓸 일이 많아 피곤하다고 섭외를 꺼린다. 개그우먼에게는 기회가 적을뿐더러 소비되는 이미지가 천편일률적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 ‘주책맞은 아줌마’가 돼야하고, 결혼을 하고 나면 남편 험담을 해야 화제가 된다. 나 역시 남편(이봉원)의 사업 실패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방송마다 요구해 반복하다보니 이미지가 왜곡됐다. 잘못됐구나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사업에 실패했던 일은 사실이지만 남편은 언제나 도전하는 자세로 내게 자극을 주는 사람이다.”


그는 “데뷔 이후 30년 동안 딱 두 달 쉬었다”고 했다. “첫째 낳고 한 달, 둘째 낳고 한 달 쉬고 계속 방송을 했다”는 것이다. ‘코미디 전망대’ ‘개그콘서트’ ‘해피투게더’ 등 예능 프로그램뿐 아니라, 시사·교양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까칠남녀’,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 ‘골뱅이’, 드라마 ‘황금신부’ ‘돌아와요 순애씨’ 등에서 그는 제 몫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소화해냈다. 특히 재치있으면서도 편안한 진행이 그의 무기였다. 하지만 트렌드가 급변하고 부침이 심한 방송계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녹록한 일이었을리 없다. 이번 연극 ‘홈쇼핑 주식회사’에서 그는 냉정한 방송계의 현실을 주인공 신데라의 입을 빌어 털어놓는다. “필요할 땐 막 찾다가 단물 빠지니 아무도 안 부르네. 인간들 참…”이란 대사를 통해서다.




Q : 장르를 넘나들며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 “살아남으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살아남은 것 같다. 그냥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했다. 쉬지 않아서 감각을 잃지 않은 덕도 크다. MC를 하면서는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려고 했다. 방송에서 편집될 게 뻔한 상황에서도 들어주고 리액션을 해줘야 출연자들이 상처받지 않는다.”




Q : 슬럼프는 없었나.




A : “30년 방송 생활에서 기복이 없진 않았다. 특히 2014, 2015년 ‘세바퀴’와 ‘해피투게더’에서 연이어 하차 통보를 받았을 땐 많이 흔들렸다. ‘나는 문제없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밀렸지?’란 마음이 들면서 자존감이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곧 그게 내 자만심이란 걸 깨닫고 많이 반성했다. 대중이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물러나겠다고 말했으면서 진짜 마음은 안 그랬던 거다.”




Q : 쉬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A : “죽으면 영원히 쉴 텐데 일을 쉬고 싶진 않다. 잘 때 쉬고, 이동할 때 쉬면 된다. 일이 주어지는 게 행복하고, 일이 없어 공허해지는 게 두렵다. 건강할 때 진짜 열심히 살 생각이다. 개인방송 프로그램도 기획해보고 싶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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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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