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英 집단폭행 유학생 "한국도 영국도 보호해주지 않아"

[이슈]by 중앙일보

신고 후 1시간 지나도 안온 경찰, 여전히 연락 없어

인파 넘쳤지만 안 도와주고 휴대폰으로 찍기만

SNS에 글 올리자 피해 봤다는 아시아 여성 글 쇄도


영국 캔터베리대 재학생 한국인 A양이 15일(현지시간) 자신의 SNS에 런던 한복판 번화가에서 영국인으로 추정되는 10대 예닐곱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11일 오후 5시 50분쯤 런던 옥스퍼드 서커스역 인근 대로변에서 15세 가량의 흑인 여성 및 백인 남성 등으로부터 발길로 차이고 머리를 세게 얻어맞았다는 내용이다. A양은 관광객으로 넘치는 도로였지만 즉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휴대전화로 사진 등을 찍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A양은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으로 치면 강남 한복판에서 여성을 집단 구타한 사건인데, 영국 경찰은 신고 후 1시간이 넘도록 현장에 나타나지 않더니 아직도 연락이 없다”며 “주영 한국대사관도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고 영국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아 절망적인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SNS에 피해를 보았다는 글을 올렸더니 특히 아시아 여성들로부터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반응이 많이 왔다”며 “이런 종류의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앙일보

A양이 SNS에 올린 글 [연합뉴스]

- 옥스퍼드 서커스역 인근은 대표 쇼핑가이자 인파로 붐비는 데 어떤 일이 있었나.


“친구와 교회에 갔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귀가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누군가 머리에 쓰레기 같은 것을 던지더라. 잠시 낙엽인가 생각했는데, 강도가 너무 셌다. 뒤를 보니 예닐곱명 애들이길래 그냥 계속 걸었다. 그런데 따라오며 또 머리에 던지더라. 그만 하라고 했더니 웃으며 ‘영어를 할 줄 안다’고 수군대더라. 무시하고 걸어가려 하자 흑인 여자애가 내 팔을 잡더니 ‘괜찮냐’고 물으며 쓰레기를 또 던졌다. 화가 나서 갖고 있던 아이스크림 컵을 던졌더니 나를 아예 바닥에 밀친 후 우르르 달려들어 때리더라. 뺨을 맞아 턱이 부은 상태다.”


- 가해자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보나.


“그게 정말 궁금하다. 런던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도시인데 그런 곳에서 ‘영어 할 줄 아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인종 차별이다. 나를 구타한 흑인 여자애 한 명은 덩치가 컸다. 180cm가 넘는 키의 백인 남자애가 매우 세게 내 머리를 때린 게 기억난다. 사건 이후 구토와 함께 쇼크가 와 앰뷸런스를 불렀다. 의료진이 신체 상해는 혹이 나고 턱이 부은 것, 타박상 등이라고 했지만 트라우마가 올 수 있으니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더라.”


- 인파가 몰리는 곳인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나.


“거리에 당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머리를 계속 맞고 있어서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다가 내 앞에 있던 아랍계 남성 한 명과 흑백 혼혈인 남성 한 명이 가해자들에게 그만두라고 해줬다. 그런데도 백인 남자애가 뒤로 돌아와 내 머리를 때리고 흑인 여자애도 가는 듯하더니 다시 와 때렸다. 경찰에 신고해준 남성분이 ‘어떻게 사람들이 아무도 안 도와주고 사진만 찍고 있을 수 있느냐. 길 건너편에 있다가 일이 크게 번지는 것 같아 뛰어왔다’고 하더라. 자기도 국적은 영국인데 외모 때문에 인종 차별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라.”


- 경찰은 신고를 받고 뭐라던가.


“네 번 정도 전화할 때마다 어떤 상황이냐, 어디냐를 물어보더니 ‘바빠서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지금 (출동할 경찰차 등을) 찾아보고 있는 데 오래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결국 1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경찰차 2대가 옆을 지나갔는데 다른 쪽으로 가더라.”


- 영국 정부나 영국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영국에는 많은 민족이 살고 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무차별 폭행을 당하거나 ‘너희 나라로 꺼지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런 외국인이 모두 공부하고 일도 하는데 한꺼번에 모국으로 돌아가면 영국은 없을 것이다. 자기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자기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으니 도와주지도 않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이런 것을 바꾸려고 심각하게 노력했으면 좋겠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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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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