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르네 라리끄가 되고 싶은 칠보공예가

[컬처]by 중앙일보






르네 라리끄의 오팔 에나멜 브로치. [사진 핀터레스트]

르네 라리끄(1860~1945)는 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시대의 프랑스 주얼리 공예가이다. 그의 작품은 주로 유리, 은, 에나멜, 금, 진주 등을 사용하면서도 고급스럽고 감각이 돋보였다. 지금도 그의 작품은 경매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기록하며 전 세계 컬렉터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르누보 시대(1875~1919)에는 기계로 만든 것은 거부하고 수공예에 집중하며 자연은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식물적 요소를 많이 사용해서 질적인 면을 추구하였다. 특히 이 시기는 장인정신을 추구하는 가치에 꽃·나비·잠자리 등을 이용해 다양한 장신구를 디자인했다. 자수정·오팔·동·조개 등을 주로 사용해 에나멜과 은을 이용한 장신구를 많이 제작했다.


아르데코 시대(1920~1939)에는 디자인을 가장 중시했으며, 까르티에·부쉐롱·반 클리프 앤 아펠·티파니 등 오늘날 명품 보석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시대다. 주로 사용한 주얼리 재료는 금·다이아몬드·진주 등이다.


아르누보 시대 르네 라리끄 작품과 20세기 초에 제작된 티파니의 에나멜(=칠보) 작품을 잇는 칠보 장신구 장인이 한국에도 있다. 40살에 뒤늦게 취미로 시작해 지금까지 23년 동안 지치지 않는 칠보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무장한 장인. 오늘날 칠보 장신구가 르네 라리끄 작품의 가치처럼 인정받길 원하고, 무한한 칠보기법의 다양성을 알리고 싶은 김인자(63)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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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는 영어로 ‘enameling’ 혹은 ‘cloisonne’라고 부르며, 한자는 ‘七寶’다. 일곱 가지 보물과 같은 색상이 난다 하여 칠보라 불렸고, 정확히는 금속 등의 재료에 유리질을 녹여 붙이는 과정을 거쳐 아름답고 귀한 색상의 보배로운 물건을 만드는 공예기법이다.


바탕 금속 위 혹은 테두리가 형성된 금속 내부에 유리질의 유약을 올린 후 이를 칠보 가마에 넣고 약 700~900도의 고온으로 열처리해 바탕 금속 혹은 테두리가 형성된 금속 내부에 고착하는 것을 말한다. 고온의 열처리를 통해 색깔 유약이 여러 가지 색을 발하며 우연히 발생하는 독특한 느낌을 통해 다양한 표현을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한국 칠보의 역사는 통일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 이르러 더욱 발달했다. 한국의 칠보 기술은 불교 문화와 함께 중국으로부터 전래 되었는데,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7세기경으로 추정되는 평양근교의 유적과 금강사지에서 녹색 칠보 은제 장식이, 8세기경으로 추정되는 경주 분황사지탑에서 녹색 칠보 은제 침통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이미 오래전부터 칠보를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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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는 초기에는 파란색 한 가지 색으로 ‘파란’으로 불렸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황색, 감색, 파랑과 녹색의 중간색인 벽색, 보라색 계열의 가지색 등 네 가지로 발전했다. 파란이라는 한정된 색상을 사용하던 기법에서 점차 발전을 거듭하며 파란이라는 명칭보다 다채로운 색을 낸다는 칠보라는 명칭으로 바뀐 것이다.


초기 한정된 파란색을 사용하는 기법에서는 지금처럼 고온에서 처리할 수 있는 유약이나 전기로가 없이 장작불 등 어떤 불에도 녹여 붙일 수 있어야 했으므로, 아주 저온에서 녹는 유약으로 장신구, 생활용품 등의 작은 부분에만 파란을 입혔다. 조선 시대의 파란으로 색을 표현한 장신구로는 비녀와 떨잠, 노리개 등이 있다.


오늘날 현대 칠보는 1960년대 말에 김기련, 이방자 여사와 같은 독일과 일본에서 배우고 돌아온 분들에 의해 칠보 유약의 개발, 교육 등 본격적으로 보급·발전됐다. 이 시기의 칠보는 다양한 색상과 양질의 유약을 바탕으로 재료와 기법, 개념이 모두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특히 칠보는 상품, 취미, 예술이라는 다양한 측면에서 관심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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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비녀. 2013년 미국 ‘사울 벨(Saul Bell) 디자인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출품 작품명은 'a summer dream(한여름의 꿈)' [사진 이정은]

1970~80년대에는 칠보 은 식기가 특히 유행하면서 예물에 은 식기와 노리개 가락지가 필수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저화도에 쉽게 구워낼 수 있는 모조 칠보 유약이 개발되면서 이를 활용한 저가의 칠보 상품이 등장해 1980년대 중반 이후 고귀한 칠보의 위상이 오해를 받고 쇠퇴하게 되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수출 전략이 기술 집약적인 중공업 제품들로 변화하게 되면서, 수출상품으로서 공예품의 가치가 떨어졌다.


김인자 장인(63)은 가정주부로 살다가 1995년 문화센터에서 접한 칠보 취미반을 시작으로 2000년에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의 칠보 장인 우에에다의 칠보에 반해 본격적으로 칠보를 업으로 삼았다. 2005년 그 장인에게 직접 가서 7년 동안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사사 받았다.


2010년 금속 밑판과 테두리가 없는 칠보 제조방법으로 특허를 받았다. 2013년 미국 ‘사울 벨(Saul Bell) 디자인 대회’에서 칠보 주얼리로 대상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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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인은 평생 연구만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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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는 고온의 열처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작업의 특성으로 ‘불의 예술’이라고도 불린다. 광택과 반사율, 굴절률 등이 우수해 색채가 매우 아름답고 색상표현이 자유롭다. 잘 부식되거나 마모되지 않으며 지속하는 보존성을 지니고 있다. 칠보는 같은 색상의 유약이라 하더라도 구워내는 과정이나 바탕 재료의 종류에 따라 색상이 다르므로 그 재료의 열팽창률, 수축률, 녹는 온도 등의 특성을 잘 활용하면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


은퇴 이후 혹은 칠보를 취미에서 업으로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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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채율 대표 je@chey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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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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