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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폴인 인사이트

[폴인인사이트] 잘나가던 남성복 디자이너, 재고 의류 살리기에 나선 이유는

by중앙일보








다가올 미래, 임기응변식 비즈니스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중요한 순간 깊이에서 차이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에 깊이를 더하려면 장기적 관점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일의 미래’을 이야기하는 지식 플랫폼 폴인(fol:in)에서는 확고한 철학으로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임팩트 비즈니스에 주목했습니다. 12월, 폴인에서 준비한 콘퍼런스 <임팩트 : 진짜 강한 비즈니스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 7월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자국의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2017년 420억원 규모의 재고를 불태웠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방송이 나간 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버버리는 재고 소각 중단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패션계의 재고 소각은 오래전부터 문제로 제기된 사안이다. 제때 팔리지 못한 제품들이 창고에 쌓여 있다가 3년 정도가 지나면 소각장으로 옮겨진다. 재고를 불태우는 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기업에도 상당한 비용 부담을 안긴다. 환경단체와 기업 모두 지속가능한 패션을 고민하는 이유다.


BBC의 보도가 나오기 한 달 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논의하는 안티 패션(Anti-Fashion) 콘퍼런스가 열렸다. 패션 업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의 한 기업인이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6년째 국내에서 업사이클링(UP-Cycling) 브랜드를 이끄는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부문 한경애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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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무는 1세대 남성복 디자이너다. 2006년 선보인 남성복 편집 브랜드 시리즈(series;)가 대표작이다. 이후 코오롱의 남성복 브랜드를 총괄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녀는 "디자이너로서 커리어의 마무리를 고민하던 중 한 번도 입혀지지 못하고 소각되는 옷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코오롱은 20여 개 브랜드에서 나오는 재고 소각에만 수십억 원이 들었다. 해결책이 필요했다. 한 전무 또한 자신이 만든 옷이 소각되고, 그것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012년 런칭한 브랜드 래;코드(이하 래코드)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래코드는 소각 예정인 재고들을 해체한 뒤 원단을 재조합해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Upcycling·재활용품으로 새 제품을 만드는 것) 브랜드다. 발달 장애인을 고용해 재고를 해체하고, 독립 디자이너와 협업해 디자인을 개발한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재봉사들과 계약해 일감을 주고, 수익금으로 미혼모와 새터민에게 재봉을 가르쳐 자활을 돕는다. 생산 과정에서 제품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한 패션이라는 과제를 일부분 해결했다.


한 전무는 안티 패션 콘퍼런스의 책임자가 찾아와 "래코드는 지속가능한 패션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솔루션을 모두 갖춘 브랜드"라고 말하는 순간, 래코드가 미래의 패션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한경애 전무는 19일 서울 종로 스페이시즈(SPACES) 그랑 서울에서 열리는 < 임팩트 : 진짜 강한 비즈니스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에 연사로 나서 래코드가 걸어온 길과 그들이 만드는 임팩트 비즈니스의 비전을 이야기한다. 지난 달 30일, 한 전무와 만나 래코드와 임팩트 비즈니스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1년 뒤 래코드가 어떤 일을 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사회에 미치게 될 영향, 비즈니스로서의 잠재력은 뚜렷이 그리고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RE;CODE라는 이름은 어떤 뜻인가


A : Re; 는 생각의 전환을 기반으로 재해석된 디자인, Code는 환경과 나눔의 가치를 공유하는 패션을 넘어선 문화를 의미한다. 사회적 약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소비 그 이상의 가치를 래;코드한다는 뜻으로 지었다.




Q : 대기업에서 이런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A : 이제는 기업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가 어려워진다. 옷을 쉽게 만들고 버리는 시대에 진실한 마음으로 솔루션을 찾아 나선 거다. 기업이 해결해야 한다. 비즈니스로.




Q : 론칭한 지 6년이 지났는데도 규모가 크지 않다


A : 억지로 규모를 키우는 대신 우리의 철학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진심을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이 한다고 처음부터 덩치를 키우고 매출에 집착하게 되면 우리의 철학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것이다. 만약 매출만 생각했다면 쉬운 길도 있었다. 제품을 많이 만들어서 싸게 팔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아서다.




Q : 어째서인가


A : 우리는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재고가 많아도 쓸 수 있는 옷이 제한적이다. 래코드는 재고가 생기면 안 된다. 죽기 직전의 옷을 살려서 만드는 건데 또 재고가 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살릴 수 있는 재고를 골라서 좋은 옷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가치소비를 강조해도 예쁘지 않으면, 품질이 좋지 않으면 안 팔린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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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렇다면 실제로 되살려내는 재고는 많지 않은 건가


A : 우리 회사 옷만 놓고 보면 그렇다. 하지만 옷 말고도 폐기되는 군용 제품이나 자동차 에어백 등 되살릴 수 있는 재료가 많기 때문에 비즈니스적으로는 얼마든지 성장 가능성이 있다. 래코드는 플랫폼 비즈니스다. 우리가 솔루션을 만들고, 재고를 가진 기업이 우리와 협업하는 식의 모델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생각한다.




Q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A : 처음 래코드를 만들 때 팀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재고를 들고 우리를 찾아올 날이 올거야. 그 가치를 만들어내자.” 다른 브랜드에서 재고를 들고 찾아올 수 있도록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고 얘기했고, 실제로 ‘블루핏’이라고 하는 신세계백화점 데님 브랜드에서 우리한테 협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블루핏의 청바지 재고와 우리 재고를 이용해서 새로운 옷을 만들었고, 판매 실적도 좋았다. 이런 식의 협업을 발전시키면 언젠가 대량생산도 가능해지고, 비즈니스 규모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Q : 래코드가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는 건가


A : 임팩트 비즈니스라는 게 씨앗을 심는 일을 확실하게 해야 나중에 진짜 임팩트가 생긴다. 브랜드에 가치를 눌러 담아서 소비자가 “이거 비싸도 살까?” “이거 살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가치를 만드는 일이 굉장히 어렵다.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업사이클링 교육을 하고 있다. 학교에 찾아가서 업사이클링 실습을 하면서 가치를 알리는 식이다.




Q : 너무 멀리 돌아가는 것 아닌가


A : 요즘은 아주 어린 아이들도 나이키가 좋은 브랜드라는 걸 안다. 부모들이 어려서부터 나이키 제품을 사줘서 그렇다. 나이키가 생활 속에서 제품을 접해 인지된다면 래코드는 교육으로 환경 인식을 제고하는 일이 브랜드를 알리는 일이 될 거라 믿는다. 업사이클링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이 래코드를 '신뢰할만한 브랜드', '믿고 사도 되는 브랜드'라고 인식하게 되는 날 우리가 가지게 될 영향력을 기대하고 있다.


한경애 전무는 19일 서울 종로 스페이시즈(SPACES) 그랑 서울에서 열리는 폴인(fol:in)의 콘퍼런스 < 임팩트 : 진짜 강한 비즈니스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에서 기업, 노동자, 소비자 모두를 구하는 미래의 패션 비즈니스에 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입장권은 폴인 사이트(folin.co)에서 구매할 수 있다.


김대원 에디터 kim.dae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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