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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필터, 문제는 '돈'

by중앙일보

미세먼지의 진실 혹은 거짓 ⑩공기정화탑 효과 있을까

스모그 프리 타워, 미세먼지 45% 저감

바람 강해질수록 효과 떨어져

EU로부터 38억 받은 ‘벌집 필터’

공기 정화 효과 높지만 가격이 문제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네덜란드 로테르담 단 로세하르데 스튜디오 뒤에 설치된 스모그 프리 타워. 천권필 기자

지난해 12월 7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단 로세하르데(Daan Roosegaarde) 스튜디오. 건물 뒤편 공터에 7m 높이의 거대한 타워가 서 있었다. ‘스모그 프리 타워’(Smog Free Tower)다. 가까이 가보니 타워 안에서 기계음과 함께 강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스모그 프리 타워 내부의 모습. 로테르담=천권필 기자.

“타워 위에서 공기를 빨아들인 뒤에 미세먼지를 걸러내고 깨끗한 공기를 아래로 배출하는 거예요. 여기서 하루 반나절 동안 정화하는 공기가 축구장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죠.”

스튜디오 홍보 책임자인 딜리안 다이크호프가 바람을 맞으면서 스모그 프리 타워의 원리에 관해 설명했다. 스모그 프리 타워는 쉽게 말해 야외식 공기청정기다. 정전기를 활용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를 잡아낸다. 시간당 3만㎥의 공기를 걸러낼 수 있다. 전기 포트 한 대 수준의 전기(1170W)를 소비할 정도로 에너지도 적게 든다.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스모그 프리 타워에서 걸러낸 미세먼지. [사진 단 로세하르데 스튜디오]

다이크호프가 투명한 비닐 봉투를 꺼내서 보여줬다. 봉투 안에는 타워에서 걸러낸 새까만 미세먼지가 가득 들어 있었다. 스튜디오는 이 미세먼지를 모아 반지와 귀걸이를 만든다. '스모그 프리 링(Smog Free Ring)'을 구매하면 1000㎥의 맑은 공기를 기부한다는 뜻이다.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스모그 프리 타워에서 걸러낸 미세먼지를 모아 만든 스모그 프리 링. [사진 단 로세하르데 스튜디오]

스모그 프리 타워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처음 시도된 이후 중국 베이징과 텐진, 폴란드 크라우프 등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도시에 차례로 설치됐다. 단 로세하르데 스튜디오는 중국의 공유 자전거 업체인 오포와 함께 오염된 공기를 정화하는 자전거인 ‘스모그 프리 바이시클’도 개발 중이다.

“바람 강해질수록 효과 떨어져”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스모그 프리 타워의 미세먼지 저감 효과. 타워에 가까울수록 저감 효과가 크다. [에인트호번 기술대학 연구팀 제공]

그렇다면 실제 스모그 프리 타워는 미세먼지를 얼마나 막아줄 수 있을까.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기술대학 연구팀이 스모그 프리 타워의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분석한 결과, 타워에서 10m 떨어진 곳까지 미세먼지(PM10)는 45%, 초미세먼지(PM2.5)는 25%가량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이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다는 조건일 경우였다. 타워 주변의 바람이 강해질수록 미세먼지 저감 효과는 눈에 띄게 줄었다. 야외에 설치되다 보니 바람이 타워의 성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날도 강한 바람 때문에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연구진도 “타워가 반 밀폐된 뜰이나 밀폐된 곳에 설치된다면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스튜디오 측은 “과학적인 측정을 통해 효과가 확인 된 건 지름 20m 원 안이지만, 실제로는 타워가 축구장 면적까지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벌집 필터’ 공기정화장치로 38억 받아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쟝쟈크 테론 코닝 유럽 기술연구소 박사가 직접 개발한 '벌집 모양의 세라믹 미세먼지 필터'를 들고 있다.

미세먼지는 한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파리·런던 등 주요 도시가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 원인인 경유차를 퇴출할 정도로 대기오염과 싸우고 있는 이유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도심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꼽아 ‘호라이즌 청정대기 소재상(賞)’과 함께 300만 유로(38억 원)를 지원했다. 이 상을 받은 제품이 코닝 유럽·중국 기술연구소 연구팀이 공동 개발한 ‘벌집 모양의 세라믹 필터를 활용한 공기정화시스템’이다.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걸러내는 필터를 응용해 미세먼지로 오염된 도시 공기를 깨끗하게 정화하겠다는 것이다.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벌집 모양의 세라믹 필터에 작은 구멍이 촘촘하게 뚫려 있다. 천권필 기자.

프랑스 파리 외곽의 코닝 연구소에서 만난 쟝쟈크 테론 박사는 시제품에서 원통 모양의 필터를 꺼내서 직접 보여줬다. 실제 벌집처럼 작은 구멍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뚫려 있었다.

“오염된 공기가 벌집처럼 생긴 필터에 들어가면 미세먼지는 벽에 달라붙고 깨끗한 공기만 필터 밖으로 빠져나가죠.” - 테론 박사

“WHO 기준 이하로 미세먼지 농도 낮춰”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벌집 필터를 장착한 시제품에서 배출한 공기의 미세먼지 농도가 0㎍/㎥을 가리키고 있다.

테론 박사가 시제품을 작동시킨 뒤에 배출구에 미세먼지 간이측정기를 갖다 대자 초미세먼지 농도가 ‘0㎍/㎥’까지 떨어졌다. 연구팀은 실제로 파리와 중국 상하이에 시제품을 설치하고 필터의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매우 나쁨(76㎍/㎥~) ’ 수준이었던 초미세먼지 농도가 WHO(세계보건기구) 권고치인 10㎍/㎥ 이하로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세라믹 벌집 필터의 효과를 설명한 그림. 미세먼지를 95%까지 제거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제공]

연구팀은 필터를 이용해 10m 높이의 공기정화설비를 설치할 경우, 매일 360만㎥의 공기를 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테론 박사는 “일반 필터에서는 미세먼지가 누적돼 점점 효율이 떨어지지만, 벌집 모양의 세라믹 필터는 내부의 복잡한 구조와 소재의 특수성 때문에 2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용이 문제…“상용화 여부 검토”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세라믹 벌집 필터가 설치된 공기정화시설. [사진 코닝]

연구팀의 목표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 맞춰 경기장 주변과 도심 곳곳에 필터를 장착한 공기정화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세라믹 소재 자체가 가격대가 높다 보니 대규모 설비를 지으려면 엄청난 비용이 투자돼야 한다. 이 때문에 이 아이디어가 실제 상용화 단계까지 갈지도 아직 확실치 않다. 테론 박사는 “300만 유로의 상금으로 파리 시내에 실제 크기의 데모 장치를 설치해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연구한 뒤, 2024년 파리 올림픽에 맞춰 상용화가 가능한지를 결정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기정화 빌딩 만들자”…여전히 현실화 안 돼

상하이 미세먼지 잡았다… 세라믹 벌집

러시아 우마로프가 제안한 미세먼지 제거 기술. 거대한 빌딩 모양의 정화장치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사진 Umarov]

다른 국가에서도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지만, 실제 현실화되는 건 많지 않다. 러시아의 건축가인 알렉세이 우마로프도 2017년에 빌딩 형태의 거대한 필터를 설치해 주변 공기 오염을 정화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사람이 거주하는 빌딩이 아니라 수십 층 높이의 빌딩처럼 생긴 커다란 골격에 구멍이 많은 벽으로 이루어진 ‘하이퍼 필터’다. 벽의 구멍과 내부의 긴 파이프를 연결하고, 파이프를 통해 빨아들인 공기는 필터로 정화하고 오염물질은 별도로 분리해서 처리한다는 개념이다.


우마로프는 외국의 대기업이 이 아이디어를 채택해 베이징이나 뉴델리·모스크바 등에 설치해 주기를 제안했지만, 아직 꿈이 실현되지는 못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야외에 공기정화탑을 설치하기보다는 미세먼지가 심한 곳에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밀폐형 시설을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용표 이화여대 화학신소재공학 전공 교수는 “대규모 공기정화탑은 홍보 효과는 있겠지만, 실제 야외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는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차라리 중앙차선에 있는 버스정류장처럼 미세먼지 오염이 심한 지역에 공기 정화 시스템을 갖춘 밀폐시설을 만드는 게 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로테르담·파리=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