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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눕터뷰

'남자가 무슨 꽃이야?'
편견 이겨낸 플로리스트 허정목

by중앙일보

봄은 꽃향기를 타고 온다. 고백하건대 청년 시절에는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화려한 꽃들의 이름을 알지도 못했으며, 포장은 거추장스럽게만 보였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생명을 다한 꽃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었다. 혹을 앞둔 지금은 꽃집 앞을 지날 때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향기에 이끌려 몇 송이 사 들고 집으로 향하기도 한다. 방 한켠에 놓인 화병 위로 봄이 찾아왔다.

'남자가 무슨 꽃이야?' 편견 이겨낸

금남의 구역에 도전한 플로리스트 허정목씨가 봄철에 어울리는 꽃들과 함께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플로리스트는 꽃에 생기를 불어넣어 더 빛나게 하는 직업이다. 섬세함을 다루기 때문에 여성만의 전유(專有)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 금남(禁男)의 구역에 도전한 남자가 있다.


“꽃으로 행복을 주는데, 성별이 중요한가요?”


허정목(31)씨는 6년 차 플로리스트다. 그는 광고 기획자로 일하며 기업 프로모션과 행사 기획 업무를 주로 했었다. 많은 행사를 준비하며 맡은 공간연출에서 꽃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됐다. “플로리스트와 협업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딱 이거다!’ 싶더라고요”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두고 꽃을 만지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삶을 축제로 만들어 주고 싶었죠”

'남자가 무슨 꽃이야?' 편견 이겨낸

허정목씨는 꽃의 세계로 들어선 이유에 대해 "많은 이들에게 꽃을 통해 청춘을 돌려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플로리스트로 전업을 결심하고 나서 그가 향한 곳은 남대문 꽃 도매시장이었다. “도매시장에서 일하는 것이 꽃에 대해 가장 많이 알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어요. 자정부터 아침까지 일하고 낮에는 학원에서 꽃을 배웠어요” 하루 2~3시간씩만 자며 1년을 버텼다.


처음 꽃을 직업으로 갖겠다고 하자 그의 어머니는 "동네 꽃집을 해서 네가 얼마나 가정을 꾸리고 먹고 사는 데 괜찮겠냐", "남자가 무슨 꽃이냐"며 만류에 나섰다.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중장비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굴삭기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이후 6개월 동안 그가 보여준 꽃에 대한 고집과 신념에 결국 부모님은 백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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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목씨의 작품들. 허씨는 "들꽃 소재를 많이 사용하고 간격과 높낮이를 과감하게 스타일링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본격적으로 꽃을 시작한 뒤엔 남자라서 차별을 겪기도 했다. “웨딩 업체에 플로리스트로 취직을 했어요. 저 말곤 모두가 여자라 텃세가 심했죠” 꽃에 물 주고 화분 나르는 게 그에게 주어진 일의 전부였다. “스스로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창업을 결심하게 됐죠”


장사할 가게를 알아보는 대신 그는 홍대 앞에 좌판을 폈다. “내가 만든 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어요. 실제로 팔 수 있는 건가 싶었죠. 20대 여성들이 사고 싶어 할만한 꽃다발을 만들었어요. 감성적이지만 비싸지 않게요” 졸업식이 열리는 학교 앞에서도 꽃을 팔았다. “졸업식은 ‘사진빨’이 잘 받는 풍성한 느낌으로 준비해갔죠” 장사에 나설 때마다 그의 꽃은 ‘완판’ 됐다. 자신감이 생겼다. 창업자금을 마련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지난 2013년 자신만의 공간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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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목씨가 추천하는 봄에 어울리는 꽃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니겔라, 라넌큘러스, 프리지어, 오니소갈룸, 피버휴, 자나장미.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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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손질할때 쓰이는 도구들. 윗줄 왼쪽부터 전정가위, 펜티, 니퍼, 롱로즈, 테이프. 둘째줄 왼쪽부터 줄자와 플로라 나이프. 셋째줄 왼쪽부터 리본가위, 플로라폼 나이프, 꼬리톱, 연마봉, 타카, 망치, 수평계. 장진영 기자

그렇게 시작한 꽃 장사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창업 2년째까지는 갈팡질팡했던 거 같아요. 자신 있게 내 감성을 넣지 못하고 여타 다른 꽃집과 비슷하게 만들다 보니 권태도 느끼게 됐고요” 그러던 차에 하우스 웨딩과 정원 등의 공간을 꽃으로 장식할 기회가 찾아왔다. “작은 다발에서 큰 공간으로 작업이 옮겨지니 숨통이 트였어요.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일, 사람들에게 ‘축제’를 선물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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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올린 결혼식. 허씨는 결혼식장 꽃장식을 직접했다. [사진 허정목]

지난해 결혼한 그는 자신의 결혼식장을 직접 꾸몄다. 처음 꽃을 접하던 순간부터 꿈꿔왔던 일이었다. “아내에게 특별한 날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버진로드, 포토 테이블, 부케까지 제가 만들었죠. 결혼식 전날 새벽부터 준비했어요. 아내가 무척 맘에 들어 했는데 아주 나중에 리마인드 웨딩을 한다면 그때는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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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목씨가 직접 만들어 결혼식에서 신부가 든 부케. [사진 허정목]

허정목 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이 알고 보면 남자에게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새벽부터 일해야 하고, 체력적인 소모도 많습니다. 꽃집 문을 열고 제가 서 있는 모습에 못 미더워하는 손님들도 있는데 요즘은 오히려 ‘남자니까 뭔가 더 특별하겠지’라고 기대하시기도 해요”

'남자가 무슨 꽃이야?' 편견 이겨낸

허정목 플로리스트가 만든 꽃다발. [사진 허정목]

플로리스트로서 그의 미래는 확고했다.


"꽃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사업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어요. 더 큰 목표는 저도 그랬듯, 많은 수강생을 배출해서 더 많은 사람이 꽃을 알고 더 많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금남의 벽을 깨고 이제 꽃길을 걷기 시작한 플로리스트 허정목, 터프한 외모 뒤에 숨겨진 섬세한 손길로 오늘도 사람들에게 봄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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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목씨는 꽃을 "싱그러움을 머금은 청춘과 같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허정목 플로리스트가 알려주는 '초간단 꽃꽂이'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